이병도는 한국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1934년 진단학회가 창립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일본인 학자들이 주도하는 관변적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한국학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풍토를 구축하기 위해 진단학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병도가 주도해서 발간한 『진단학보』는 국문으로 된 최초의 학술지이다. 창간호부터 3호까지 계동 98번지 이병도의 집에서 발간되었다. 이후 1936년 4월 발간된 4호부터 1941년 14호까지 성북리 132번지에서 발간되었다.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참여하였다. 이때의 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