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 협동조합
2013
인물 단체 주민자치
성북구 길음동 소리마을에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소리마을은 길음동에 위치한 마을로, 2011년 경제적 타당성 등의 여건으로 뉴타운 사업에서 빠진 존치구역으로 남았다. 슬럼화를 피하기 위해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으로서 지역에 커뮤니티 시설을 설치하고 지역 주민들이 이 공간을 운영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소리마을과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은 시작부터 민관협력의 성격을 내포했으며, 그 목적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 조성과는 다른 살기 좋은 저층주거지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2013년 7월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그 해 11월 18일 지식경제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이후 2013년에 신축된 길음소리마을센터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 아동·노인 복지 사업 등을 행하고 있다.
길음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단체 주민자치

시기

주소

  • 주소: 서울시 성북구 길음1동

근거자료 원문

  • 협동조합?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이 민관협력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언급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지역에 건설되는 사회복지시설이 주민주도로 운영된다는 것은 주민들의 모임이 임의단체로 존재할 때는 다양한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계약관계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물론 책임의 한계가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주민들의 임의모임은 새로운 형태로 전환될 것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지난 몇 개월의 경험에 비춰보건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도출된 것이 ‘협동조합’ 개념이 아니었을까? 2012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협동조합기본법은 기존의 조합설립요건이 대폭 완화되어 2013년 3월 23일 대통령령으로 시행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5명 이상이면 조합 설립이 가능하고, 조합은 법인격을 부여 받음에 따라 2013년은 협동조합의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실제 2013년 한 해 동안 일반협동조합은 3천 개가 넘게 설립되었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100개 가까이 설립되었다. 이 주민복지시설이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기 위해서, 주민들은 새로운 도전에 응해야 했다. ‘임의모임’에서 ‘법인격’으로서 전환은 공공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보자는 의미, 그리고 주민들 스스로도 보다 책임감을 갖고 마을재생에 임해보자는 의미가 더해진 움직이었다. 그리고 현재 뜨거운 관심사가 되고 있는 협동조합은 주민들이 취합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형태의 법인이었다. 또한 주민복지시설의 주요 목적이 ‘비영리, 사회적 지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한 결과, 영리법인인 일반협동조합으로는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비영리법인격이 부여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은 공익사업을 전체사업의 40% 이상을 수행해야 하는 조건에, 이익배당의 엄격한 제한 등으로 일반적으로 수립절차가 훨씬 까다로웠다. 동시에 협동조합에 대한 사전경험이 얕은 지역 어른들과 주민들과 더불어 조합 수립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마을 안팎으로 상존했다. 주민들을 인터뷰한 결과 역시 조합 수립에 대한 부담감이 팽배해 있었다. 바로 이럴 때, 지역중간조직인 ‘성북구마을만들기 지원센터’와 성북구에 상존하는 지역활동/협동조합 네트워크 경험자원들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에 대한 1대1 면담, 타 지역 탐방, 수차례의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개최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어느덧 “한번 해보자”로 전환되고 있었고, 협동조합 수립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과 그를 통한 지역 문화의 발전이 결국 개인에게도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05-107쪽
  • 한번 놀아보자! 협동조합 수립이라는 뚜렷한 목적성과 지역 주민들의 헌신은 필자로 하여금 강한 현장감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많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협동조합을 포함한 각종 ‘사회적 경제조직’의 증대를 마을만들기 사업의 중요한 목적으로 설정하기도 한 만큼 ‘우군’ 역시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중 먼저 ‘성북구 협동조합협의회’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협동조합협의회의 이소영 고문은 소리마을 운영위원회 단계부터 조합의 수립단계까지 전문적 컨설팅을 비롯해, 운영위원회가 갖고 있는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는데, 만약 이소영 고문을 비롯해 전문적인 내용을 컨설팅할 수 있는 ‘성북구 협동조합협의회’ 같은 조직이 없었더라면 조합의 수립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지원 속에서 바로 다음 필자가 행했던 일들은 의외로 단순한 것들이었다. 스스로도 이해와 확신이 안 되는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조합 수립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의 단초라도 살펴보기 위해 지역의 일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열해 봄으로써, 지역복지시설이 주민들에게 정말 간절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했다.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지역의 슈퍼, 식당 커피숍 등을 이용하며 되도록 지역 주민의 마인드를 갖기 위해 노력한 결과, 아직은 복지시설의 건설이 주민들의 요구에 최우선이 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이러한 일반적 여론은 ‘운영위원회’에도 투영되어 주민들의 목적의식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행한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는 지역 상점 등을 찾아가 복지시설의 건설과 그것이 가져올 효과 등을 홍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운영위원들에게는 필자가 신뢰 가능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함께 식사하고, 소통하고, 장기를 두고, 사진을 찍는 일은 그 자체로 유쾌함을 안겨준다. 필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에게도 행복감을 부여했고 지역의 어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라던가, 가족사 등을 자연스럽게 앎으로 인해 동화의식이 커져갔다. 지금 보면 그러던 와중에 ‘협동조합’ 수립이 자연히 따라온 것은 아닐지, 소통 자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1] Q. 인터뷰에 앞서 먼저 자기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저는 길음 1동에 거주하는 42년생 이종민이라고 합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Q. 네 말씀 청해 듣게 되어 감사드리고요. 선생님께서는 소리마을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A. 88년도에 왔으니까 25년 가까이를 살았죠. 처음에는 단독주택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신축건물이 올라서고, 주로 서민들이 사는 공간으로 지금 정착이 된 것 같습니다. Q. 성북(마을)에 사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A. 역시 아파트 신축이 가장 큰 이슈였어요. 당시에는 마을환경 개발에 대한 찬성 입장도 엄청났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지만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소리마을에 사시면서 가장 바라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A. 최근에는 길음동에 계성여고 부지이전이 큰 이슈였으나 흐지부지된 바 있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이전 부지에 소리마을이 입주하고 이 자리는 교육단지로서 변화하면 지역과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Q. 성북(마을), 이런 건 변해야 한다는 점은요? A.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대표들의 봉사정신이 높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의식적인 부분이라면 문화 환경적으로도 특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보도블럭 교체 시 구역마다 색깔벽돌을 이용해 마을 사이를 구획하고, 색을 입힌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Q. 후세들에게 이런 동네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모델이 있다면? A. 일률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성미산 마을의 모델이 가장 모범적인 마을모델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 2] Q. 인터뷰에 앞서 먼저 자기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저는 길음 1동에 거주하는 55년생 이애재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 30년째 정지사라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부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Q. 네 사업체가 튼실한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소리마을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A. 이곳에 1982년에 입주했으니 30년이 조금 넘었네요. 자녀들 교육도 전부 성북구에서 했는데요. 처음 왔을 때는 대부분 판자촌에다 환경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 황폐한 느낌도 받았지만 이웃들이 대부분 자수성가한 것 같아 기쁩니다. 활동계기도 성북에 고마움을 느껴 하게 되었고요. Q. 성북(마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단결력이 높은 것이 큰 장점이에요. 대부분 마을에서 평생 살 생각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싶고요. 그래도 최근 재개발문제로 마음이 상하신 분들이 있는데 빨리 치유하고 단합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 Q. 성북(마을)에서 사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A. 우리 동네는 매우 조용한 편이어서 그런지 크나큰 사건사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조사야 뭐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고요. Q. 소리마을에 사시면서 가장 바라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A. 우리 마을의 장점은 역시 소통구조가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이를 십분 활용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이에 따라 복지회관을 운영하는 것이 현재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마을 분들의 참여가 부족하지만 공간이 생기고 모임이 가시화되면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Q. 성북(마을), 이런 건 변해야 한다는 점은요? A.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다들 먹고 살기가 바빠요. 때문에 마을에서 이슈가 발생해도 관심도가 떨어지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마을잔치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Q. 자식들에게 이런 동네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모델이 있다면? A. 저는 파주에 위치한 프로방스 마을 모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마을만들기와 상업전략을 분리할 수 없다면 아예 제대로 된 상업도시를 구축하는 것이 어떨까 고민이 되죠.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07-112쪽
  • 협동조합 발기인대회가 개최되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6월의 환경은 이랬다. 마을의 운영위원회는 10명 가량으로 일상적 소통이 가능한 구조였다. 일반 주택가라는 주거환경은 일상적 소통을 함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일반 아파트와 같은 단절적인 공간과는 소통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실제 필자는 아파트 주거공간에서만 성장했기 때문에 이웃과 소통한 적이 드물었는데 동네에서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인사가 오고가는 모습을 보며 소리마을과 같은 주거형태가 갖는 이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이점은 협동조합을 추진하는 데에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됐다.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만나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 즉각적이고, 상시적인 논의가 가능함에 따라 일을 추진할 때 ‘예측불가능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정도 단계라면 발기인대회는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현행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발기인 5인 이상이 모이면 수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미 5인 이상의 논의테이블이 상시적으로 열리고 있던 소리마을 운영위원회에게는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정말 마을의 운영위원회에게는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정말 마을의 운영위원회가 협동조합을 시도할 내용적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운영위원회가 발기인대회를 거친 이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함에 따라 발기인대회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2013년 7월 15일 길음중앙교회에서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기존의 운영위원회는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준비위원회로 전환되었고, 비로소 주민들의 인식 속에서는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이 관념의 형태에서 ‘구체적인 어떤 것’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김춘수 시인이 그의 시 「꽃」을 통해 명명의 의미를 세상에 남겼듯이, 주민들이 임의단체인 마을운영위원에서 법인격인 협동조합준비위원으로 전환되자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주민들의 눈빛이었다. 또한 준비위원들이 선임되면서 조직이 비로소 체계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은 모임의 주체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12-113쪽
  • 두 번째 단계로의 이행,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 13명이 모인 발기인 대회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였던 ‘리더십구축’도 비교적 원만한 흐름 속에서 해결되었고, 간단하게나마 사업방향 등을 논의함으로써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창립총회의 일정을 8월 10일 진행하는 것으로 확정하였다. 발기인대회에서 창립총회까지의 기간을 길게 잡으면, 비록 총회 준비를 조금 더 충실히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직 내부의 긴장감과 탄력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 다소 빠듯한 일정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발기인대회까지의 단계는 평소 마을의 운영위원들이 모이던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창립총회’는 그 내용이 공개되어야 하고, 이것이 법률적인 절차에 의거해야 하므로 신경 쓸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선 정관과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에 대한 난관에 부딪혔다. 정관은 ‘사회적기업진흥원’ 홈페이지에 사회적협동조합 표준정관이 있기 때문에 이를 실정에 맞게 고치면 되지만, 사업계획서는 지난 2년간의 수지예산을 반영해야 하는데,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사업실적이 없는 자생주민모임인 ‘소리마을 운영위원회’가 그런 근거기록을 갖고 있기는 만무했다. 따라서 층별로 사업을 주욱 나열해보고, 비용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적용해 예산을 반영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길음종합사회복지관’과 필자의 오랜 친구 장윤창이 힘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조합원을 50명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발기인대회의 의결로 조합원 모집과 창립총회 일시를 공고하는 소식지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창립총회는 반드시 공고되어야 하며 그 일시는 총회 7일 이전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 동안 발기인들은 너무나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필자 역시 거기에 고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의 감화는 필자에게 언제나 역동과 활기를 불어넣어주면, 지역사업에 참여할 때 보람을 느끼게 한다. 간단한 실무적 작업을 끝으로 드디어 8월 10일 오전 길음중앙교회에서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준)’ 창립총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제일 걱정된 부분은 설립 동의자의 대부분이 마을의 ‘어르신’들이고 따로 협동조합 교육을 실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립 동의자들이 창립총회의 의의를 살리지 못해 참석하지 않는 경우였다. 다행히 발기인들의 호소로 설립 동의자 64명 중 39명이 참석해 총회를 알차게 진행할 수 있었지만 일반조합원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조합으로서의 자각을 형성시킬지가 향후 과제로 남았다. 총회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정관과 사업계획서에 대한 확정, 이사장을 포함한 임원선출을 마무리했고, 설립에 따른 기타 실무는 필자가 담당하기로 의결했다. 필자는 이제 창립총회를 마친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지식경제부에 인가하는 모든 실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합은 그 동안 임의적 협력기관이었던 ‘성북구마을만들기 지원센터’와 ‘길음종합사회복지관’과의 MOU 체결로 조직의 안정성과 네트워킹을 강화시켰다. 이어졌던 마을잔치에서는 지역 공무원들과 유관단체들이 대거 참석해 총회를 더욱 빛나게 했고,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조합은 이제 ‘소리마을센터’의 운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13-116쪽
  • 협동이 일을 만든다 필자가 가장 취약하게 느꼈던 것은 ‘행정실무력’이었다. 학창시절에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회생활도 행정을 담당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회생활의 이력 자체가 짧기도 하지만 어느 영역에 가더라도 주로 정책적인 일이나 조직에 관련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문서를 생산하는 일에는 다소 자신감이 떨어졌다. 때문에 시작 단계에서부터 도움을 구해야 했으며 모든 도움에는 발품이 따랐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움을 구한 곳은 노원에 위치한 ‘사회투자지원재단’이었다. 이 재단의 김종일 팀장은 협동조합 사업계획서를 수립할 때 타 기관의 예시와 작성방향에 대한 컨설팅을 해줬고, 수지예산서 작성과 2년간의 예결산 작성은 ‘협동조합 공작소’에서 컨설팅한 것이 주효했다. 필자의 게으름 탓인지 이 단계 들어서야 비로소 성북구청 협동조합팀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구청으로 출퇴근을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성된 초안은 협동조합 수립의 절차상 지식경제부 산하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서류컨설팅을 반드시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는 우윤식 사무관과 정석호 주무관, 유일민 연구원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을 토대로 필자는 9월 23일 세종시에 위치한 기획재정부 협동조합팀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는데, 여기에서도 많은 수정 사안이 발생했다. 이는 협동조합 수립이 하나의 일관된 서류지침 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관 내부에서의 작성방향도 약간의 차이가 있음으로 해서 발생하는 문제로서, 협동조합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공무단위에서의 일관된 행정방향이 빠르게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주무부서인 지식경제부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원래는 협동조합의 주 사업에 따라 인가의 주체는 달라진다. 주 사업의 대부분이 교육이라면 이는 교육과학기술부 협동조합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복지사업이 주가 되면 복지부 협동조합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그러나 주 사업의 형태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주관부처의 선정이 애매한 측면이 있었는데, 지식경제부가 나서서 인가수립을 추진했기에 소리마을 협동조합은 불필요한 단계를 대폭 축소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는 황지현 사무관의 역량이 돋보였다. 서류에 대한 처리는 배윤미 연구원이 담당했지만, 일의 방향을 잡는 것에는 황지현 사무관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가능했다. 결국 그렇게 11월 18일 지식경제부로부터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한 인가가 공고되었다. 최종서류 제출일인 10월 4일 이후 한 달여 만에 인가가 나온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조합수립에 대해 응원과 지지를 넘어 실질적으로 협력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17-119쪽
  • 가장 중요한 과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은 조합의 ‘자립성’이다. 조직의 형태가 협동조합이 되었건, 주식회사가 되었건, 재단이 되었건 그 조직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조직운영의 필수여건이다. 그러나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의 구성원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정신은 투철하다 할지라도 ‘소리마을센터’를 운영함에, 재정 관리가 수반된다 하면 이야기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그것이 강한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은 아쉽게도 지역에 요구하는 것이 참 많다. 당장 소리마을센터를 운영하는 데에 발생하는 관리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무비용과 집기비 마련에 해결책이 있는가 하는 것은 조합 수립에 굉장한 장벽이 되었다. 다행히 중간에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공간조성사업 제도가 생겨 우리 조합과 협력기관이자 한 식구이기도 한 길음종합사회복지관의 김미애 과장, 유지혜 복지사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 4,800여만 원을 지원받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드웨어적인 공간조성을 비롯해 센터 운영의 내실을 다질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공간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수익을 다각화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았다. 그리고 이는 오롯이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의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19-120쪽
  • 주민들과 함께 한 마을재생의 결실, 소리마을센터 개관하다 2013년 11월 22일 오전 11시 드디어 길음 소리마을센터가 개관식을 열었다. 필자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소리마을 운영위원회’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임원들에게는 3년여의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임원들에게서 결코 가볍지 않은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을로서도 마을이 생긴 이래 손에 꼽는 대규모 행사였기 때문에 단단한 각오를 필요로 했다. 마치 전문 사회인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개관식 행사도 필자가 맡아보게 되었는데, 이날 한껏 임원들을 추켜세울 요량으로 필자 역시 단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풍물패 ‘다푸리’가 길음역에서부터 소리마을센터까지 흥겹게 사물놀이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속속 참가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날 참가한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을 비롯하여, 시/구청/의회의 관계자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민간단체/사회적경제조직 인사들이 참석해 이 행사가 갖고 있는 민관협력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내외빈들의 인사말과 테이프 커팅식을 마치고, 전체 건물을 라운딩한 후 1층의 ‘더마실카페’에서 진행된 2부 순서는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임원진들에 대한 소개와 건물에 대한 운영계획 등을 발표하는 자리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와 참가자들의 미소는 필자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안 된다, 안 된다” 회의도 적지 않았던 마을에 실제 건물이 들어섰고, 조합은 수립되어 있었다. 협동조합을 수립하는 과정에서의 좌충우돌 역시 협동의 과정이었던 것인가. 지금까지라면 관과 민간의, 상호간의 시험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고 평가하더라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소리마을센터는 한국사회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로서, 하지만 확산될 사례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주민들, 즉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이들이 지역에 근거한 정서와 사업양식으로 지역맞춤형 서비스를 생산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인 지역주민센터와 복지법인인 지역복지관도 차별성을 갖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가 방점을 찍는 부분은 그 안에서 ‘자치’가 발생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이런 독립적 공간들 속에서 지역의 정책이 다뤄지고, 주민들의 의사가 ‘집중’되는 공간으로서 기능된다면, 한국사회의 자치 역량은 보다 성숙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든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 모습을 드러냈다는 면에서 필자는 지역에서 새로운 자치 모델의 단초를 바라본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20-122쪽
  • 에필로그1, 남겨진 일들 소리마을센터가 개관하고,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이 이를 위탁운영함으로써 이제 큰 배는 띄워졌다. 따라서 이제 닻을 올리는 일보다 이 배를 운항하는 일이 훨씬 중요한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로써 조합의 수립 실무라는 필자의 역할 역시 이제 마무리 단계만을 남기고 있었다. 협동조합이 법인의 위치를 최종적으로 획득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을 등기하는 과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인가만 받으면 큰 산을 넘긴 것이라 생각했는데, 등기 절차 역시 만만치 않게 까다로워 애를 많이 타기도 했다. 협동조합은 인가일로부터 21일 이내에 등기해야 함이 공지되었고, 전 임원에 대한 인감증명서가 요구되었다. 또한 창립총회 의사록을 사전에 공증 받아야 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아 그야말로 심장이 덜컹거리는 기분으로 몇 주를 보내야 했다. 이 공증 업무 역시 의외로 난관이 거듭되었다. 인터넷 상에 나와 있는 여러 공증인가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는데 답변들이 다 다르거나 가벼웠다. 그 중 한정화 사무실만이 유일하게 필자의 상담에 진지하게 응해, 가까운 곳들을 제쳐두고 멀리 천호동까지 가서 몇 번의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비교적 단기간에 공증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공증인가 한정화 사무실의 적극적인 업무처리에 기인한 것이다. 사람의 문제는 어느 조직에서나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에 이르는 건물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자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최하 3명 이상의 상근 인력이 필요하고, 이를 지휘할 사무국장의 역할은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집기의 배치, 장기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상시화를 통한 주민 활용 증대가 남았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봤을 때,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임원들의 역량이 집중된다면 그것이 긍정의 효과를 발산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23-124쪽
  • 에필로그2, 소리마을 사람들 12월 7일, 오전 11시 소리마을센터 지하 1층.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최대 규모의 마을잔치 행사가 열렸다. 이날을 촬영하기 위해 SBS에서도 센터를 방문했다. 오전 11시가 들어서자 100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꽉 차버렸고, 주민들이 더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소리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회가 측정한 인원은 대략 150여명 정도로 지역주민들의 높은 참여열기로 행사장이 뒤덮였다. 필자는 행복감 속에서 여태껏 함께 일을 추진해왔던 조합의 임원들을 지켜봤다. 많으면 일주일에 다섯 번을 넘게 보면서 함께 소통했던 이들의 얼굴도 너무나 활짝 꽃피어 있었다. 필자도 그렇지만 임원들도 결국 이런 행복을 느끼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것 아닌가. 따라서 글 마지막은 임원들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할까 한다. 필자가 소리마을에 들어올 당시 가장 먼저 만난 주민은 김동미 이사였다. 김동미 이사는 소리마을의 재정을 담당하는 ‘총무’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 소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도맡아 필자와 초기부터 많은 대화를 해나갔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소리마을의 전체 상황을 이해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이애재 이사 역시 마을의 역사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신 분이다. 언제나 아들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신 그 고마움은 필자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사장이신 이종민 선생 역시 중요한 고비에 큰 결심을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조직 수장의 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마을의 중간에서 정보의 거점 역할을 했던 중앙슈퍼를 운영하는 김병복 이사 역시 나중에 공간조성사업 예산을 담당함으로써 적지 않은 부담이 있었을 텐데도 책임감을 보여주시고 있다. 성북구에서 가장 바쁜 중국집 ‘천안문’의 사장인 이용현 형의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이용현 형 역시 협동조합의 이사로서, 다른 이사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마을의 활성화는 이렇게 구성원들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적극성도 조직이 운영되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발기인대회 공고를 보고 스스로 조합원이 되어 마을에 봉사하고자 했던 심재선 이사의 경우가 그렇다. 오후까지 미아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도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라도 마을 일을 해 보고자 했던 그 적극성과 선한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송대식 이사, 웃어른으로서 항상 상황을 중재하고 판단이 어긋나지 않도록 신중한 의견을 제시해 주신 류응수, 이철재 이사, 몇 개월 동안 회의 공간을 제공해 주신 길음중앙교회의 최영옥 이사, 성북구청과의 협조관계를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김동근 이사, 길음종합사회복지관 부관장으로서 소리마을센터가 안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해주시는 김광준 부관장, 조합이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언해 주시는 황치범 감사 등 임원진들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또한 성북구청 공무원으로서 맡은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언제나 현장으로 달려왔던 이향욱 주무관 같은 공무원이 있었기에 언제나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벗이자 동료로서 언제나 의견을 함께 하고 일을 추진했던 성북구마을만들기 지원센터의 송주민 이사가 있었기에 필자 역시 용기를 내고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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