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집터
1941 - ?
장소 유적
성북구 성북로16길 11(성북동 60-43)에 위치한 시인 조지훈의 집터이다. 조지훈(1920-1968)은 1939년 등단한 이후, 민족적 정서와 전통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으며,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1946)을 내면서 청록파로도 알려져 있다. 지금 성북동에 남아 있는 조지훈 집터는 제헌국회의원이자 신간회 활동을 했던 아버지 조헌영(1901-1988)이 살던 집이다. 조헌영이 납북되었기 때문에 조지훈은 아버지가 돌아오실까 하여 죽는 날까지 이사하지 않았으며, 아버지 이름으로 된 명의도 바꾸지 않았다. 성북동의 ‘조지훈 집터’는 사실상 조헌영의 집터인 셈이다.
성북동
  • 조지훈 집터 표지석
  • 성북동 조지훈기념 건축조형물(1)
  • 성북동 조지훈기념 건축조형물(3)
  • 성북동 문학산책_성북동 조지훈 기념 건축조형물(1)
  • 성북동 문학산책_성북동 조지훈 기념 건축조형물(2)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조헌영 집터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유적

시기

주소

  • 주소: 02836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60-44 ( 성북로16길 11)

근거자료 원문

  • 당시 성균관 뒤편에 살던 조헌영은 1941년경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긴다(기록이 없어 이유는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혹 한용운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상상은 한 번쯤 해봄직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거하며 제헌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의 활동을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는 북한의 이른바 ‘모시기 공작’에 의해 잡혀가고 만다. 지금 성북동에 남아 있는 조지훈 집터는 아버지 조헌영이 살던 집이다. 조지훈은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지만, 혹여 아버지가 돌아오실까 죽는 날까지 이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 이름으로 된 명의도 바꾸지 않았다. 지금 성북동 ‘조지훈 집터’는 사실 조헌영의 집터인 셈이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207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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