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우 옛집
1976
국가등록문화재
장소 유적
유물 건축물
성북로15길 9에 위치한 고택이다.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성북동 한옥이 점차 사라지던 때,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곳을 매입하여 '시민문화유산 1호’가 되었다. 1930년대 초 지어진 근대한옥이다. ‘ㅁ’자 평면의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양식 주택이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보존·운영하고 있으며, 혜곡최순우기념관으로 시민들을 위한 전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9월 1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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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혜곡 최순우 기념관,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유적
  •   유물 건축물

시기

주소

  • 주소: 02880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26-20 (성북로15길 9)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최순우 옛집을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산 것도 그런 이유에요. 좋은 집도 아니고 북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없어지면 그곳 주변에 있던 한옥들의 역사가 모두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무리를 해서 보존을 한 것이에요. 지금 거기서 프로그램을 하니까 사람들이 와서 ‘아! 이런 데가 있었네.’ 보고 느끼면서 다른 한옥보존지역과 네트워크가 가능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보호하고 거점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45쪽
  • ○ 2000년대 성북동 관련 신문기사(중앙일보) ㆍ최순우 옛집에서 열린 전시회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사장 김인회)은 18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최순우가 보았던 세계의 미술-혜곡 최순우 선생 소장 엽서'전을 연다. 미술사학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84) 선생이 소장했던 엽서 200여 장과 관련사진이 나온다. 02-3675-3401. (2005.11.16.)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70쪽
  • ○ 선조의 숨결이 배어있는 문화유적 문화유적 07 최순우 옛집 시민들의 힘으로 복원한 ‘문화유산 1호’ - 최순우 옛집은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故 혜곡 최순우 선생(1916-1984)이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고택이다. 성북동 재개발로 인해 보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2002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곳을 매입, '시민문화유산 1호’가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산을 시민의 힘으로 지킨 첫 사례이다. 2004년,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발족되어 이곳을 관리ㆍ운영하면서 같은 해 4월 일반에게 개방하였고, 2006년에는 박물관(서울시등록제29호) 및 등록문화재(제268호)로 지정되었다. 최순우 옛집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으로 경기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로된 튼 'ㅁ’자형 집이다. 선생의 손길이 곳곳에 담겨있는 아담한 앞마당과 뒷마당에는 꾸미지 않은 한국미의 자연스러움과 그의 예술적 심미안이 담겨있다. 선생이 기거하던 사랑방 위에는 그의 친필이 담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문을 닫으면 곧 이곳이 깊은 산중이다’라는 의미로 이 집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아름다운 글을 집필하였다.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거듭난 최순우 옛집은 안채의 대청과 사랑방에 선생의 유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며, 봄과 가을에는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과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고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20-21쪽
  • 1. 성북동의 문화재 ○ 등록문화재 - 등록문화재 제268호 :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성북로15길 9, 128-18 (성북동, 혜곡 최순우기념관) - 지정일 : 2006.09.19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1쪽
  • 19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 평면의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양식 주택이다. 혜곡(兮谷) 최순우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한 주택으로, 안채는 전시공간으로, 동편 행랑채는 사무공간으로, 서편 행랑채는 회의실과 방문객의 휴게공간 등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 2. 최순우 옛집 ○ 관람 안내 - 기간 : 4월 1일~11월 31일 ·동절기 휴간(12월~3월) - 요일 :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 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 시민문화유산 제1호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42쪽
  • 2002년 겨울, 최순우가 살던 성북동 집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기증으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지켜졌다. 다세대주택으로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한옥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 후원금으로 매입하였다. 이후 보수를 거쳐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시민문화유산 제1호 ‘최순우 옛집’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평생 박물관인으로 외길을 걸으며 우리 문화를 아끼고 널리 알렸던 최순우가 살던 이 집은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유산 보전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 2002년 빌라 건축 붐 속에서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최순우 옛집이 시민문화유산 1호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내셔널트러스트 활동가들의 노력과 이를 도운 시민들의 성원 덕분이었다. 2년간의 보수와 복원 공사를 거쳐 2004년 4월, 일반에 공개된 가옥은 길상사의 뒤를 이은 성북동의 또 하나 열린 공간이 되어 시민들을 맞이했다.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애정 어린 손길 위에 순수 민간의 힘으로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더해진 이 근대한옥은 길상사와 함께 성북동 방문객들이 가장 자주 찾는 명소이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13
  • 8. 성북동 박물관 및 미술관(갤러리) 등 현황 ○ 박물관 - 명칭 : 혜곡최순우기념관 - 주소 : 성북동 126-20 - 연락처 : 02) 765-0252 - 대표자 :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 비고 : 등록박물관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13쪽
  •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문화유산 보존을 시작한 것이 2002년이었어요. 저희 상임 이사님이신 김홍남 교수님에게 정보가 들어왔어요. ‘저기 한옥이 매물로 나온 것 같다’고요. 그래서 와보니까 이 집이었고, 급하게 모금을 시작해서 1년이 채 되기 전에 이 집을 인수하게 됐어요. 최순우 선생님의 따님도 ‘이 집에 누가 살더라도 한옥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지만, 소유권이 넘어가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변할지를 모르잖아요. 그런 점에서 서로에게 합리적인 대안인 거죠. 팔려는 분은 적당한 대가를 받으셨고요, ‘우리가 모두 보존하겠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 집에 있는 유물은 다 두고 가셨어요. 무조건 문화재로 지정해서 재산 처분을 못하도록 막아두는 것이 아니라, 드릴 것은 드리고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그런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81쪽
  • 미술사학자이자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1984가 살던 집이다. 평생 박물관에 근무하며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국내외 전시를 통해 일반에 널리 알리며 박물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전형필, 김환기, 장욱진, 이경성 등 당대 문화예술인과 교류하며 문화예술계를 이끌었다. 이집은 1930년대 지어진 근대한옥으로 소박하고 정갈한 한국 미美를 아낀 혜곡의 안목이 담겨 있다. 사랑방에는 1976년 이사 오던 해 친필로 쓴‘두문즉시심산杜門則是深山’편액이 걸려있다.‘ 문을 닫으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다’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는 글을 썼다. 최순우 옛집(혜곡최순우기념관, 등록문화재 제268호)은 2002년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보전 의지로 지켜진 시민문화유산 1호이 다. 개인과 기업의 성금으로 문화와 자연유산을 지키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매입하여 복원보수를 거쳐 2004년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최순우 선생의 친필원고, 사진, 유품 등 소장품을 상설전시하고,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 해마다 봄ㆍ가을에 문화프로그램을 가을에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성북동이라는 공간에서 전형필과 교류했던 인물이 또 있다. 성북동 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고즈넉한 한옥은 전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무량수 전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가 거주하던 공간이다. 최순우 옛집은 전형필이 수집유물을 정리할 사람에게 거처할 공간으로 임대해준 장소로 보인다. 최순우 옛집 맞은편(성북동 128번지)에는 오세창이 서화류를 보관하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가옥이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서 골동품의 수집 · 감정이 이루어졌고, 간송미술관과 최순우 옛집을 오가는 사람들의 접대 혹은 객사의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242-243쪽
  • 성북동 최순우옛집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3가 1976년부터 별세하던 1984년까지 거주했던 한옥이다. 성북동의 양옥화 흐름을 타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시민 모금으로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이 매입해 관리하고 있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80쪽
  • 최순우 옛집 등록문화재 제268호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15길 9 최순우 옛집은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1916-1984)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하기까지 거처하던 한옥이다. 최순우 선생은 개성부립박물관 입사 이후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생을 마치기까지 평생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박물관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미술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책을 써서 한국 미美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도 힘을 쏟았다. 2004년에 개관한 최순우 옛집은 2006년 ‘혜곡 최순우 기념관’이란 명칭으로 박물관 등록을 한 이후 최순우 선생의 유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해마다 봄, 가을에 걸쳐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가을에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특별히 ‘시민문화유산 제1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한옥은 2002년부터 내셔널트러스트 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직접 시민모금운동을 벌여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근대한옥은 ㄱ자 형 안채와 ㄴ자 형 바깥채로 된 ㅁ자 형 집으로, 아담한 안마당과 뒷마당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최순우 선생이 사용했던 책상과 고서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 하고 있으며, 동절기인 12월부터 3월까지는 휴관한다. (홈페이지 : nt-heritage.org/choisunu/) 찾아가는길 버스 : 1111번, 2112번 버스, 02, 03번 마을버스 이용, 홍익대부속중고등학교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2분. 지하철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 6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12분.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274-275쪽
  • 최순우 옛집은 혜곡 최순우(1916-1984)선생이 살던 집이다. 최순우 선생은 개성부립박물관 입사 이후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까지 평생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박물관의 발전에 힘썼다. 한국 도자기와 목공예, 회화사 분야에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며, 한국 미(美)를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옛집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아름다운 글들을 집필하였다. 최순우 옛집은 2004년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개관하여 혜곡 선생의 유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해마다 봄, 가을에 문화프로그램을, 가을에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최순우 옛집은 국가가 지정한 문화유산이 아닌 ‘시민문화유산 제1호’이다. 이 ‘시민문화유산’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라는 시민단체에서 직접 모금을 하여 등록한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복원되어 평생을 문화재 보호에 앞장선 최순우 선생의 정신이 더욱 빛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ㄱ자’ 형 안채와 ‘ㄴ자’ 형 바깥채로 된 ‘ㅁ자’ 형 집으로, 아담한 안마당과 뒷마당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최순우 선생이 사용했던 책상과 고서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 최순우 옛집은 혜곡 최순우(1916-1984)선생이 살던 집이다. 최순우 선생은 개성부립박물관 입사 이후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까지 평생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박물관의 발전에 힘썼다. 한국 도자기와 목공예, 회화사 분야에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며, 한국 미(美)를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옛집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와 같은 아름다운 글들을 집필하였다. 최순우 옛집은 2004년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개관하여 혜곡 선생의 유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해마다 봄, 가을에 문화프로그램을, 가을에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최순우 옛집은 국가가 지정한 문화유산이 아닌 ‘시민문화유산 제1호’이다. 이 ‘시민문화유산’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라는 시민단체에서 직접 모금을 하여 등록한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복원되어 평생을 문화재 보호에 앞장선 최순우 선생의 정신이 더욱 빛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ㄱ자’ 형 안채와 ‘ㄴ자’ 형 바깥채로 된 ‘ㅁ자’ 형 집으로, 아담한 안마당과 뒷마당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최순우 선생이 사용했던 책상과 고서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 홍익중·고 입구 버스정류장 부근 골목에는 앞서 언급한 최순우 옛집과 조지훈 집터 표석이 있다. 2002년 빌라 건축 붐 속에서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최순우 옛집이 시민문화유산 1호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내셔널트러스트 활동가들의 노력과 이를 도운 시민들의 성원 덕분이었다. 2년간의 보수와 복원 공사를 거쳐 2004년 4월, 일반에 공개 된 가옥은 길상사의 뒤를 이은 성북동의 또 하나 열린 공간이 되어 시 민들을 맞이했다.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애정 어린 손길 위에 순수 민간의 힘으로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더해진 이 근대한옥은 길상사와 함께 성북동 방문객들이 가장 자주 찾는 명소이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174쪽
  • 크고 화려한 집은 아니었으나,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중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튼 미음(ㅁ)자 형태의 한옥으로, 안마당과 뒷마당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높은 안목으로 정갈한 모습으로 집안 곳곳을 꾸미셨습니다. 생전의 사진을 보면 뒷마당의 크고작은 식물과 바둑이가 보이고, 안마당에는 파초를 비롯하여 부엌탁자 위의 소품들과 툇마루에 나온 함지박이 보이는데, 평안해 보이는 선생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외관은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안채는 동쪽의 끝 두 칸은 선생의 사랑방으로, 그 옆은 침상이 놓인 방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안방은 길게 터서 쓰임새를 갖추게 하며, 부엌은 안채의 서쪽 끝으로 내달아 사용하여, 실제 생활에 맞게 고쳐서 쓰셨다고 합니다. 명절이면 손님들이 들이닥쳐 사랑방에서 음식과 담소를 나누셨고, 평소에는 돌과 나무가 항상 물기를 머금고 있어 집 전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북문화원, 2014, 성북문화 제2호, 8-9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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