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월곡동
1950.03.15
장소 인문지리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위치한 행정구역인 동의 하나이다. 월곡동은 현재 하월곡동에 있는 천장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다고 하여 그 산 근방에 있는 마을을 다릿굴‧다릿골이라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 다릿굴‧다릿골 중 위쪽을 ‘웃다릿굴‧웃다릿골’, 아래쪽을 ‘아래다릿굴‧아래다릿골’이라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상월곡동과 하월곡동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은 이곳에 주막이 많았는데, 지방에서 달밤에 도착해서 숙박을 하고 아직 달이 채 지지않은 새벽 무렵에 일어나 흥정했다고 월곡이라 했다고도 한다.
월곡동
  • 하월곡동, 돈암동 일대 내부순환로
  • 하월곡동 종합 구판장 개장식
  • 오동근린공원 경관(5)
  • 오동근린공원에서 바라 본 풍경(2)
  • 오동근린공원에서 바라 본 풍경(1)
  • 오동근린공원 경관(3)
  • 오동근린공원 경관(2)
  • 오동근린공원 경관(1)
  • 성북구민 체육센터  전경
  • 2020 월곡동 60년대 건축물 밀집지역(5)
  • 2020 월곡동 60년대 건축물 밀집지역(4)
  • 2020 월곡동 60년대 건축물 밀집지역(3)
  • 2020 월곡동 60년대 건축물 밀집지역(2)
  • 오동근린공원 체육시설
  • 천장산 전경(1)
  • 하월곡동, 길음동 일대
  • 하월곡동, 돈암동 일대(2)
  • 하월곡동, 돈암동 일대(1)
  • 하월곡동, 돈암동 일대 내부순환로
  • 정릉천 풍경(7)
  • 정릉천 풍경(6)
  • 오동근린공원에서 바라 본 풍경(3)
  • 성북구민체육센터 전경
  • 성북구민체육센터_월곡인조잔디축구장 전경
  • 정릉천 풍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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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월곡동 60년대 건축물 밀집지역(1)
  • 월곡로 18길 골목
  • 월곡역 사거리 앞
  • 성가복지병원 주변  월곡동 모습
  • 길음동 기린빌딩에서 본 길음역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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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음역환승주차장에서 본 길음동, 하월곡동 일대(1)
  • 내부순환로와  종암동, 하월곡동 일대
  • 하월곡동, 길음동 일대(2)
  • 하월곡동, 길음동 일대(1)
  • 동덕여자대학교 앞 오거리
  • 석관, 월곡, 장위동 일대
  • 내부순환로와 길음동, 월곡동 일대
  • 미아삼거리 입체 교차로 공사 현장(1)
  • 미아삼거리 입체 교차로 공사 현장(2)
  • 미아고가차도(1)
  • 화랑로 일대
  • 화랑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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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랑로 11길 골목(3)
  •  화랑로 11길 골목(2)
  •  화랑로 11길 골목(1)
  • 동덕여대 앞 오거리
  • 월곡동 충남 떡방아간
  • 월곡동 신일컴퓨터크리닝
  • 미아고가차도(2)
  • 하월곡88번지 일대 골목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下月谷洞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50.03.15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근거자료 원문

  • 下月谷洞 경희대학교 뒷산인 天藏山서쪽의 「장위동길」과 「미아로」, 貞陵川을 끼고 있는 下月谷洞은 천장산의 모습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月谷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說과,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미아삼거리에는 신근솔이라는 솔밭이 많아 풍치가 수려했기 때문에 당시 이곳에 酒幕이 밀집하여 지방에서 소를 몰고 서울로 들어올 때에는 신근솔에서 숙박을 하고 소를 매어 놓았다가 장위동 路邊 屠殺場에서 소를 팔고 돌아가거나 소장사들이 달밤에 도착하여 殘月 아침에 흥정했기 때문에 月谷이라는 동명이 생겼다고 한다. 전자는 風水地形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 고, 후자는 人工 즉 생활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월곡동은 조선 초에 漢城府에 속하였는데 英祖27년(1751) 에 궤行된 『守城冊全』 중의 『都城三軍分界總錄』에 東部 仁昌坊 彌阿里契 내에 소속되어 다릿굴 또는 橋谷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뒤 甲午改革(1894) 때에는 漢城府 東署 仁昌坊(城外) 東小門外契의 月谷下里로 되어 있다. 韓日合邦이 강행된 이듬해인 1911년 4월 1일(京畿道令 제3호)에는 月谷里를 京城府 仁昌面에 소속시켰다가 1914년 4월 1일(京畿道令 제1호)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에 편입시키고 종전의 月谷上里,月谷下里를 병합하여 月谷里로 하였다. 광복 후 1949년 8월 13일(大統領令 제159호) 서울市에 편입되면서 城北區에 속하게 될 때 上, 下月谷里로 분리되어 下月谷里로 칭하다가 1950년 3월 15일(市條例제10호) 下月谷洞으로 개칭했으며 崇仁出張所에서 행정을 담당했다. 1975년 10월 1일(市條例 제981호)에 하윌곡동의 일부를 도봉구 미아제4동에 편입시켰고, 1978년 10월 10일(市條例제1286호) 50m 도로를 경계로 종암동 일부가 하월곡동에 편입되었다. 이 洞의 史蹟으로는 애기릉터와 貴人墓터가 었다. 애기릉은 조선말 高宗의 장남 完王의 묘터로서 長子墓址라고 칭하는데 전에는 松林이 우거지고 風致가 뛰어났다. 고종 5년(1868)에 貴人李氏에서 태어난 그는 完和君으로 봉해졌다가 고종 17년(1880) 에 12세로 세상을 떠나자 현재 천장산 아래 동덕여자대학교 자리에 묘소를 만들었다. 完王은 閔妃의 질투로 毒殺되었다는 說이 있다. 長子墓는 西五陵으로 이장했다. 한편 貴人墓터는 高宗의 후궁이며 完王의 생모인 貴人李氏와 역시 후궁인 內安堂 貴人 李氏, 福寧堂 貴人 梁氏의 묘소 터로서 애기릉터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西三陵내의 귀인, 숙의묘역에 이장되었다. 이 洞은 조선 시대에는 산비탈에 띄엄띄엄 人家가 몇 가구씩 있었으며 당시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정릉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인근 마을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물이 맑았기 때문에 콩나물 재배를 주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이후부터 농업은 사라지고 이 정릉천변에는 염색공장, 피혁공장들이 물을 따라 들어서므로서 오염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도로변에 群小商街가 들어섰고 그 밖의 지역은 주택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동덕여자대학교 입구에는 大韓佛敎 眞覺宗 統理院(하월곡동 22번지)이 1966년 1월 17일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진각종은 1947년에 孫珪祥이 경상북도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에서 創敎한 佛敎 중의 한 宗派로서 秘密佛敎 즉 密敎로 불리운다. 밀교는 신라 선덕여왕 때 明郞法師가 四天王寺를 짓고 처음 개창한 불교종파로서 비로자나불을 敎主로 삼고 三密修行을 주로 한다. 하월곡동의 행정은 월곡 제1동, 제2동, 제3동, 제4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3-805쪽
  • 〈月谷 第1洞〉 月谷第1洞은 下月谷洞 중의 서쪽지역, 즉 미아사거리 부근 일대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하월곡 제1동은 1949년 8월 13일 서울市에 편입된 후 月谷洞會라고 하여 下月各洞과 上月谷洞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그 뒤 인구증가로 1970년 5월 18일(市條例 제613호)에 月谷洞事務所는 下月谷第1洞, 第2洞과 上月谷洞事務所 등의 3개로 나뉘었다, 이 당시 하월곡 제1동사무소의 관할구역은 하월곡동 중 장월교를 북상하여 62번지 앞도로를 따라 하월곡동 山 2번지와 경계가 되는 도로 以西지역으로 정했다. 이어서 1973년 7월 1일(市條例 제748호)에 下月谷 第3洞事務所가 신설되었으며1975년 10월 1일(市條例 제981호) 下月谷 第3洞에서 第4洞이 分洞되었다. 그리고 1988년 1월 1일(市條例 제2251호) 행정동 명칭에 따라 下月谷 第1洞이 月谷 第1洞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이 洞관내는 「미아로」, 「정릉길」, 「종암로」 외에 「정릉길」과 「월계로」를 잇는 도로가 뚫려있어 교통의 요지이므로 商街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洞은 종암제2동과 같이 예전에 모래마을, 또는 모랫말, 바닥마을이라고 칭했다. 이것은 정릉천에서 내려오는 모래가 이곳에 모였기 때문에 모래마을이라고도 불렀다. 또 사방이 산능선으로 둘러쌓였고 그 바닥에 평지를 이루었으므로 바닥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은 정릉천의 흐르는 물이 맑았기 때문에 콩나물공장의 주산지로도 유명하였다. 그 뒤 콩나물공장 대신 염색, 피혁공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거의 논밭으로 농업이 주가 되었으므로 주택은 미아리공동묘지 근처에서부터 이 마을에 이르기까지 약 100호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숭곡국민학교 동쪽에는 다릿굴내(月谷川)이 흘렀는데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다. 이 洞관내의 공공기관으로 성북전화국 월곡분국, 성북우체국, 성가병원 외에 서울北工業高等學校, 숭인국민학교, 숭곡국민학교 등 교육기관과 월곡시장, 미아시장이 있으며 정릉천 복개한 곳에 북부 견인이동차량보관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미아시장 뒤 편의 정릉천 변에는 美姬를 둔 많은 酒店이 들어서 있어 속칭 텍사스촌이라고 부른다. 1970년부터 1990년까지 하월곡 제1동의 현황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806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5-806쪽
  • 〈月谷 第2洞〉 月谷 第2洞은 월곡동 중의 남쪽, 정릉천 동쪽 일대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명칭이다. 이 洞은 앞의 월곡 제1동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月谷洞會라 칭하다가 1970년 5월 18일(市條例 제613호)에 下月谷 第2洞이 설치되었다. 이 당시 하월곡 제2동사무소의 관할구역은 하월곡동 중 하월곡 제1동 관할구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정했다. 이어서 1973년 7월 1일(市條例 제784호)에 이 洞에서 下月谷 第3洞이 分洞되었다. 당시의 관할구역은 하월곡동 중 同德女大 북쪽 지적선과 溝渠를 연하고 57번지 앞 小路를 따라 北上, 하월곡 제1동장 관할구역과 접한 以南지역으로 정했다. 이어서 1988년 I 월 1일(市條例 제2251호) 행정동 명칭변경에 따라 下月谷第2洞이 月谷 第2洞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洞 관내에는 애기릉터와 貴人墓址가 있으며 애기릉터에는 同德女子大學校(하월곡동 23-1)가 위치하고 있다. 이 대학교는 대한제국말 국권이 日帝의 毒牙에 잠식당해 가자 春江 趙東植이 민족정신의 기초 위에 國運을 만회하려는 숭고한 목표아래 1908년 同德女子義塾을 설립한 것이 현재 同德女大의 모체이다. 道義, 眞理, 和協을 學訓으로 하는 同德女大는 1950년 5월에 창설, 개교했으며 1952년에 4년제 단과대학으로 개편하여 종로구 관훈동 15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가 1967년 3월 18일 현재의 하월곡동에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洞에는 「花郞路」(하월곡동∼화랑대역∼태릉선수촌시계)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관통함에 따라 양분하고 있는데 공공기관으로는 韓國科學技術硏究院(KIST, 하월곡동39-1), 국민은행 월곡지점, 강북성모병원, 한양성심병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릉천변에는 1963년부터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韓國科學技術院이 천장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大田市구성동으로 이전해 갔으며 동덕여자대학교 서쪽에는 一洋藥品이 세워져 있다. 1970년부터 1990년까지 월곡제2동사무소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807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6-807쪽
  • 〈月谷 第3洞〉 月谷 第3洞은 월곡동의 북동쪽, 「月溪路」(미아삼거리∼창문여중∼하계동)변 일대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洞長管轄區域명칭이다. 이 洞은 月谷洞會로 칭했다가 下月谷 第2洞事務所로 되었으나 1973년 7월 1일(市條例 제784호)에는 하월곡 제2동에서 分洞되어 下月谷 第3洞이 되었다. 그 후 1975년 10월 1일(市條例제981호) 인구증가로 인하여 하월곡 제4동이 이 洞에서 분동되었다. 이 당시 하월곡 제3동의 인구는 37,495명이었는데 관할구역은 하월곡동 76의 1호앞 복개도로를 따라 77의 1호를 경유, 계곡 도로를 동진, 산 2의 1계곡을 따라 동진, 상월곡동과 접하는 계곡 이남 지역으로 정했다. 이어서 1988년 1월 1일(市條例 제2251호) 행정동명칭변경에 따라 下月谷 第3洞은 月谷 第3洞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洞과 월곡 제4동 지역은 대부분 산기슭으로 밤나무골 또는 밤골(票谷)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 계곡에 밤나무가 많은데서 붙여진 것이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월곡 제3동사무소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807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8쪽
  • 〈月谷 第4洞〉 月谷 第4洞은 동덕여자대학교 뒤쪽, 즉 월곡제2동과 제3동 사이의 월곡동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명칭이다, 월곡 제4동의 연혁은 앞의 월곡제3동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月谷洞會, 下月谷 第2洞, 下月谷 第3洞으로 호칭되다가 인구증가로 1975년 10월 1일(市條例 제981호) 하월곡 제3동에서 分洞되었고, 1988년 1월 1일(市條例 제2251호) 행정동 명칭변경에 따라 下月谷第4洞은 月谷 第4洞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 당시 하월곡제4동은 하월곡동 중 하월곡 제1, 2, 3동장 관할구역을 제외한 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게 되었다. 이 洞은 월곡 제3동과 같이 전에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 밤골(票各)이라고 칭했다. 1975년과 1990년의 월곡 제4동의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809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8-809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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