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1914.01.19 - 1993.11.23
인물 개인 문인
시인이자 실업가이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시인부락』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집안 사정으로 건설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 『추풍귀우』(1986), 『임진화』(1989)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시기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일부에는 성북동과 그의 집이 묘사되어 있다.
성북동
  • 김광균_김광균 문학전집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光均
  • 이명칭: 우사(雨社), 우두(雨杜)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문인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30-365

근거자료 원문

  • 1914-1993 개성 출생. 시인이며, 실업가이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설야雪夜」로 등단했다. 중학생일 때부터 신문지면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했고, 서정주, 오장환과 《시인부락》, 신석초, 이육사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김기림, 정지용 등과 같이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 현대적이고 시각적인 감각을 담은 시를 썼다. 시집 『와사등』, 『기항지』 등을 내며 문단에서 자리를 잡아갈 무렵 집안 사정으로 사업을 하게 되어 30년 가까이 문단을 떠났다.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창작 작품을 발표하고, 시집 『와우산』, 『추풍귀우』를 냈다. 딸 김은영과 화가 전성우가 혼인하여 간송 전형필과 사돈 관계다. 시인 김기림, 미술사학자 이용희, 최순우, 화가 배렴 등과 교류하였다. 1980년대 성북동에 살았으며, 부암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28쪽
  • 김광균 시인, 신작시 발표 원로 시인 김광균 씨(71)가 최근 시작을 활발히 하고 있다. 『와사등』의 시인으로 알려진 김씨는 30년대 서정주 씨 등과 「시인 부락」 등 동인을 함께 하면서 초기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았었다. 김씨가 최근에 발표한 작품은 현대문학 3월호에 실린 「노시육편」이란 큰 제목이 붙은 시들이다. 『야반』, 『안성에서』, 『성북동』, 『소곡』, 『목상』, 『한려수도』란 제목의 이 6편의 시로 그의 모더니즘적 특성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일보』 1984. 3. 20.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62쪽
  • 6. 성북동 문화예술인 주소지 이름 : 김광균 주소 : 성북동 330-365 분야 : 문학(시)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9쪽
  • 정의 해방 이후 『기항지』, 『황혼가』 등을 저술한 시인.실업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기도 개성 출생. 송도상업학교(松都商業學校)를 졸업하고 고무공장 사원으로 군산(群山)과 용산(龍山) 등지에 근무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불과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발표한 「가신 누님」(中外日報, 1926)을 비롯하여 「야경차(夜警車)」(동아일보, 1930) 등이 그의 습작품에 해당된다면, 『시인부락(詩人部落)』(1936), 『자오선(子午線)』(1937) 동인으로 가담한 이후의 활동은 본격적인 시단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된 「설야(雪夜)」는 그로 하여금 시단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게 한 것이다. 이후 그는 『와사등(瓦斯燈)』(남만서점, 1939)·『기항지(寄港地)』(정음사, 1947)·『황혼가(黃昏歌)』(산호장, 1959) 등 3권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실질적인 시작 활동은 1952년 죽은 동생의 사업을 맡아 경영하면서 중단되고 실업가로 변신하여 국제상사중재위원회 한국위원회 감사, 무역협회 부회장, 한일경제협력특별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말년 가까이 떠났던 시단 복귀의 신호이듯 이전에 간행한 시집을 정리하여 『와사등』(근역서재, 1977)을 출간하더니, 1982년 「야반(夜半)」 등 5편의 시작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 뒤 문집 『와우산(臥牛山)』(범양사, 1985)과 제4시집 『추풍귀우(秋風鬼雨)』(범양사, 1986) 등을 간행하였다. 김광균은 정지용(鄭芝溶)·김기림(金起林) 등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을 선도한 시인으로 도시적 감수성을 세련된 감각으로 노래한 기교파를 대표하고 있다. 그는 암담했던 30년대의 사회현실로서 도시적 비애의 내면공간을 제시하여 인간성 상실을 극복하고자 한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지적이고 이지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시인으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실존의 중요성을 확보하고 생의 의미를 긍정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감각적 이미지와 신선한 비유가 낭만적 정조와 융화되어 서정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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