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정릉 창작소
2013
장소 문화예술(소극장, 갤러리, 관련 연구소)
성북구 아리랑로 120-10(정릉1동 110-43)에 위치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주민 자치활동을 통해 2012년 아리랑시장에 행복한 정릉카페를 만들고 운영하던 주민들이 문화예술 부문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자 만든 공간이 ‘행복한 정릉 창작소’이다. 카페에서의 단순한 친목도모와 공동체적 유대를 넘어서서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활동을 확장시키고자 고민하던 주민들이 서울시의 마을예술창작소 지원사업에 공모하여 당선되면서 창작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창작소는 자그마한 공간에서 동네사람들을 위한 쉼터, 놀이터, 배움터로서의 위상을 표방하면서, 1회성, 단기, 장기의 문화예술 강습을 개설하고, 어린이 놀이 모임, 동네 극장, 각종 모임 대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정릉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815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1동 110-43 (아리랑로 120-10)

근거자료 원문

  • 마을예술창작소? 우리도 예술하면 안 돼요? 대학로가 가까이 있어도 일 년에 연극 보러 갈 일이 몇 번 없고, 성북동이 옆에 있어도 갤러리는 멀게만 느꼈던 우리에게 문화생활이란 심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할 뿐 아니라 돈을 들여야만 향유할 수 있는 소비재라는 인식이 강했다. 구경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라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라면 어떨까? 같이 모여서 영화도 보고 바느질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그림도 그린다면?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 같은 것도 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동네 사람들끼리 배우고 익힌 걸 나누고 발표한다면? 이런 일이 동네에서 일어난다면 정말 재밌겠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공간이자 돈이었다. 우리가 하고픈 걸 하기에 열 평도 안 되는 카페는 아무래도 너무 좁았다. 더구나 아무리 동네 사랑방이라지만 카페는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 아닌가. 그냥 커피만 마시고 가고 싶은 손님들에게 이런 광경은 오히려 불편을 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건 역시 무리한 생각인 듯했다. 좁은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더 넓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면 그 때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며 이야기를 접으려는 순간, 다시 누군가가 툭 던지는 말. “서울시에서 마을예술창작소라는 지원사업을 한대!” “지난번에 구청에 볼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봤는데, 우리가 하고 싶은 게 그거 아냐?” 카페를 준비하며 간절히 원할 때 기회는 온다는 것을 체험한 우리였다. 우리는 당장 서울시 사이트를 검색해 마을예술창작소 지원사업을 찾아냈다. 마을을 기반으로 한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고, 문화예술을 통한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마을예술창작소 조성 및 운영 지원사업을 다음과 같이 시행합니다. 어쩜 이럴 수가? 우리의 바람이 엉뚱한 상상이 아니라 도시 서민들의 보편적인 욕구였고 그걸 실현할 수 있게 서울시가 지원해 준다니! 우리는 일사천리로 사업계획서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카페에서 문화제를 함께 준비하며 뜻을 모은 주민들도 합류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어린이집 엄마, 홍보대행 회사에 다니면서 문화행사에 관심 많은 방과 후 학부모, 우리에게 크라우드 펀딩을 소개해 주었던 독립영화 감독 아빠도 힘을 보탰다. 우리 동네에 마을예술창작소가 생긴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에게 적합한 공간디자인과 그 공간을 채울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마련할까, 동네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서 어떤 식으로 모임을 꾸려갈까. 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해보고, 비슷한 사례도 찾아보고,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상상한 것을 구체화시켜 보았다. 우리는 우선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공간은 최대한 단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없이 방음과 조명, 음향 시설만 갖춘 연습실 형태의 공간이면 좋겠다 싶었다. 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카페를 통해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멤버를 모으고 그렇게 몇 명이 모이면 동네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 그래서 누구라도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의 기획자가 되어 스스로 모임을 주도해 나가는 것. 어떨 땐 배우는 입장이 됐다가 어떨 땐 가르치는 입장이 되는 것.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에술가들을 발굴해서 동네의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 이런 내용들로 공간을 채워가는 거창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그래도 우리가 상상했던 걸 최대한 살려서 써야지 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몇 날 며칠이 걸려 드디어 한 편의 사업계획서가 완성되었다. 서울시 사업인 마을예술 창작소 공모는 지원규모도 큰 데다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심사과정도 까다롭고 응모한 팀들도 굉장했다. 시청에 면접심사를 받으러 간 날 쟁쟁한 경쟁팀들을 보고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화려한 언변을 아니지만 소박하게 우리의 계획을 발표하고 동네로 돌아온 날, 왠지 마을 활동이란 게 갈수록 더 많은 전문성과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 가는가 싶어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안 되면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자 했지만 속마음은 다들 그렇지가 못했다. “동네 사람들과 연극을 배워서 마을극단을 꾸려볼까? 밴드를 조직해볼까?” 상상이 우주 밖으로 팽창하는 동안 현실적인 문제도 닥쳐왔다. “적당한 공간을 어떻게 찾지?” “운영자는 누구로 하고 초기 투자금 마련을 위해 또 출자자를 어떻게 모아야 하나?” “에잇, 머리 아프다. 어쩌다 일을 이리 크게 만들어 놨누.” 머릿속으로 창작소를 그리며 설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던 어느 날 드디어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모 당선자 명단이 떴으니, 19개 이름 중에 행복한 정릉마을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93-196쪽
  •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우리의 사업제안서가 뽑혔다는 건 우리가 상상한 것이, 우리가 계획한 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실현가능한 것이니 그걸 과감히 실행해 보아도 좋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신이 났다. 우리는 준비기간 점찍어 둔 정릉교회 뒤편 20평짜리 사무실을 계약하고 시설공사에 들어갔다. 애초 계획한 대로 최대한 심플하게 방음시설과 조명, 음향만 갖추고 아이들이 사용할 것을 고려해 바닥에는 매트를 깔았다. 카페 공사 때와 비교하면 차라리 너무 쉬운 공사였다. 카페를 준비할 때는 굵직한 집기구입부터 사야할 것이 수십 가지에 이르렀지만 창작소는 신발장 하나, 의자 몇 개가 다였다. 공간이 단순하니 인테리어랄 것도 없었다. 옆집에 피해 주지 않도록 방음만 잘 되면 대만족. 아무것도 없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행복한 정릉창작소는 이렇게 문을 열었다. 창작소를 오픈하자마자 의욕적으로 우리가 계획했던 프로그램들을 가동시켰다. 연극배우인 엄마가 주도하는 ‘다짜고짜 연기 워크숍’과 ‘다짜고짜 뮤지컬 노래 한곡 부르기’. 하지만 프로그램을 딱 거기서 멈췄다. 어린이집과 방과후 부모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쉽고 빠르게 진행됐던 몇 개의 프로그램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만에 끝나는 단발성 프로그램. 이후의 지속성을 끌어내지 못한 채 우리는 슬럼프에 빠졌다. 검증되지 않은 프로그램들이었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너그러이 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었던 안일한 마음도 있었다. 적극적인 홍보도 없이 우리끼리만의 한판놀음으로 끝난 뒤 남은 것은 자신감 상실. 공간은 쉽게 만들어 졌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이어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페 운영으로 자신감을 얻은 우리였지만 창작소는 카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카페는 목적성이 분명한 곳. 일차적으로 뭔가를 사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동네주민들이 손님으로 드나들다가 친분이 쌓이고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다른 활동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카페에서 사람을 모으고 홍보를 한다지만 하루 손님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작은 카페에서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공간만 마련되면 저절로 사람들이 모일 거라 생각한 건 우리의 오판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기에 창작소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서 우리는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다. “우리가 무슨 기획사 직원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프로모션도 하고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전략도 세워야 한다니 여기가 무슨 회사인가?” “인건비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올인해야 하나?” 강좌라도 하나 준비해 볼라치면 참가비는 주민센터보다 싸야 하고 강사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고 그럼 예산은 어디서 따와야 하고 이런 조건부터 따지게 되었다. 공동체 활동이 자발적인 참여에서 부담스런 노동으로 변질되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 시작할 때 그렸던 창작소의 청사진은 점점 희미해져 푸르스름한 기운도 남지 않은 듯이 느껴졌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물어오면 망설이거나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다. “여기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문화공간이에요” 어렵게 말을 꺼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뭐야?”하는 눈빛이거나 “아, 네”하면서 그냥 지나가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홍보 현수막을 내걸었더니 정말로 무슨 학원인 줄 알았는지 누군가가 하루 만에 현수막을 떼어가 버리는 일까지. 창작소 운영진은 단체로 멘붕(무력함) 상태가 되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96-199쪽
  • 뜻밖의 돌파구, 일상이 예술이 되다 그렇게 두어 달을 사춘기 청소년처럼 정체성 고민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무렵 카페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가 행복한 정릉 창작소입니까?”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네. 창작소는 아니고 거기를 운영하는 행복한 정릉카페인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요?” “전화로 말하기는 그렇고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무슨 일일까 감은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날짜와 시간을 잡고 카페 위치를 자세히 설명을 드렸다. 전화의 주인공을 만나기로 한 시간, 백발의 노신사 한 분이 카페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야기인즉슨 이 어르신께서 오랫동안 강남에서 입시미술 학원을 운영하시다가 학원을 접으시고 남는 시간을 동네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은데 정릉2동 주민센터에 문의했더니 주민센터에는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프로그램을 새로 개설해 줄 수는 없냐고 재차 문의하니 주민센터 직원이 행복한 정릉창작소를 소개해 주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한평생 그림만 그려 오신 분으로 창작소가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동네 사람들을 모아 그림 수업을 열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도 경제적인 문제로 학생시절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지금이라도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몇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세팅한 프로그램이란 애당초 창작소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어떤 배움, 어떤 모임이든 그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요구가 먼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사교육업체에게나 해당하는 일이었다. 동네일이란 우연히 시작돼서 슬그머니 번지듯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였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우리의 모습이란. 그 후로 선생님은 자주 카페에 들르셔서 우리들과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나누시고 프로그램 설계도 함께 하셨다. 수업교안을 어떻게 짤지, 회비는 얼마나 거둘지, 일정과 홍보, 모집 방안, 준비물 구입은 어떻게 할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함께 상의했다. 선생님을 뵙고 첫 모임이 시작될 때까지 꼬박 3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공을 들여 준비한 그림교실. 50통이 넘는 문의전화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참여를 하겠다고 모인 인원이 30명에 이르렀다. 서로 안면이 없는 30여 명의 동네 주민들이 그림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는 이유 하나로 모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평일 낮 시간대는 주부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50대 아저씨, 30대 총각, 팔순을 넘긴 어르신도 계시고, 대학생, 자영업하시는 분, 주부, 프리랜서 작가, 그야말로 다양한 주민들의 동아리가 생긴 것이다. 그림교실을 필두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모임들이 창작소에서 진행됐다. 스므트폰을 게임기로만 쓰는 초등학생들에게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스마트폰으로 영화 만들기-레디큐」, 감성이 담긴 손글씨 배우기 「캘리그라피 강좌」,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배운 「발도르프 인형만들기 모임」, 인형만들기 모임에서 진화한 「엄마들의 인형극 프로젝트」,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한 「세계동화 상상자극 워크숍」, 그림교실 회원이 선생님이 된 「토요기타교실」, 초등학생을 위한 「재미있는 책읽기, 마음을 여는 글쓰기」와 「어린이 난타」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창작소와 함께 했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밖에도 창작소는 지역 청년들의 워크숍, 젊은 예술가들의 네트워킹 파티, 동네 사람들의 소셜다이닝, 영화 시사회 등 다양한 행사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제 행복한 정릉창작소에는 일회성 행사와 한 달짜리 단기성 프로그램, 2,3개월짜리 프로젝트도 있고 6개월 이상 진행되고 있는 모임도 있다. 다양한 요구와 형편에 따라 다양한 창작활동이 일어난다. 지난 일 년간 한 번 이상 창작소를 이용한 사람이 300명을 넘고 그 중에 매주 정기적으로 창작소를 이용하는 사람이 30명이 넘는다. 창작소를 아껴주고 소중히 여기는 주민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창작소는 이렇게 동네에 슬며시 스며들고 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99-201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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