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정릉 카페
2012.09 - ?
장소 상업시설
성북구 아리랑로19길 20에 있었던 카페였다. 행복한 정릉카페는 2012년 아이를 등교시킨 ‘엄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하다가 마을공동체 활동에 뜻을 모아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구상되었다. 5명의 초기 구성원들은 다른 마을공동체를 답사하면서 사례를 수집하였고, 마침내 2012년 9월 10일 아리랑시장의 영신빌딩에 ‘행복한 정릉카페’를 오픈하였다.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소통이 활발해졌고, 다양한 문화 활동과 소모임 활동의 거점이 되는 동네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카페를 중심으로 주민 자치활동의 영역을 확장하여, 2013년에는 ‘행복한 정릉 창작소’를 열었다. 현재 카페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정릉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상업시설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2012.09 - ?
  • 비고: 2014년 폐점 추정

주소

  • 주소: 02814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 106-3 (아리랑로19길 20 영신빌딩)

근거자료 원문

  • 모든 일은 수다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끈끈한 우리에게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십 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면서 공동육아도 하고 방과후 교실도 하는데 정작 이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뭐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육과 교육은 공공성을 띤 일인데 너무 우리끼리만 하고 스스로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이야.” “십 년 넘게 이 동네서 활동했으면 이제 조합원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마을과도 좀 접속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집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어 무지개 방과후를 졸업했을 때는 마침 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단절 여성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2011년 말 무렵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 오전이란 하릴없이 게으름을 만끽할 수 있는 꿀맛 같은 시간. 나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엄마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낮 시간에 집에 있는 엄마들을 불러 국수를 끓여먹고, 함께 모여 극장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서로의 집에 놀라가 커피도 얻어 마시는 등 모이는 횟수가 늘었고, 이런저런 자리에서는 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이 꽃을 피우는 엄마들의 수다. “어린이집 생활을 하다 보니 조합은 늘 바쁘고 시끌시끌하지만 그 안에서 왠지 모를 무료함을 느껴. 그 동안 마을 사랑방 만들기 얘기가 몇 번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볼 때가 되지 않았어?” “맞아, 맞아. 어린이집은 어린이집이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공방도 괜찮고 작은 책방도 좋고, 그냥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도 좋을 것 같아.” “음식 솜씨 좋은 엄마들이 반찬가게 나 식당 같은 걸 만들면 어때?” “그나저나 동네마다 커피점이 넘쳐 나는데 우리 동네엔 왜 카페 하나 없는 거야? 매일 커피 마시러 누구네 집에 모이는 거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 “그럼 차라리 우리가 카페를 하나 차리면 안 돼?” “그래! 우리가 직접 카페를 만들어보자!” “우리가 협동조합을 해봤으니까 카페도 협동조합식으로 하면 되겠구만.” 이야기는 순식간에 날개를 달았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 얘기를 처음 꺼낸 엄마가 조합게시판에 「시작해 봅시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공식적인 작당모의가 시작됐다. ‘행복한 정릉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모인 5명의 멤버들. 이제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이었다. 삼청동, 부암동 같이 카페가 밀집한 거리에 답사를 나가기도 하고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카페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성미산마을과 삼각산재미난마을 같이 마을공동체로 유명한 곳의 담당자를 만나 실제 사례를 듣는 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했다. 두 명, 세 명으로 조를 짜서 효율적으로 움직여 보기도 하고 다 같이 떼 지어 몰려다니며 답사를 온 것인지 나들이를 온 것인지 모르게 웃고 떠들다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벌써 근사한 카페를 열두 번도 더 지었다 허물고 또 짓고 했지만, 역시 현실적인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아무리 작은 카페라도 가게 하나를 차리기 위한 비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목돈이 들어가는 월세보증금부터 커피머신이나 제빙기 같은 기본적인 집기와 시설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고, 최소한으로 공사를 한다 해도 인테리어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엔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77-179쪽
  • 수다와 문화, 착한 먹을거리가 있는 동네 카페의 탄생 한여름의 무더위와 태풍의 비바람이 지나간 2012년 9월 10일. 정릉의 오래된 재래시장인 아리랑시장 한가운데 20년 된 건물에 우리의 열망이 담긴 행복한 정릉카페가 드디어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다들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전날 밤잠을 설치고 카페로 모였을 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가득 찬 모두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9시에 문을 열고 시장 상인들에게 떡을 돌린 후 카페에 모여 앉았는데 12시가 되도록 손님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걸판지게 고사를 지낼 걸 그랬나?” “오픈기념 이벤트라도 해야 할까?” “역시 너무 우리가 너무 순진했어” “경험도 없이 우리가 섣불리 일을 벌인 거야” 별별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며 서로의 얼굴만 머쓱하게 쳐다보고 있을 즈음, 쓰윽 문이 열리며 들려오는 소리. “여기가 커피 파는 데 맞아요?” 손님은 하나인데 맞이하는 사람은 다섯, 카푸치노 한 잔 만드는데 세 명이 붙어서 허둥지둥. 동시에 여러 잔 주문이 들어오면 손이 떨리기까지. 어설픈 카페지기들의 좌충우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카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대형 커피 프렌차이즈처럼 세련되고 능숙한 맛은 없을지 몰라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담백하고 정겨운 맛이 바로 그것이다. 개업하기 한 달 전부터 거의 매일 모이다시피 하며 개발한 메뉴들은 우리들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티백이나 가루를 전혀 쓰지 않고 싱싱한 레몬과 오미자를 유기원당에 재워 담근 오미자레몬차, 유기농 딸기잼으로 만든 스무디, 우리밀과 무항생제 유정란, 견과일 등 천연재료만으로 만든 수제베이커리, 매일 아침 다양한 제철 재료로 만든 샐러드를 우리밀 식빵에 발라 만드는 샌드위치, 유산균 종균을 키워 매일 조금씩 만드는 신선한 요거트. 그밖에도 공정무역 코코아가루를 사용한 핫초코, 국산 무농약 미숫가루와 율무차, 착향료 없이 국산 복숭아가루와 유기원당으로 만든 아이스티분말 등 카페에서 파는 모든 메뉴는 유기농, 무농약의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먹을거리이다. 조미료가 가득한 길거리 음식들 속에서 이런 착한 간식과 음료를 파는 엄마들의 카페라는 것이 조금씩 알려지자 학교를 마친 학생들과 어린 아이 손을 잡고 오는 젊은 엄마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카페를 가게라기보다는 옆집처럼 푸근한 공간, 참새 방앗간처럼 매일 들락거려도 아무렇지 않은 공간이 되도록 카페를 꾸몄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엄마들, 학교 마친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지 못해 걱정하는 엄마들, 더울 때 시원한 물 한잔, 추울 때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싶은 아이들,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 뭔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 아니면 그냥 츄리닝 차림에 슬리퍼 끌고 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저녁 내내 수다 떨고 싶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몇 개의 테이블을 포기하고 카페 한 모서리에 아이들이 신발 벗고 올라가 누울 수 있고,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마루를 만들었다. 8평 남짓 되는 공간에 2평쯤 되는 자리를 온돌이 깔린 작은 방으로 만든 것이다. 이 작은 방에서 아기 엄마들은 모유 수유를 하거나 아기 기저귀를 갈 수도 있고, 자는 아이를 뉘여 놓고 편안히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부릴 수도 있게 됐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84-187쪽
  • 만나요, 우리! 그런데 어떻게 만나? 소소했던 카페문화제는 긴 여운을 남겼다. ‘만나요, 우리!’라는 문화제 슬로건은 우리 카페 전체의 모토가 되었다. 손님이 오면 으레 “이 동네 사시는 분이세요?”라고 말을 거는 카페지기들, “이 카페는 올 때만다 사람이 바뀌네.” “사장님 바뀌셨어요?” 손님들이 이런 질문이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카페가 생긴 취지와 유래를 일장연설로 풀어내는 우리들. 그렇게 손님들과 친해지고 단골이 생기면서 카페는 모르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얼굴을 트고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관계로 확장되는 소통과 매개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애초엔 단순히 엄마와 아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페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사춘기 소녀들이 주스와 케이크를 시켜놓고 수다를 떨다 가기도 하고, 근처 공사장 인부 아저씨들은 점심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오시기도 했다. 이뿐일까. 정릉에 산책 나오신 어르신들이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누다 가시고, 옷수선 가게 사장님은 일하시다 무릎이 아파 좀 쉬어야겠다며 커피배달을 시키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카페가 동네 사랑방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어가고 있을 대 우리는 지난 카페 문화제에서 보았듯이 3동네 사람들을 문화로 이어주고, 공통의 관심사로 엮어주는 무언가가 더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엄마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래놀이 배우기, 작가와 함께 하는 사진교실, 환경단체에서 도움을 받아 진행한 건강강좌 등이었다. 주말마다 카페에 모여서 엄마들이 어릴 적 하던 실뜨기, 사방치기 같은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셔터만 누를 줄 알았던 카메라 사용법을 사직작가에게 배워 동네 골목으로 함께 출사를 나가기도 하고, 평소 관심은 많았지만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던 건강과 환경에 대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우리 카페의 모토인 ‘만나요, 우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넓혀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92-193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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