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감로도
1883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유물 회화
개운사(성북구 개운사길 73)가 소장하고 있는 불화이다. 이 감로도는 1883년에 3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제작된 불화로서 대허 체훈(大虛 軆訓)과 천기(天機), 수일(守一), 태삼(台三) 등이 그린 것이다. 감로도(甘露圖)는 지옥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설법을 듣는 불화로, 개운사의 감로도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성 당시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의 생활상 등 수륙재(水陸齋)의식과 생활상을 충실히 묘사했으며, 30여 명에 이르는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된 불화로서 당시 왕실에서의 불화발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6년 7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안암동
  • 개운사 감로도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開運寺 甘露圖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대허 체훈(大虛 軆訓), 천기(天機), 수일(守一), 태삼(台三)
  • 비고:
  • 유형: 유물 회화

시기

주소

  • 주소: 02842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5가 157 개운사 (개운사길 73)
  • 비고: 개운사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그리고 현재 개운사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 1점과 서울특별시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 5점이 보관되어 있다. 서울 개운사開運寺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발원문發願文(보물 제1649호), 개운사 감로도甘露圖(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2호), 개운사 신중도 神衆圖(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3호), 개운사 팔상도八相圖(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4호), 개운사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5호), 개운사 목木 아미타불좌상阿彌陀佛坐像 복장일괄腹藏一括(서울특별히 유형문화재 제291호) 등이 그것이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32-233쪽
  • 그리고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인 신중도와 지장시왕도는 187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감로도와 팔상도는 1883년에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네 그림 모두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화의 모습을 띠고 있으며, 특히 서울 ·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33-236쪽
  • 이 감로도는 1883년에 3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제작된 불화로서 대허 체훈(大虛 軆訓)과 천기(天機), 수일(守一), 태삼(台三) 등이 그린 것이다. 현재는 개운사 대웅전 향좌측벽에 봉안되어 있는데, 가로로 긴 화면의 상단에는 칠여래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으며, 좌측에는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 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來迎)하는 모습과 왕후장상(王侯將相), 선왕선후(先王先后), 북채를 든 뇌신(雷神), 우측에는 지장삼존(지장보살・도명존자・무독귀왕)과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내영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불화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성 당시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의 생활상 등 수륙재(水陸齋)의식과 생활상을 충실히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감로도는 현재 수락산 감로도(1868년)를 비롯하여 경국사 감로도(1887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봉은사 감로도(1892), 청룡사 감로도 (1898년), 보광사 감로도(1898년) 등에 남아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 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가 생기 있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30여 명에 이르는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된 불화로서 당시 왕실에서의 불화발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개운사 감로도
  •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감로도. 개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12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86㎝, 가로 289.5㎝. 3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제작된 감로도로서 1883년에 대허 체훈(大虛 軆訓)과 천기(天機), 수일(守一), 태삼(台三) 등이 조성하였다. 내용 가로로 긴 화면의 상단에는 칠여래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으며, 좌측에는 아미타삼존 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과 왕후장상, 선왕선후, 북채를 든 뇌신, 우측에는 지장삼존[지장보살·도명존자·무독귀왕]과 인로왕보살이 내영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칠여래의 아래에는 제단 좌우에 높은 기둥을 세운 후 ‘나무화신석가모니불[南無化身釋迦牟尼佛]’, ‘나무법신비로자나불[南無法身毘盧舍那佛]’, ‘나무보신노사나불[南無報身盧舍那佛]’의 삼신불번(三身佛幡)을 늘어뜨리고 갖가지 꽃과 공양물을 가득 배설하였으며, 주상전하, 왕비전하, 세자전하, 시방삼세의 위패를 모셨다. 제단에 이르는 돌계단 아래 좌우의 커다란 화병 안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모란이 가득 꽂혀있어 화려하게 치장된 당시 제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제단 우측에는 천막 안에서 스님들이 나란히 모여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작법승(作法僧)들이 큰 북과 바라 등을 두드리며 의식을 집전하는 모습, 승무를 추는 모습, 커다란 공양물을 머리에 이거나 들고서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표현되었다. 화면의 하단 중앙에는 서로 마주보고 꿇어앉은 한 쌍의 아귀(餓鬼)가 크게 묘사되었다.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입과 가는 목, 불룩한 배 등 아귀의 특징을 잘 묘사하였으나 얼굴 표정 등에서 다소 희화화(戱畵化)된 느낌을 준다. 아귀의 좌우로는 산악과 수목으로 분리된 공간 속에 세속의 다양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한복을 입은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싸우는 장면,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광대가 거꾸로 서는 묘기를 부리고 초랭이가 부채를 들고 춤추는 장면, 죽방울 놀이 하는 장면, 서당 모습, 밭가는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음식을 먹거나 술을 받는 모습, 물건을 파는 모습 등은 당시 장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여기에 표현된 풍속 장면들은 주로 장례나 영가천도 등의 행사와 관련된 장면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수륙화(水陸畵)로서의 감로도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화면 우측으로는 뇌신(雷神)을 표현한 화염 아래로 우산을 쓴 인물과 뱀에게 쫓기는 장면 등 『법화경(法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구제난(救濟難) 장면과 농사짓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병자를 진료하는 모습, 소고 등을 갖고 무리지어 노는 모습, 일하러 가거나 장터에 가는 모습 등의 다양한 일상 생활 장면이 표현되었다. 더불어 죄인들을 벌하는 모습, 전쟁 장면 등도 묘사되었다. 전체적으로 적색과 녹색 위주의 채색으로 인한 보색 효과와 양청색이 주는 강조,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는 생기있는 분위기로 일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황색, 백색, 청색 등이 어우러져 화려한 색감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감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성 당시 수륙재 같은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의 생활상 등을 충실히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감로도는 현재 수락산 감로도(1868년)를 비롯하여 경국사 감로도(1887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봉은사 감로도(1892년), 청룡사 감로도(1898년), 보광사 감로도(1898년) 등이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에 활기가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30여 명에 이르는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된 불화로서 당시 왕실에서의 불화 발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서울 개운사 감로도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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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운사
    이야깃거리
    개운사
    분류: 장소, 유물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