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화는 1870년에 경선 응석(慶船 應釋)과 봉감(奉鑑),자한(自閒), 체훈(軆訓)이 그린 개운사 지장시왕도를 초본으로 하여 혜산축연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혜산축연(惠山 竺演)은 19세기 후반 ~ 20세기 전반 강원도와 경기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으로 금강산의 신계사, 유점사를 비롯한 강원도 일대의 사찰들과 흥천사, 봉림사 등 경기지역 사찰의 불화를 많이 조성한 화승이다. 그는 서울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불화를 제작하여 현재 서울에서 조성한 작품은 20여 점이 남아있는데, 그중 1887년 경국사 불화 제작시에는 수화사(首畵師)로 활동하면서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 시기에는 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파격적인 음영법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듯 전통적인 수법의 양식이 보여진다. 특히 이 불화는 선악동자를 함께 그린 지장시왕도 형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유난히 가늘고 긴 눈과 아주 작은 입 등 얼굴 한 가운데로 몰려있는 이목구비라든가 놀란 듯한 동그란 눈동자와 좁은 미간, 눈 주위와 코, 뺨 부분에 음영을 표현하여 얼굴의 골격을 강조한 점은 다른 지역의 불화와 구별되는 서울경기지역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경국사 지장시왕도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경국사에 소장된 조선 말기의 지장시왕도.
개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0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1㎝, 가로 174㎝.지장보살과 시왕 등의 권속을 함께 그린 지장시왕도로, 화승 혜산축연(蕙山竺衍)과 성전(性典), 봉조(奉照)가 1887년에 제작하여 경국사에 봉안하였다.
내용
경국사 지장시왕도는 화면 아래쪽의 먹으로 쓴 화기(畵記)를 통해 화승 혜산축연(蕙山竺衍)과 성전(性典), 봉조(奉照)가 1887년에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승려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이 원형의 광배를 뒤로 하고 양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투명한 구슬을 맞잡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그 앞으로 선악동자(善惡童子)가 지장보살의 지물(持物)인 석장(錫杖)과 함(函)을 들고 중앙을 향해 서 있고 지장보살의 양쪽에는 협시(脇侍)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 그리고 지옥을 관장하는 10명의 대왕인 시왕과 판관 등의 권속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녹색, 황토, 군청 등의 색을 사용하였으며, 군데군데 금을 사용하는 등 섬세한 서울·경기 지역 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의 그림은 1870년 화승 경선응석(慶船應釋)이 그린 개운사(開運寺) 지장시왕도를 시작으로 서울 성북구 미타사(彌陀寺)와 강화 백련사(白蓮寺) 등에 유사한 작품들이 대여섯 점 가량 남아 있어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에서 특히 유행했던 지장시왕도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경국사 지장시왕도는 후원자가 5명의 상궁(尙宮)들로만 이루어져 제작된 작품으로 주목된다. 또한 이 불화의 수화승인 축연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의 유명한 불모(佛母)로 1870년대 중반부터 1930년경까지 활동하며 많은 불화를 제작하였다. 경국사 지장시왕도는 축연의 활동 시기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화면 아래쪽 중앙에서 피어오르는 황토색 구름의 표현에서 음영법을 잘 구사했던 그의 화풍이 엿보인다.
특징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등의 각 권속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지장보살의 앞쪽에 선악동자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이 지장시왕도의 도상적 특징으로,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던 지장시왕도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는 섬세한 서울·경기 지역 불화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경국사 지장시왕도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금강산의 유명한 화승 축연이 수화승으로 참여하고 궁궐의 상궁들이 후원하여 제작된 불화이다. 또한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던 지장시왕도의 도상과 화풍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