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박물관 소장 홍진종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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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유물 의복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복식유물이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 홍진종(洪鎭宗)[1649-1702]의 의복으로 1968년 5월 20일 경기도 오산에서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것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남자바지 3접, 창의(氅衣) 9점, 중치막(中致莫) 1점, 심의(深衣) 1점, 답호(褡護) 1점 등이 있다. 유학자들은 사망 후 심의를 수의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수의로 입은 심의가 다수 출토되는데, 홍진종의 묘에서 출토된 심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심의 유물이다. 이들 의복은 17세기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 당시의 복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80년 4월 1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안암동
  • 고대박물관 소장 홍진종 의복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高大博物館 所藏 洪鎭宗 衣服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의복

시기

  • 시대: 조선시대
  • 시기: ?
  • 비고: 17∼18세기 제작

주소

  • 주소: 02841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2 (안암로 145)
  • 비고: 고려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② 高大博物館所藏 洪鎭宗衣服 조선시대의 문신 洪鎭宗의 의복이 중요민속자료 제113호로 지정되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8년 경기도 오산읍에서 移葬할 때 출토된 것으로서 남자바지 3점, 衣9점, 中致莫1점, 深衣1점, 搭護1점 등이 출토되었다. 남자바지 3점 중 1점은 마루폭을 이중으로 붙여서 만든 무명의 누비바지이고, 2점은 겉과 속이 모두 고운 명주로 만든 바지로 밟게 솜을 두고 1.5㎝ 너비로 누벼서 만든 것과 솜을 두껍게 두고 6㎝ 너비로 누빈 동절용 바지이다. 창의 9점 중에 2점은 소창의이고 나머지 7점은 모두 대창의이다. 소창의들은 소매통이 좁은 窄袖의 창의로 모두 누볐으며 소매통은 廣袖에 비하여 좁으나 진동은 큰 차이가 없다. 대창의는 모두 고운 명주에 솜을 앓게 두고 전체를 곱게 누빈 것들로, 깃의 모양은 반달깃이며 소매는 두리소매이고 옷자락의 끝이 모두 당코형인 것이 특정이다. 중치막은 단 하나뿐인데 솜을 두껍게 두고 누빈 것으로, 窄袖에 뒤가 터져 있으며 양 옆은 막혀 있다. 보통 중치막이라고 하면 소매가 넓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중치막은 좁은 소매이다. 심의는 흰색 추布로 되어 있으며 標·裾·手口에 전부 黑襈이 둘러져 있다. 답호는 앞이 뒤보다 30㎝정도 긴 누비답호인 점이 독특하다. 이들 의복은 숙종 때의 것으로 당시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03-704쪽
  • 정의 1968년 경기도 오산에 소재한 조선 후기의 문신 홍진종(洪鎭宗)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개설 1968년 5월 20일경기도 오산에서 홍진종(1649∼1702)의 묘를 이장(移葬)할 때 출토된 것이다. 홍진종은 1677년(숙종 3) 진사에 급제하여 통헌대부(通訓大夫)와 평강현감(平康縣監)을 지낸 인물이다. 출토 당시에는 16점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나 훼손이 심한 소창옷 1점을 제외한 15점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물은 심의 1점, 중치막(中致莫) 6점, 소창의(小氅衣) 3점, 협수(夾袖) 1점, 답호 1점, 바지 3점 등 모두 15점이다. 1908년 중요민속자료 제113호로 지정되어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심의(深衣)는 길, 상, 소매부분이 백색 저포(苧布)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매끝과 깃에서 도련까지 흑색 무문단(無紋緞)으로 가장자리에 선을 둘렀다. 치수는 뒷길이 138㎝로 상의(上衣) 52㎝와 하상(下裳) 86㎝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화장 113㎝, 뒤품 78㎝이며, 띠의 길이는 239㎝이다. 중치막[中赤莫]은 모두 6점으로 명주에 솜을 얇게 두고 전체를 곱게 누빈 누비중치막이다. 깃의 모양은 칼깃이며, 소매가 넓고 무가 없고 옆선에 옆트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기는 뒷길이 116.7∼127㎝, 화장 100∼115.5㎝, 뒷품 46∼58㎝이며, 너비 45.5∼52㎝ 정도의 넓은 소매가 달려있다. 소창의 3점은 중치막과 구성 특징은 같으나 크기가 약간 작고 소매통이 매우 좁다. 크기는 길이 104∼116.2㎝, 화장 94.5∼99㎝, 뒷품 40∼56㎝이다. 모두 누비옷으로 되어 있다. 솜을 두껍게 두고 누빈 것으로, 착수에 뒤가 터져 있으며 양옆은 막혀 있는데 이를 협수(夾袖)로 구분하였다. 답호는 앞길이가 115㎝, 뒷길이가 73㎝로서 뒤가 앞보다 42㎝ 정도 짧은 누비답호이다. 앞 목둘레는 깃이 없이 둥글게 파여져 있으며 소매가 없고 양 옆선에는 앞길과 뒷길을 연결하는 고리가 달려 있을 뿐 전체적으로 옆이 트인 형태로 전복의 형태와 비슷하다. 바지 3점은 모두 솜누비 바지로 요즘의 바지와 같은 사폭바지이며, 크기는 길이 95∼98㎝, 허리둘레 122∼140㎝이다. 1점은 무명으로 만들고, 2점은 명주로 만들었는데, 얇게 솜을 두고 1.5㎝ 너비로 누빈 바지와 솜을 두껍게 두고 6㎝ 너비로 누빈 바지가 있다. 의의와 평가 유학자들은 사망 후 심의를 수의로 사용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수의로 입은 심의가 다수 출토되는데, 홍진종의 묘에서 출토된 심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심의 유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고대박물관소장홍진종의복
  • ▫ 중요민속자료 제 113 호 홍진종 의복 洪鎭宗衣服 시대 : 조선후기 소유자 : 고려대학교 소재지 : 고려대학교박물관 / 서울 성북구 안암동 5가 1-2 지정연월일 : 1962. 12. 20. 조선후기 숙종 때의 문신 홍진종(洪鎭宗)의 의복이다. 이 옷은 1968년 경기도 오산읍에서 이장(移葬)할 때 출토된 것으로서 남자바지 3접, 창의(氅衣) 9점, 중치막(中致莫) 1점, 심의(深衣) 1점, 답호(褡護)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남자바지 3점 중 1점은 마루폭을 이중으로 붙여서 만든 무명의 누비바지이고, 2점은 겉과 속이 모두 고운 명주로 만든 바지로 얇게 솜을 두고, 11.5cm 너비로 누벼서 만든 것과 솜을 두껍게 두고 6cm 너비로 누빈 동절용 바지이다. 창의 9점 중에 2점은 소창의이고 나머지 7점은 모두 대창의이다. 소창의들은 소매통이 좁은 착수(窄袖)의 창의로, 모두 누볐으며 소매통은 광수(廣袖)에 비하여 좁으나 진동은 큰 차이가 없다. 대창의는 모두 고운 명주에 솜을 얇게 두고 전체를 곱게 누빈 것들로, 깃의 모양은 반달깃이며 소매는 두리소매이고 옷자락의 끝이 모두 당코형인 것이 특징이다. 중치막은 단 하나뿐인데 솜을 두껍게 두고 누빈 것으로, 착수(窄袖)에 뒤가 터져 있으며 양 옆은 막혀 있다. 보통 중치막이라고 하면 소매가 넓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중치막은 좁은 소매이다. 심의는 흰색 저포(苧布)로 되어 있으며 금(襟)・거(裾)・수구(手口)에 전부 흑선(黑襈)이 둘러져 있다. 답호는 앞이 뒤보다 30cm 정도 긴 누비답호인 점이 독특하다. 이들 의복은 숙종 때의 것으로 당시의 복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 참고자료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114-115쪽
  • 조선시대의 문신 홍진종(1649∼1702)의 의복으로 1968년 경기도 오산읍에서 출토되었다. 홍진종은 숙종 3년(1677) 진사에 급제하여 평강 현감을 지냈다. 출토된 유물에는 중치막 8점, 소창의 2점, 심의 1점, 답호 1점, 바지 3점 등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의는 평상시 외출용으로 입거나 중치막을 입고 안에 밑받침 옷으로 입었다. 명주에 솜을 두고 얇게 누볐으며 옆에 덧대는 천인 무가 없고 겨드랑이부터 트여져 있다. 중치막은 사대부들이 관복속이나 겉옷으로 평소에 입는 옷인 창의의 일종으로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동정이 없고 소매가 길고 넓으며 옆이 터져 있는 옷이다. 명주에 솜을 두고 누볐으며 깃은 반달깃이고 옷자락 끝이 뾰족하다. 소매는 길며 둥글려진 형태인데 소매통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심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입던 옷으로 옷깃, 소매끝, 옷단 등에는 검정 선을 두른 소매가 넓은 옷이다. 이 옷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허리에 두르던 대(帶)까지 보존되어 있다. 답호는 뒤가 앞보다 30㎝ 정도 짧은 누비옷이다. 일반적으로 답호란 소매가 없고 길이가 길며 옆과 앞에 덧대는 천인 무와 섶이 없고 뒷솔기가 허리 아래서부터 트여진 옷을 말한다. 바지에는 겉과 속이 모두 명주로 안에 얇은 솜을 두고 1.5㎝로 누빈 것과 명주에 솜을 두껍게 두고 6㎝ 간격으로 누빈 겨울용 그리고 목면을 누벼서 만든 것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17세기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 당시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고대박물관 소장 홍진종 의복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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