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조선
1933
국가등록문화재
유물 문헌
고려대학교에서 소장중인 문헌이다. 1930년대 김용관, 박길룡 등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주도자들에 의해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던 잡지이다. 창간 초기에는 발명가들에게 발명 활동을 돕기 위한 실용적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 전반에 발명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내용이 기사의 주를 이루었지만, 1934년 발명학회를 주도로 한 과학 대중화 사업이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과학조선』의 성격도 점차 대중적 과학잡지로 변모하였다. 『과학조선』은 한국 지식 사회에 과학기술 지식을 널리 보급했으며, 독립된 국가를 세우려는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2013년 8월 27일 등록문화재 제566-2호로 지정되었다.
안암동
  • 과학조선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科學朝鮮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발명학회 및 과학지식보급회
  • 비고:
  • 유형: 유물 문헌

시기

주소

  • 주소: 02841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2 (안암로 145)
  • 비고: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1933년부터 1944년까지 김용관(1897~1967)이 이끈 발명학회 및 과학지식보급회의 주도로 발간된 과학기술 종합잡지로, 과학기술 동향 소개, 과학기술 진흥방안 제시, 발명 지도와 장려, 산업의 발전방안 모색, 과학기술 문답, 과학기술 대중화 등 당대의 과학기술 활동 전반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다.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는 1933년부터 1941년까지 발간된 총 22호를 소장중에 있으며,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과 과학도서관에는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발간된 총 28호(복본 4호 포함)가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대중의 과학계몽과 과학발전을 주도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한국인들의 과학기술 관심 고취, 과학 대중화 운동 등의 파급효과가 나타났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과학조선
  • 정의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종합과학잡지. 개설 1930년대 김용관(金容瓘), 박길룡(朴吉龍) 등 발명학회(發明學會)와 과학지식보급회(科學智識普及會)의 주도자들에 의해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으며, 발명 및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과학기술 지식을 대중에 보급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대중 과학기술 잡지의 역할을 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인 발명가들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김용관(金容瓘), 박길룡(朴吉龍), 이인(李仁) 등이 설립한 발명학회(發明學會)는 1933년 6월 학회의 기관지로 『과학조선』을 창간하였다. 창간 초기에는 발명가들에게 발명활동을 돕기 위한 실용적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 전반에 발명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내용이 기사의 주를 이루었지만, 1934년 발명학회를 주도로 한 과학대중화 사업이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과학조선』의 성격도 점차 대중적 과학잡지로 변모하였다. 1934년 7월 과학대중화 운동을 전담할 기관으로 과학지식보급회(科學智識普及會)가 설립된 이후 『과학조선』의 간행 주체는 발명학회에서 과학지식보급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서지적 사항 『과학조선』의 편집 체제는 B6판으로, 매호 1,000부씩 발행하여 대부분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 회원에게 배포되었다. 월간지로 간행되었지만,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 과학운동에 대한 조선총독부 당국의 탄압 등의 이유로 제때에 간행되지 못하거나 오랜 기간 휴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1936년 이후 1939년까지는 거의 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학조선』은 일제의 군국주의가 본격화된 1939년부터 속간되기 시작하여 194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간행되었다. 1933년 창간호부터 1936년까지 4년간 간행된 11책의 『과학조선』은 198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연구소의 편찬으로 과학세기사(科學世紀社)에서 영인 간행된 바 있다. 내용 『과학조선』의 편집진과 필진에는 당시 과학운동을 주도했던 기술자, 발명가들을 비롯해서 당시의 저명한 문인, 종교인, 정치가를 망라했다.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주도자였던 김용관, 박길룡을 비롯해서 안동혁(安東赫), 윤주복(尹柱福)과 같은 과학기술자, 심승택과 같은 발명가, 현상윤(玄相允), 김동성(金東成), 이인, 김창제(金昶濟), 이춘호(李春昊)와 같은 사회 명사가 기사를 썼다. 필진의 다양성을 반영하듯, 기사의 내용도 발명과 특허에 관한 전문적 기사를 비롯해서, 화보, 과학상식, 생활과학, 공상과학소설과 같이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대중적 기사들, 민족의 근대화에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려는 계몽적 기사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했다. 1939년 속간 이후에는 당시의 군국주의적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제의 정책에 편승하는 내용, 일본어로 된 기사들도 많이 실렸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는 한국 사회에 현대 과학의 지식이 보급되고,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 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일제 당국 및 일본인들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용관, 박길룡이 주도한 과학기술 진흥운동과 그 대변지였던 『과학조선』은 한국인들의 주도하에 과학기술을 진흥하고 대중화하려 한 노력을 대표한다. 『과학조선』은 한국 지식 사회에 과학기술 지식을 널리 보급했으며, 독립된 국가를 세우려는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과학조선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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