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제579호
괴산 외사리 석조부도 槐山外沙里 石造浮屠
시대 : 고려초기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74. 10. 2.
고려시대의 부도(浮屠)이다.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삼성마을 절터 마을 산기슭에 있었던 이 부도는 높이가 3.5m로서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해외로 반출되기 직전에 간송 전형필(全鎣弼) 선생이 이를 매입, 수습하여 간송미술관에 옮겨 세운 것이다.
화강암 석재의 팔각원당형부도(八角圓堂形浮屠)로서 4장의 장방형 판석(板石)으로 짜여진 지대석 위에 하대석・중대석・상대석 그 위에 탑신(塔身)・옥개석(屋蓋石)・상륜(相輪)이 차례로 놓여있다. 하대는 상하 2석으로 8각인데, 하석 측면에는 1면 2구씩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귀꽃 모양의 조식(彫飾)이 있으며, 상석에는 복련(覆蓮)을 돌리고 8각마다 귀꽃을 새겼는데 그 수법이 주목된다. 상면에는 2단의 각형(角形) 받침과 1단의 몰딩(molding)이 있어 굄을 삼고, 그 위에 높직한 또 하나의 굄(높이 7cm)으로써 1석의 8각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아래쪽에는 구름무늬를 새긴 한 단이 마련되었을 뿐 각 면에는 아무 장식도 없이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더 넓은 배흘림의 형태로 나타남이 특이하다. 3단의 받침 위에 탑신이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3단의 각형 받침이 있으며 측면에는 앙련(仰蓮)을 돌렸는데 각 면 중앙에 1판을 조각하고 귀퉁이에는 가늘고 길다란 연판(蓮瓣)을 한 쌍 씩 배치했는데 그 수법이 매우 화려하며, 특히 중앙판 안에는 화판장식(花瓣裝飾)이 있어 주목된다.
상면에는 3단 굄이 있어서 탑신을 받고 있는데 8각 탑신의 각 면은 다시 액(額 23.5 ×45cm)을 돌렸고, 남북 2면에는 문비(門扉)가 있으며, 중앙의 자물쇠가 돋을새김[陽刻]되어 있다. 탑신에도 중대석과 같이 배흘림을 나타내고 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 받침이 있으며, 서까래의 구조는 없으나 추녀가 한층 높아졌고, 전각(轉角)의 반전(反轉)도 단아하여 각 귀퉁이마다 받쳐 올린 귀꽃과 잘 어울려 웅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귀꽃의 모양과 조법은 흥법사진공대사탑(興法寺眞空大師塔)과 같은 양식이다. 낙수면에 기왓골은 없으나, 8각의 합각(合角)이 뚜렷하고 꼭대기 부분의 8면에 돌린 복련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맨 윗부분 상륜(相輪)은 현재 고복형(鼓腹形)의 복발(覆鉢)과 보주(寶珠)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복발의 상하는 평면원형이고 외주(外周)에 연판(蓮瓣)이 있으며, 중간 고부(鼓部)에는 두 줄의 선을 돌리고 그 중간 네 군대에 네 잎 화문을 배치하였다. 보주는 하부에 원대(높이 17cm)를 마련하였는데 상하에 연판과 중앙에 두 줄의 선을 돌린 것이 복발과 흡사하다. 그 위 3면은 상단이 깎이고 손상되어 그 조식을 알 수 없으나, 각 면 2판씩의 연화문을 새긴 것은 확연하다.
이 부도는 비록 원래 위치는 아니더라도 원형이 잘 보전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쓰러져 각 부재(部材)가 여기저기 흩어졌다. 그러나 파손은 거의 없이 모든 부재가 온전하여 1963년 2월 3일 전형필의 대상일을 택하여 다시 세워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 부도는 1964년 복원된 것으로 본래의 완전한 모습에는 다소 미흡한 느낌이 들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나 안상(眼象) 및 연화문, 귀꽃의 조각 솜씨 그리고 탑진부와 옥개석 등의 수법과 각 부(部) 양식으로 보아 고려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조 부도(浮屠)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3, 1988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외사리 마을의 산기슭에 있었던 탑으로, 일제시대에 일본인에 의하여 해외로 반출될 뻔 하였던 것을 간송미술관에 옮겨 세워 놓았다. 한국전쟁 때 탑이 무너져 각 부분이 흩어졌으나, 1964년 다시 세워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으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받침돌이 상·하 2돌인데, 아래에는 안상(眼象)을 새기고, 위에는 연꽃무늬를 돌린 후 8각마다 꽃조각을 돌출시켰다. 가운데받침돌은 아래에 구름모양을 돋을새김하였고, 그 위는 각 면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배흘림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탑신은 몸돌이 가운데받침처럼 배흘림을 하고 있고, 남북면에는 문짝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그 안에 자물쇠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가 높아졌고, 각 귀퉁이마다 지나치게 커보이는 꽃장식이 솟아있다. 꼭대기에는 중간에 두 줄의 선을 돌린 둥근돌 위에 이와 비슷한 모양의 장식이 두 개 더 얹혀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웅장한 모습이나 각 부에 새긴 조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