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외사리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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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유물 석탑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삼성마을 절터 마을 산기슭에 있었던 이 부도는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해외로 반출되기 직전에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이를 매입, 수습하여 간송미술관에 옮겨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때 탑이 무너져 각 부분이 흩어졌으나, 1964년 다시 세워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으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다. 안상(眼象) 및 연화문, 귀꽃의 조각 솜씨 그리고 탑진부와 옥개석 등의 수법과 각 부(部)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조 부도(浮屠)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74년 10월 2일 보물 제579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 괴산 외사리 승탑
  • 괴산 외사리 승탑 옥개석 귀꽃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槐山 外沙里 僧塔
  • 이명칭: 괴산 외사리 석조부도(槐山 外沙里 石造浮屠)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석탑

시기

  • 시대: 고려시대
  • 시기: ?
  • 비고: 고려시대 초 제작

주소

  • 주소: 02846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 비고: 간송미술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보물
  • 지정일: 1974.10.02

근거자료 원문

  • ⑬ 塊山 外沙里 石造浮屠 높이 350㎝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浮屠는 원래 忠北 塊山君 七星面 外沙里 三省마을의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절터에 있었던 것을 일제시대 때 옮겨온 것으로, 1974년 10월 2일 보물 제579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성북동 간송미술관 뜰에 보존되어 있다. 이 부도는 화강석의 전형적인 八角圓堂形 浮屠인데 그 구성은 네장의 장방형 板石으로 짜여진 地臺石 위에 下臺石과 中臺石, 上臺石 그리고 身部와 屋蓋石, 相輪이 차례로 짜여져 있다. 八角에는 귀꽃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8각의 각 면에 二軀씩의 眼象이 새겨져 있으며, 내부에 귀꽃이 새겨져 있는 하대석은 위에 複瓣이 覆蓮紋이 둘러져 있고 상대석에는 내부에 꽃잎이 장식된 重瓣의 仰蓮紋이 매우 유려하게 彫飾되어 있다. 중대석은 아래쪽에 13.6㎝ 높이의 구름무늬를 새긴 한 段이 마련됐을 뿐 각 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더 넓은 엔타시스(배흘림) 양식만이 엿보이고 있다. 3단의 받침위에 搭身이 있다. 8각의 身部 각 면에는 23.5㎝× 45㎝ 크기의 틀(額)이 표현되어 있고 남쪽과 북쪽면에는 안쪽에 자물쇠가 양각되어 있는 門扉形이 彫飾되어 있는데 이 身部도 엔타시스 양식이 엿보이고 있다. 서까래 구조가 없는 屋蓋石은 추녀가 약간 높아졌고 또 轉角의 反轉도 완만하여 각 隅角마다 새겨진 큼직한 귀꽃과 잘 어울리어 雄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옥개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맨 윗부분 相輪은 현재 鼓腹形의 覆鉢과 寶珠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아랫부분에는 蓮瓣紋이 새겨져 있고 배부분에는 二條의 선을 둘린 다음 그 중간 네곳에는 葉花紋이 彫飾되어 있다. 그러나 寶珠의 윗면은 마손이 심하여 어떠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고려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부도는 1964년 복원된 것으로 본래의 완전한 모습에는 다소 미흡한 느낌이 들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眼象 및 蓮花紋, 귀꽃의 조각솜씨, 그리고 身部와 屋蓋石 등 각 部에서 고려시대 부도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어 석조부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71-672쪽
  • ▫ 보물 제579호 괴산 외사리 석조부도 槐山外沙里 石造浮屠 시대 : 고려초기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74. 10. 2. 고려시대의 부도(浮屠)이다.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삼성마을 절터 마을 산기슭에 있었던 이 부도는 높이가 3.5m로서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해외로 반출되기 직전에 간송 전형필(全鎣弼) 선생이 이를 매입, 수습하여 간송미술관에 옮겨 세운 것이다. 화강암 석재의 팔각원당형부도(八角圓堂形浮屠)로서 4장의 장방형 판석(板石)으로 짜여진 지대석 위에 하대석・중대석・상대석 그 위에 탑신(塔身)・옥개석(屋蓋石)・상륜(相輪)이 차례로 놓여있다. 하대는 상하 2석으로 8각인데, 하석 측면에는 1면 2구씩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귀꽃 모양의 조식(彫飾)이 있으며, 상석에는 복련(覆蓮)을 돌리고 8각마다 귀꽃을 새겼는데 그 수법이 주목된다. 상면에는 2단의 각형(角形) 받침과 1단의 몰딩(molding)이 있어 굄을 삼고, 그 위에 높직한 또 하나의 굄(높이 7cm)으로써 1석의 8각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아래쪽에는 구름무늬를 새긴 한 단이 마련되었을 뿐 각 면에는 아무 장식도 없이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더 넓은 배흘림의 형태로 나타남이 특이하다. 3단의 받침 위에 탑신이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3단의 각형 받침이 있으며 측면에는 앙련(仰蓮)을 돌렸는데 각 면 중앙에 1판을 조각하고 귀퉁이에는 가늘고 길다란 연판(蓮瓣)을 한 쌍 씩 배치했는데 그 수법이 매우 화려하며, 특히 중앙판 안에는 화판장식(花瓣裝飾)이 있어 주목된다. 상면에는 3단 굄이 있어서 탑신을 받고 있는데 8각 탑신의 각 면은 다시 액(額 23.5 ×45cm)을 돌렸고, 남북 2면에는 문비(門扉)가 있으며, 중앙의 자물쇠가 돋을새김[陽刻]되어 있다. 탑신에도 중대석과 같이 배흘림을 나타내고 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 받침이 있으며, 서까래의 구조는 없으나 추녀가 한층 높아졌고, 전각(轉角)의 반전(反轉)도 단아하여 각 귀퉁이마다 받쳐 올린 귀꽃과 잘 어울려 웅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귀꽃의 모양과 조법은 흥법사진공대사탑(興法寺眞空大師塔)과 같은 양식이다. 낙수면에 기왓골은 없으나, 8각의 합각(合角)이 뚜렷하고 꼭대기 부분의 8면에 돌린 복련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맨 윗부분 상륜(相輪)은 현재 고복형(鼓腹形)의 복발(覆鉢)과 보주(寶珠)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복발의 상하는 평면원형이고 외주(外周)에 연판(蓮瓣)이 있으며, 중간 고부(鼓部)에는 두 줄의 선을 돌리고 그 중간 네 군대에 네 잎 화문을 배치하였다. 보주는 하부에 원대(높이 17cm)를 마련하였는데 상하에 연판과 중앙에 두 줄의 선을 돌린 것이 복발과 흡사하다. 그 위 3면은 상단이 깎이고 손상되어 그 조식을 알 수 없으나, 각 면 2판씩의 연화문을 새긴 것은 확연하다. 이 부도는 비록 원래 위치는 아니더라도 원형이 잘 보전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쓰러져 각 부재(部材)가 여기저기 흩어졌다. 그러나 파손은 거의 없이 모든 부재가 온전하여 1963년 2월 3일 전형필의 대상일을 택하여 다시 세워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 부도는 1964년 복원된 것으로 본래의 완전한 모습에는 다소 미흡한 느낌이 들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나 안상(眼象) 및 연화문, 귀꽃의 조각 솜씨 그리고 탑진부와 옥개석 등의 수법과 각 부(部) 양식으로 보아 고려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조 부도(浮屠)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3, 1988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60-61쪽
  • 외사리 마을의 산기슭에 있었던 탑으로, 일제시대에 일본인에 의하여 해외로 반출될 뻔 하였던 것을 간송미술관에 옮겨 세워 놓았다. 한국전쟁 때 탑이 무너져 각 부분이 흩어졌으나, 1964년 다시 세워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으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받침돌이 상·하 2돌인데, 아래에는 안상(眼象)을 새기고, 위에는 연꽃무늬를 돌린 후 8각마다 꽃조각을 돌출시켰다. 가운데받침돌은 아래에 구름모양을 돋을새김하였고, 그 위는 각 면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배흘림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탑신은 몸돌이 가운데받침처럼 배흘림을 하고 있고, 남북면에는 문짝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그 안에 자물쇠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가 높아졌고, 각 귀퉁이마다 지나치게 커보이는 꽃장식이 솟아있다. 꼭대기에는 중간에 두 줄의 선을 돌린 둥근돌 위에 이와 비슷한 모양의 장식이 두 개 더 얹혀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웅장한 모습이나 각 부에 새긴 조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괴산 외사리 승탑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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