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국보
유물 조각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국시대 금동삼존불입상이다. 커다란 하나의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중앙에 본존불과 양 옆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삼존불(三尊佛)이다. 이러한 삼존불의 양식은 고구려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과 매우 비슷하며,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광배 뒤에 새겨진 기년명으로 보아 563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새로운 기법을 묘사하고 있고, 기교면에서 세련되어 6세기 중엽경의 조각양식을 대변해주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조각

시기

주소

  • 주소: 02837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 비고: 간송미술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국보
  • 지정일: 1962.12.20

근거자료 원문

  • ▫ 국보 제72호 금동계미명삼존불 金銅癸未銘三尊佛 시대 : 삼국시대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62. 12. 20. 삼국시대 금동삼존불입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 17.5cm로 높다란 원통형 연화좌 위에 광배와 삼존불을 한 틀로 주조한 일광삼존(一光三尊)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커다란 무늬의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본존불(本尊佛) 입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보다 더 작은 협시(脇侍) 보살상을 좌우에 배열함으로써 몇 겹의 둥근 원광(圓光)과 소용돌이무늬의 배경 아래 지고한 부처의 위엄을 십분 과시하고 있다. 본존불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크고 높은 육계(肉髻), 타원형의 얼굴에 번져 있는 고졸한 미소, 약간 좁은 듯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한 어깨와 가슴, 두꺼운 옷 속에 나타난 역강한 원통형의 체구, 좌우로 넓게 퍼진 새깃 같은 옷자락과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린 U자형의 옷주름 등 전형적인 고구려의 불상 양식 또는 6세기 중엽경의 조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광배의 양쪽 끝에 매달린 것처럼 서 있는데, 세 가닥으로 올라간 보관(寶冠), 본존불과 비슷한 얼굴 형태, 원통형의 체구, X자형의 옷주름 등 6세기 불상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삼존불의 양식은 고구려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9호)과 매우 비슷하다. 즉 앞으로 약간 숙인 얼굴에 번지는 청순하고 고졸한 미소, 강인한 원통형의 체구, 큼직하고 활력에 찬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의 손모양,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물결치는 옷주름, 향로를 뒤집은 듯한 연화대좌, 소용돌이치는 불꽃무늬의 광배 등은 서로의 관련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우 520년경~530년경의 불상, 즉 정광삼년명(定光三年銘) 금동불입상이나 정광육년명 삼존불입상과 같은 이른바 남북절충식의 불상들과 비견되므로, 20~30년 뒤에 이런 양식이 고구려에 유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새로운 기법을 묘사하고 있고, 기교면에서도 퍽 세련되었으므로, 다소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인 조각가가 정성들여 만든 뛰어난 금동불상이라 하겠다. 이 불상은 출토지가 분명하지 않고 제작연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우선은 고구려의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양식에 중국의 남북절충식 양식을 가미한 고구려식 불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광배 뒤에 새겨진 ‘계미(癸未)’라는 기년명으로 보아 563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구려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과 경사년명불상(景四年銘佛像) 사이에 제작된 세련된 작품으로서, 6세기 중엽경의 조각양식을 대변해 주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원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4, 1988.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24-26쪽
  • 1. 성북동의 문화재 ○ 국보 종목 : 국보 제72호 명칭 :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간송미술관) 지정일 : 62.12.20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0쪽
  • ⑥ 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 높이 17.5㎝짜리 삼국시대의 금동삼존불입상이 국보 제72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높다란 원통형 연화좌 위에 광배와 삼존불을 한 틀로 주조한 一光三尊式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중앙에 배치한 본존불은 素髮의 머리에 크고 높은 肉髮, 타원형의 얼굴에 번져 있는 정신성이 강한 고졸한 미소, 약간 좁은 듯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한 어깨와 가슴, 두꺼운 옷 속에 나타난 역강한 원통형의 체구, 좌우로 넓게 퍼진 새깃 같은 옷자락과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린 U字形의 옷주름 등 전형적인 고구려의 불상양식 또는 6세기 중엽경의 조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광배의 양쪽 끝에 매달린 것처럼 서 있는데 세 가닥으로 올라간 寶冠, 본존불과 비슷한 얼굴형태, 원통형의 체구, X字形의 옷주름 등 6세기 불상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삼존불의 양식은 고구려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과 매우 비슷하며, 중국의 경우 520년경 내지 530년경의 불상인 定光三年銘금동불상이나 정관육년명삼존불입상과 같은 이른바 남북절충식(華化樣式)의 불상들과 비견되므로 20∼30년 뒤에 이런 양식이 고구려에 유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새로운 기법을 묘사하고 있고, 기교면에서도 퍽 세련되었으므로 다소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인 조각가가 정성들여 만든 뛰어난 금동불상이라 하겠다. 이 불상은 출토지가 분명하지 않고 제작연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우선은 고구려의·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양식에 중국의 남북절충식 양식을 가미한 고구려식 불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광배 뒤에 새겨진 ‘쫓未’라는 기년명으로 보아 563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세련된 작품으로써, 6세기 중엽경의 조각양식을 대변해주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66-667쪽
  • 커다란 하나의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중앙에 본존불과 양 옆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삼존불(三尊佛)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불상 전체 크기에 비해 크고 높게 표현되었다. 미소를 띤 갸름한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어깨와 가슴은 약간 좁은 듯 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정면으로 V자형 옷주름이 있으며, 좌우로는 새의 깃같은 옷자락이 뻗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손가락 2개를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양 옆에 배치한 협시보살은 광배의 끝에 매달리듯 표현하였으며, 세가닥으로 올라간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신체 표현은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앞면에서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옷주름과 손모양이 다르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는 선으로 장식한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배(舟) 모양으로, 본존 주위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도드라지게 새기고 그 안에 연꽃무늬, 덩쿨무늬, 인동초무늬를 새겼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바닥이 밖으로 퍼진 원통형이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불상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글에 의해 백제 위덕왕 10년(56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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