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삼존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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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유물 공예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불감(佛龕)이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으로,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불감은 지금도 금색이 찬란하고 지붕에 녹청색이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본존불의 긴 허리,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옷주름, 그리고 보살이 쓰고 있는 구슬로 장식한 관 등 여러 양식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중국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은 11~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 금동삼존불감(1)
  • 금동삼존불감(2)
  • 금동삼존불감(3)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銅三尊佛龕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공예

시기

  • 시대: 고려시대
  • 시기: ?
  • 비고: 11~12세기 제작 추정

주소

  • 주소: 02837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 비고: 간송미술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국보
  • 지정일: 1962.12.20

근거자료 원문

  • ▫ 국보 제73호 금동삼존불감 金銅三尊佛龕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62. 12. 20. 고려시대의 불감(佛龕)이다. 높이 18cm의 불각(佛閣) 형식을 취한 감(龕) 내부에 금동의 삼존불을 봉안한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이다. 불감의 형식은 난간을 돌린 기단 위에 따로 불당의 모형을 만들어 얹은 것으로 불당의 네 귀퉁이에 배흘림(엔타시스) 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양측 면을 개방하여 안이 잘 보이도록 했다. 기둥 사이에서도 공간포(空間包)가 하나 놓여 있다. 지붕은 우진각형식으로 기왓골이 표현되었으며, 용마루 양쪽에서는 치미(鴟尾)가 있고, 네 귀마루에도 봉두(捧頭) 같은 장식이 있다. 불감 내의 삼존불은 본존불좌상을 두 협시보살입상이 시립(侍立)한 것으로 수법은 서로 같다. 본존은 높은 방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는데, 대좌 밑에는 따로 연꽃잎을 끼워 놓았다. 머리는 나발(螺髮)로 얼굴을 약간 숙였는데, 이목구비의 표현수법이 치졸하다. 손 모양은 오른손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되어 있는데, 투각(透刻)의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좌우 보살상은 형식이나 표현수법에서 같다.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썼으며 구슬장식이 선각으로 표시되었는데, 그 양쪽에서 늘어진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다. 천의(天衣)와 상의(裳衣)는 두꺼우며 옷주름이 투박하고 형식적으로 묘사되었다. 본존 쪽으로 향한 손은 두 보살 모두 시무외인을 취하였고, 다른 손은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다. 발은 매우 작으며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서 있는데, 광배는 본존과 같은 형식이다. 불감 자체는 아직도 도금 색이 찬란하며, 지붕에는 녹청계의 색채가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이 불감이 보여주는 불당의 형식은 매우 고식으로서, 특히 지붕 부분은 신라말엽 또는 고려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기단부의 단순하고 고졸한 형태, 단칸의 주심포(柱心包) 집 모양이면서 가운데 공간포 하나씩을 배열한 다포계(多包系) 구조, 배흘림기둥이 있는 우진각 지붕, 용마루 양 끝에 있는 중국 5대・북송풍(北宋風)의 치미, 그리고 네 귀마루의 봉두형 장식 등이 고식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감에 비하여 삼존불의 조각수법은 매우 치졸하고 서툰 편이다. 불감과 불상의 양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대체로 11~12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원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4, 1988.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26-27쪽
  • 1. 성북동의 문화재 ○ 국보 종목 : 국보 제73호 명칭 : 금동삼존불감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간송미술관) 지정일 : 62.12.20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0쪽
  • ⑦ 金銅三尊佛龕 高麗時代의 불감. 높이 18㎝. 국보 제73호로 간송미술관 소장. 佛閣의 형식을 취한 龕 내부에 금동의 삼존불을 봉안한 것으로,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이다. 불감의 형식은 난간을 돌린 기단 위에 따로 불당의 모형을 만들어 얹은 것으로 불당의 네 귀퉁이에 배홀림(엔타시스 : 기둥의 중간부분이 아래·윗부분보다 약간 부푼형태) 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양측면을 개방하여 안이 잘 보이도록 하였다. 기둥 위에는 2단의 栱包가 있고, 기둥 사이에도 空間包가 하나 놓여 있다. 지붕은 우진각형식으로 기왓골이 표현되었으며, 용마루 양쪽에는 廳尾가 있고 네귀마루에도 棒頭같은 장식이 있다. 불감내의 삼존불은 본존불좌상을 두 협시보살입상이 시립한 것으로 수법은 서로 같다. 본존은 높은 방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는데, 대좌 밑에 따로 연꽃잎을 끼워놓았다. 머리는 螺髮로 얼굴을 약간 숙였는데, 이목구비의 표현수법이 치졸하다. 두꺼운 通肩의 법의는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묘사되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이 施無畏印을 취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있다. 광배는 頭光과 身光으로 되었는데, 透刻의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좌우 보살상은 형식이나 표현수법에서 같다. 머리에는 三面寶冠을 썼으며 구슬장식이 선각으로 표시되었는데, 그 양쪽에서 늘어진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다. 天衣와 裳衣는 두꺼우며 옷주름이 투박하고 형식적으로 묘사되었다. 본존 쪽으로 향한 손은 두 보살 모두 시무외인을 취하였고 다른 손은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다. 발은 매우 작으며 蓮花臺坐위에 서 있는데, 광배는 본존과 같은 형식이다. 불감 자체에는 아직도 도금색이 찬란하며, 지붕에는 녹청계의 색채가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이 불감이 보여주는 불당의 형식은 매우 고식으로, 특히 지붕부분은 신라 말엽 또는 고려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건축기단부의 단순하고 고졸한 형태, 단칸의 柱心包 집 모양이면서 가운데 공간포 하나씩을 배열한 多包系 구조, 배흘림기둥이 있는 우진각 지붕, 용마루 양끝에 있는 중국 五代·北宋風의 치미, 그리고 네 귀마루의 봉두형 장식 등이 고식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불감에 비하여 삼존불의 조각수법은 매우 치졸하고 서툰 편이다. 본존불의 허리가 길어지고 하체는 짧아졌으며, 옷주름이 불규칙한 점이라든지 보살상의 특이한 보관과 목걸이의 형식 등은 중국 북송과 遼時代 불상양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불감과 불상의 양식 등으로 미루어볼 때 대체로 11∼12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67쪽
  •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고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높이 18㎝의 작은 불감으로, 청동으로 불감과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금칠을 하였다. 불감 내부를 살펴보면 난간을 두른 사각형의 기단 위에 본존불과 양 옆에 보살상이 있으며, 그 위에 기둥과 지붕으로 된 뚜껑이 덮혀 있다. 법당 모양의 뚜껑에는 앞면과 양쪽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안에 모셔진 불상을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본존불은 얼굴이 추상적이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을 간략한 선으로 표현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나누어져 있으며,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본존불 양 옆의 보살상도 구슬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형식이나 표현 수법이 본존불과 유사하다. 불감은 지금도 금색이 찬란하고 지붕에 녹청색이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본존불의 긴 허리,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옷주름, 그리고 보살이 쓰고 있는 구슬로 장식한 관(冠) 등 여러 양식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중국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은 11∼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금동삼존불감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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