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 金銅如來立像
시대 : 삼국시대(7세기말 추정)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63. 1. 21.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이다.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높이 38.2cm로서 우리나라 금동불상으로는 비교적 큰 편이다. 일부 도금이 떨어진 부분도 있으나 육계(肉髻)부터 대좌(臺座)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불상은 팔각연화대좌(八角蓮花臺座) 위에 약간 배를 내밀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자세로 서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인데 많이 마멸되었고, 그 위에 육계가 약간 뾰족하고 높게 솟아 있다. 얼굴은 통통한 편이나 이마가 유난히 좁다. 눈은 크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같은 모습이며, 코와 입은 작은 편이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었고, 얼굴 전체에서 매우 친근한 인상을 풍긴다. 목은 약간 굵고 짧은 편이어서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주며, 삼도(三道)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특히, 의상이 보여주는 특이한 양상은, 대의(大衣)를 오른쪽 어깨에서 약간 벗겨질 듯이 걸쳤고 주름을 허리 아래에서부터 표현하여 가슴과 배가 유난히 많이 드러나 보인다. 허리부분에 있는 띠 매듭 모양의 표시가 군의(裙衣)라기보다는 대의 속에 대각선으로 입었던 내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밑에 U자형의 주름이 여러 번 계단식으로 겹쳐져 늘어졌고, 그 밑에 군의 자락은 곧게 늘어진 여러 주름으로 드리워져 있는데, 발목이 많이 드러나 보일 만큼 위로 치켜 올려져 있다. 전반적으로 옷의 연결부분이 명확하게 처리되지 못하여 형식이 모호하며, 주름도 대체로 굵고, 투박하여 예리한 맛이 덜하다.
한편, 불상의 자세는 몸의 전체를 정면에서 볼 때 얼굴 부분, 목에서 허리, 그리고 허리 이하의 삼단으로 가볍게 꺾여 있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손의 모습[手印]은 일반적인 형식과 달리 오른손은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왼손은 손가락을 앞쪽으로 내밀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단판양련(單瓣仰蓮)과 복판복련(複辦覆蓮)이 같이 붙어 있고, 그 밑에 안상(眼象)이 각 면에 투각된 팔각의 받침이 있는데, 이러한 대좌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이 불상은 양식상으로 보아, 경주 구황동탑 출토 사리함에서 나온 두 불상과 비교될 수 있다. 중국 당(唐)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구황동탑 출토의 불상 가운데 706년의 좌상보다는 아직 풍만한 감이 덜한 불상의 모습으로 보아 그보다는 시대적으로 약간 이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연화좌대 밑에 8각형 기단과 각 면에 표현된 안상은 8세기에 들어와서야 유행하는 대좌형식으로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의 대좌와 비교될 수 있는데, 혹시 금동불상의 경우 어떤 새로운 양식적 형태가 빨리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구황동탑 출토의 좌상에 비하여 두꺼운 옷, 굵고 약간 투박한 옷주름, 모호한 옷의 형식, 덜 유연한 자세,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전체 인상으로 보아 이 불상이 그보다 조금 후기에 속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약 7세기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4, 1988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④ 金鋼如來立像
높이 38.2㎝의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1점이 보물 제284호로 지정,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금동불상으로서는 비교적 큰 편이며, 일부 도금이 떨어진 부분도 있으나 肉髻부터 대좌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불상은 八角蓮花臺座 위에 배를 약간 내밀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자세로서 있다. 머리는 螺髮인데 많이 마멸되었고, 그 위에 육계가 약간 뾰족하고 높게 솟아 있다. 얼굴은 통통한 편이나 이마가 유난이 좁다. 눈은 크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것 같은 모습이며, 코와 입은 작은 편이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었고, 얼굴 전체에서 매우 친근한 인상을 풍긴다. 목이 약간 굵고 짧은 편이어서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주며, 三道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특히 의상이 보여주는 특이한 양상은 大衣를 오른쪽 어깨에서 약간 벗겨질 듯이 걸쳤고 주름을 허리 아래에서부터 표현하여 가슴과 배가 유난히 많이 드러나 보인다. 허리부분에 있는 띠 매듭 모양의 표시가 裙衣라기 보다는 대의 속에 대각선으로 입었던 내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밑에 U字形의 주름이 여러번 계단식으로 겹쳐져 늘어졌고, 그 밑의 군의자락은 곧게 늘어진 여러 주름으로 드리워져 있는데, 발목이 많이 드러나 보일 만큼 위로 치켜올려져 있다.
전반적으로 옷의 연결부분이 명확하게 처리되지 못하여 형식이 모호하고, 주름도 대체로 굵고 투박하여 예리한 맛이 덜하다. 한편, 불상의 자세는 몸 전체를 정면에서 볼 때 얼굴부분, 목에서 허리, 그리고 허리 이하의 삼단으로 가볍게 꺾여 있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손의 모습(手印)은 일반적인 형식과 달리 오른손은 與願印을 취하고, 왼손은 손가락을 앞쪽으로 내밀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單瓣仰蓮과 複瓣覆蓮이 한데 붙어 있고, 그 밑에 眼象이 각 변에 투각된 팔각의 받침이 있는데, 이러한 대좌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이 불상은 양식상으로 보아 대략 7세기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64-6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