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정운 권1, 6
1448
국보
유물 문헌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문헌이다. 조선 세종 때 신숙주・최항・박팽년 등이 왕명으로 1448년(세종 30)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韻書)이다. 중국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현재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1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 동국정운 권1, 6(1)
  • 동국정운 권1, 6(2)
  • 동국정운 권1, 6(3)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東國正韻 卷一,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문헌

시기

주소

  • 주소: 02837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 비고: 간송미술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국보
  • 지정일: 1962.12.20

근거자료 원문

  • ▫ 국보 제71호 동국정운 東國正韻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62. 12. 20. 조선 세종 때 신숙주・최항・박팽년 등이 왕명으로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韻書 : 중국의 전통적인 발음표기 字典)이다. 6권 6책의 활자본인데 이곳 간송미술관 소장본 권1・권6이고, 국보 제142호로 지정된 건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완질이다. ≪동국정운≫은 중국의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당시 혼란상태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발간한 것이다. 세종은 25년(1443) 12월에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나서 그 이듬해에 원(元)의 웅충(熊忠)이 개찬한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를 훈민정음, 훈민정음의 초성(初聲) 차례에 따라 자류의 배열을 바꾸어 놓은 것이 ≪동국정운≫이라는 것이다. 신숙주의 서문에 의하면 ≪동국정운≫의 편찬은 세종이 지시한 4대 기본방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첫째 속간(俗間)에 쓰이는 관습을 널리 채택할 것, 둘째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적(典籍)을 널리 상고할 것, 셋째 한 글자가 여러 개의 음으로 쓰일 때에는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을 기준으로 할 것, 넷째 옛날부터 전해오는 협운(叶韻 : 어떤 음운의 글자가 때로는 다른 음운과 통용되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고려할 것 등이었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전해 오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1권과 6권의 두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2년에 중종 때의 심언광의 수택본(手澤本)으로 대대로 전해 오던 6권 6책의 전질이 강릉에서 발견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편운체계는 91운 23자모로 되어 있다. 이 편운체계는 운서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골격이 되는 동시에 당시의 국어 음운체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 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제자(制字) 배경이나 음운체계, 그리고 각 자모의 음가(音價) 연구에서 기본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원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7, 1989.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22-24쪽
  • 1. 성북동의 문화재 ○ 국보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의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되어,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되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0쪽
  • ⑤ 東國正韻 朝鮮 世宗때 申叔舟·崔恒·朴彭年 등이 왕명으로 편찬하여 1448년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韻書로 활자본의 6권 6책인데 그중 권 1·6은 국보 제71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건국대학교 도서관에도 국보 제142호로 지정된 완질이 보관되어 있다. 《동국정운》은 중국의 운서인《洪武正韻》에 대비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란 듯이다. 이 책은 세종의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혼란상태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세종은 1443년 12월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이듬해 2월 議事廳에 물어 훈민정음으로써 『輯會』를 번역하게 했다. 『운회』는 元나라의 熊忠이 개찬한 『古今韻會學要』를 뜻하는데, 이 번역본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다. 《동국정운》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운회』의 번역본을 탈바꿈시킨 것이 《동국정운》일 가능성이 었다. 즉 『운회』의 반절 음을 우리나라 음으로 번역하여 훈민정음으로 표음하고, 훈민정음의 초성 차례에 따라 자류의 배열을 바꾸어 놓은 것이 《동국정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열 순서는 《동국정운》이 作詩 위주의 운서가 아니라 審音 위주의 운서라는 것을 말해준다 .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은 申叔舟·崔恒·朴彭年·成三問·李塏·姜希顔·李賢老·曺變安·金曾 등 9인인데, 이들의 분담업무는 監掌는 東宮, 그 보좌로는 晉陽大君과 安平大君, 主務는 신숙주와 성삼문, 우리나라 한자음의 사정은 최항과 박팽년, 중국음에 대한 자문은 조변안과 김증, 교정과 정리는 강희안이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전해오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지금 간송문고에 있는 첫째 권과 여섯째 권의 두 책이 발견되었다. 이 간송문고본은 전 6권 가운데 두책만이긴 하지만, 권수에 宣賜之記가 날인되어 있고 표지의 題簽도 본래의 것으로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版心題는 ‘正韻’이라고 되어 있다. 활자 중 본문의 한글과 한자 大字는 木活字이고, 小字와 서문의 대자는 初鑄 甲寅字이다. 字體는 본문 대자가 수양대군의 글씨와 비슷하고, 墨蓋의 陰文이 안평대군의 글씨와 비슷하나 편찬자의 한사람인 강희안의 필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동국정운》의 체제는 권 1의 권두에 신숙주의 ‘東國正題序’와 ‘東國正韻目錄’이 있고 그 다음에 본문이 있다. 이 본문은 권 6에까지 이어지는데 각 권은 26韻目의 배열 차례에 따라 분권되어 있다. 본문은 먼저 운목을 운류별로 표시한 뒤 행을 바꾸어 字母를 음각으로써 표기하였고, 자모 바로 밑에는 훈민정음으로 음을 표시하였다. 한 자모 아래에는 平·上·去·入聲의 순서로 그 자모에 속하는 한자들을 배열하였다. 각 글자의 뜻은 풀이하지 않았으며, 한 글자가 여러 음을 가질 경우 그 글자 바로 밑에 細註를 붙였다. 편운체계는 신숙주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91운 23자모로 되어 있다. 이 편운체계는 운서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골격이 되는 동시에 당시의 국어음운체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체계는 당시의 우리나라 한자음을 명확히 구현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宋氏 等韻學派들의 이론체계나 明代《홍무정운》의 언어정책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다분히 현실과 맞지 않은 인위적인 요소가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동국정운》의 한자음은 주로 佛經顔解에서만 注音으로 사용되어오다가 16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그 사용이 전면 폐지되었다. 그러나 《동국정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制字 배경이나 음운체계, 그리고 각 자모의 음가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이 간송문고본은 1958년 通文館에서 영인하였다(건국대 소장본은 건국대 출판부에서 1973년 영인했음).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49-651쪽
  •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의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되어,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되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동국정운 권1, 6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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