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평 근대식 운동회

  • 화류회(花柳會)
  • 1896.05.02 - ?

성북구 삼선동과 동소문동 일대에서 개항기에 행해졌던 운동회이다. 조선후기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삼선평(현 성북구 삼선동, 동소문동 일대의 들판)은 갑오개혁 이후 운동회와 각종 스포츠경기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1896년 5월 2일 최초의 근대식 운동회가 열렸다. 한성영어학교 대표 교사로 운동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영국인 허치슨(Hutchison)은 소풍 겸 운동회를 열었는데, 전통놀이에서 이름을 따 화류회(花柳會)라고 하였고, 학교 운동회의 효시이다. 이후 삼선평에서는 축구, 육상 등의 경기가 치러졌고, 각 학교에서도 운동회의 장소로 이용했다.

  • 삼선평에서의 오운 예행연습, 1926

    삼선평에서의 오운 예행연습, 1926

근거자료

  •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삼선평은 갑오개혁 이후 운동회와 각종 스포츠경기 장소로 바뀌었다. 1896년 4월 6일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개최된 지 한 달도 안 된 5월 2일, 우리나라의 최초 근대식 운동회가 삼선평에서 열린다. 예로부터 음력 3월이 되면 화류놀이라 하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경치 좋은 산과 들로 꽃놀이를 갔다. 오래 묵은 때를 씻어 버리고 새롭게 마음을 다지며 봄의 기운을 받는 것이었다. 한성영어학교 대표 교사로 운동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영국인 허치슨Hutchison은 소풍 겸 운동회인 화류회花柳會를 열었다.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삼선평은 갑오개혁 이후 운동회와 각종 스포츠경기 장소로 바뀌었다. 1896년 4월 6일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개최된 지 한 달도 안 된 5월 2일, 우리나라의 최초 근대식 운동회가 삼선평에서 열린다. 예로부터 음력 3월이 되면 화류놀이라 하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경치 좋은 산과 들로 꽃놀이를 갔다. 오래 묵은 때를 씻어 버리고 새롭게 마음을 다지며 봄의 기운을 받는 것이었다. 한성영어학교 대표 교사로 운동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영국인 허치슨Hutchison은 소풍 겸 운동회인 화류회花柳會를 열었다.

  • 영어 학교 교사와 학도들이 이달 이튿날 동소문 밖으로 화류를 갔다니 오래 학교 속에서 공부 하다가 좋은 일기에 경쳐 좋은 데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장부에 운동을 하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일이니 다만 마음과 지각만 배양 할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몸 배양 하는 것도 매우 소중한 일이니 몸 배양 하는 데는 맑은 공기에 운동 하는 게 제일이요 목욕을 자주 하여 몸을 정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 -《 독립신문》, 1896. 5. 5 -

    영어 학교 교사와 학도들이 이달 이튿날 동소문 밖으로 화류를 갔다니 오래 학교 속에서 공부 하다가 좋은 일기에 경쳐 좋은 데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장부에 운동을 하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일이니 다만 마음과 지각만 배양 할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몸 배양 하는 것도 매우 소중한 일이니 몸 배양 하는 데는 맑은 공기에 운동 하는 게 제일이요 목욕을 자주 하여 몸을 정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 -《 독립신문》, 1896. 5. 5 -

  • 1906년부터 공개적으로 벌어진 축구 경기의 주된 훈련장은 삼선평 등지로, 상투에 망건, 조끼차림의 선수들이 돌이나 막대기로 표시한 골대에 공을 넣었다. - <김은신의 이것이 한국최초(8) 1906년의 축구경기>, 경향신문, 1996. 5. 2 -

    1906년부터 공개적으로 벌어진 축구 경기의 주된 훈련장은 삼선평 등지로, 상투에 망건, 조끼차림의 선수들이 돌이나 막대기로 표시한 골대에 공을 넣었다. - <김은신의 이것이 한국최초(8) 1906년의 축구경기>, 경향신문, 1996. 5. 2 -

  • 연분홍색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삼선평에는 상투와 망건, 갓을 둘러쓴 한복차림의 학생들과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당시 선보인 경기는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 당나귀 달리기 등이었다. 육상경기는 300보, 600보, 1350보(단·중·장거리)로 나눠 경기를 펼쳤다. 체통을 중시하던 양반들이 뜀뛰기를 하는 모습은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에는 5월 1일 정식으로‘운동회’라는 명칭으로 개최하였고, 53명의 학생이 경기에 참가하였다. 각 학교에서 삼선평을 운동회 장소로 이용하여 1910년대 스물 한 번의 운동회가 개최되었다. 한편 노어학교와 법어학교, 여학교 등 학생들의 화류놀이터로도 인기있는 장소였다. 1899년 5월에는 삼선평에서 영국인 교사의 지도 아래 황성기독교 청년회와 오성학교의 축구경기가 벌어졌다.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만든 공 대신 축구공이 사용되었을 뿐 제대로 된 골대도 규정도 없는 수준이었다. 1906년 3월에는 서울 삼선평에서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시합이 열렸다.

    연분홍색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삼선평에는 상투와 망건, 갓을 둘러쓴 한복차림의 학생들과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당시 선보인 경기는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 당나귀 달리기 등이었다. 육상경기는 300보, 600보, 1350보(단·중·장거리)로 나눠 경기를 펼쳤다. 체통을 중시하던 양반들이 뜀뛰기를 하는 모습은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에는 5월 1일 정식으로‘운동회’라는 명칭으로 개최하였고, 53명의 학생이 경기에 참가하였다. 각 학교에서 삼선평을 운동회 장소로 이용하여 1910년대 스물 한 번의 운동회가 개최되었다. 한편 노어학교와 법어학교, 여학교 등 학생들의 화류놀이터로도 인기있는 장소였다. 1899년 5월에는 삼선평에서 영국인 교사의 지도 아래 황성기독교 청년회와 오성학교의 축구경기가 벌어졌다.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만든 공 대신 축구공이 사용되었을 뿐 제대로 된 골대도 규정도 없는 수준이었다. 1906년 3월에는 서울 삼선평에서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시합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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