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국

  • 康潤國, 康伯
  • 노동운동 , 의열투쟁
  • 1926.09.28 - 2009.10.03
  • 건국훈장 애국장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후 1945년 5월 여러 동지들과 함께 서울 관수동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24일 저녁에는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곳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성북(城北) 정릉(貞陵) 16-29'였다.

  • 강윤국 사진,

    강윤국 사진,

  • 강윤국 집터, 2020.09.01

    강윤국 집터, 2020.09.01

근거자료

  • 서울 사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의 큰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일본 천기(川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이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감행하자 농성시위를 주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후 1945년 5월 동지 조문기(趙文起)·유만수(柳萬秀)·우동학(禹東學)·권준(權俊) 등과 함께 서울 관수동(觀水洞) 130번지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조선총독·조선군 사령관·친일파의 거두 박춘금(朴春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박춘금의 주최로 개최된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되자 이기회에 일제 침략자와 친일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조문기·유만수 등과 함께 수차에 걸쳐 비밀회합을 갖고 폭탄의 장치 등 거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7월 24일 저녁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곳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요란한 폭음을 내며 폭발하여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리하여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이들의 거사로 인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805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권 867면

    서울 사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의 큰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일본 천기(川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이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감행하자 농성시위를 주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후 1945년 5월 동지 조문기(趙文起)·유만수(柳萬秀)·우동학(禹東學)·권준(權俊) 등과 함께 서울 관수동(觀水洞) 130번지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조선총독·조선군 사령관·친일파의 거두 박춘금(朴春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박춘금의 주최로 개최된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되자 이기회에 일제 침략자와 친일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조문기·유만수 등과 함께 수차에 걸쳐 비밀회합을 갖고 폭탄의 장치 등 거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7월 24일 저녁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곳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요란한 폭음을 내며 폭발하여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리하여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이들의 거사로 인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805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권 867면

  • 유만수(柳萬秀)·조문기(趙文紀)·강윤국(康潤國)·우동학(禹東學)·권준(權俊) 등 5명이 1945년 5월에 결성하였는데, 결성과 함께 총독과 친일파 거두 3명을 암살할 것을 당면의 행동목표로 정하고 무기를 확보하였다. 같은 해 7월 24일 친일거두 박춘금(朴春琴)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의당(大義黨) 주최로 부민관에서 ‘아시아민족 분격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일제가 연속되는 패전으로 사기가 저하되어가고 있는 일본국민을 자극하기 위하여 박춘금을 사주하여 개최한 모임으로, 조선총독·조선군사령관 등 일제의 거물들과 중국대표·만주국대표·일본대표 등 일제의 앞잡이들을 동원하여 강사로 삼은 꼭두각시대회였다. 대한애국청년당에서는 이것을 행동의 기회로 삼아 대회장을 폭파하여 일제의 거물들을 일거에 제거시키기로 하였다. 대회 당일 대회장에 잠입한 조문기·유만수·강윤국 등은 연단에 폭탄을 투척하려 하였으나 수많은 청중들이 다칠까 두려워서 폭탄을 화장실에 장치하고 폭파시켰다. 이 폭발로 대회장은 수라장이 되었으며 일제 당국의 위신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졌다. 폭파에 성공한 단원들은 일본경찰의 체포망을 피하여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유만수(柳萬秀)·조문기(趙文紀)·강윤국(康潤國)·우동학(禹東學)·권준(權俊) 등 5명이 1945년 5월에 결성하였는데, 결성과 함께 총독과 친일파 거두 3명을 암살할 것을 당면의 행동목표로 정하고 무기를 확보하였다. 같은 해 7월 24일 친일거두 박춘금(朴春琴)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의당(大義黨) 주최로 부민관에서 ‘아시아민족 분격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일제가 연속되는 패전으로 사기가 저하되어가고 있는 일본국민을 자극하기 위하여 박춘금을 사주하여 개최한 모임으로, 조선총독·조선군사령관 등 일제의 거물들과 중국대표·만주국대표·일본대표 등 일제의 앞잡이들을 동원하여 강사로 삼은 꼭두각시대회였다. 대한애국청년당에서는 이것을 행동의 기회로 삼아 대회장을 폭파하여 일제의 거물들을 일거에 제거시키기로 하였다. 대회 당일 대회장에 잠입한 조문기·유만수·강윤국 등은 연단에 폭탄을 투척하려 하였으나 수많은 청중들이 다칠까 두려워서 폭탄을 화장실에 장치하고 폭파시켰다. 이 폭발로 대회장은 수라장이 되었으며 일제 당국의 위신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졌다. 폭파에 성공한 단원들은 일본경찰의 체포망을 피하여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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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강윤국’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