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국환

  • 盧國煥
  • 학생운동
  • 1924.02.05 - ?
  • 돈암동에 거주한 독랍운동가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중앙중학의 학생이었던 노국환 외 5인은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 및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5인독서회’를 조직하였다. 5인독서회는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해 8월에 검거되었다.

근거자료

  • ○ ‘5인 독서회’와 ‘조성회’ 등의 항일결사단체 등장 - 일제강점기 끝자락에서 저항의지를 불태웠던 항일단체들이 또 있습니다. 1940년 10월, 중앙중학교 4학년 학생이었던 노국환(돈암동 거주), 이기을(안암동 거주), 조성훈(돈암동 거주),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은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리를 담당했던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해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 해 8월에 검거되었습니다. 관련 학생들은 100일 내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었고 지도교사인 최복현은 2년후인 1943년에 출옥했습니다.

    ○ ‘5인 독서회’와 ‘조성회’ 등의 항일결사단체 등장 - 일제강점기 끝자락에서 저항의지를 불태웠던 항일단체들이 또 있습니다. 1940년 10월, 중앙중학교 4학년 학생이었던 노국환(돈암동 거주), 이기을(안암동 거주), 조성훈(돈암동 거주),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은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리를 담당했던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해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 해 8월에 검거되었습니다. 관련 학생들은 100일 내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었고 지도교사인 최복현은 2년후인 1943년에 출옥했습니다.

  • 본적: 전북 순창 상치 운암 507 주소: 경성부 돈암정 계열과 단체: 학생운동, 독서회 <활동 내용> 중앙중학교의 독서회 중앙중학(中央中學)은 항일학생운동의 많은 업적을 남긴 교풍을 지닌 학교로 1940년 10월 당시 4학년생인 노국환(盧國煥)·황종갑(黄鍾甲)·이기을(李氣乙)·유영하(柳永夏)·조성훈(趙成勳) 등 5명이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리를 담당하고 있던 최복현(崔福鉉)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이들 ‘5인독서회’는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해 8월에 검거되었다. 관련 학생들은 100일 만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고 최복현은 1943년에 출옥하였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 8권

    본적: 전북 순창 상치 운암 507 주소: 경성부 돈암정 계열과 단체: 학생운동, 독서회 <활동 내용> 중앙중학교의 독서회 중앙중학(中央中學)은 항일학생운동의 많은 업적을 남긴 교풍을 지닌 학교로 1940년 10월 당시 4학년생인 노국환(盧國煥)·황종갑(黄鍾甲)·이기을(李氣乙)·유영하(柳永夏)·조성훈(趙成勳) 등 5명이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리를 담당하고 있던 최복현(崔福鉉)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이들 ‘5인독서회’는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해 8월에 검거되었다. 관련 학생들은 100일 만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고 최복현은 1943년에 출옥하였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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