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의 전통 정원: 성락원(城樂園)
활동자 : 윤소영
일 시 : 2024년 7월 25일 목요일 10:00-11:00
장 소 : 서울 성북동 별서 (선잠로2길 47)
1. 조사지 선정 이유
작년 봄에 한국 최대의 궁중 정원이라 불리는 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에 다녀왔다. 꽃들이 만개한 이른 봄에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 티켓팅 못지않게 치열한 예약을 거쳐야만 했다. 매년 많은 이들의 찾는 비원祕苑)의 모습은 다채로웠으며 시대적 특색을 한껏 드러내 주었다. 궁중 정원이라는 흔치 않은 공간을 다녀온 이후 ‘전통 정원’에 대한 궁금증과 애정이 생겼다. 그러던 와중에 성북 지역에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정원인 ‘성락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2. 인터뷰 및 현장 조사 내용
국가유산청의 설명에 따르면, 성락원은 전통 정원 요소의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으며 경관적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성락원은 시냇물을 따라 앞뜰과 안뜰 그리고 바깥뜰로 세 가지 공간으로 나뉜다. 먼저 앞뜰에는 두 개의 골짜기에서 흐른 물줄기가 하나로 모이는 쌍류동천(雙流洞天)이 있다. 다음으로 안뜰을 감싸주는 용두가산(龍頭假山)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와 더불어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드넓은 숲을 이룬다. 또한 안뜰의 영벽지(影碧池) 주위에는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 장외가(檣外家), 청산일조(靑山壹條) 등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있다. 영벽지는 인공을 가미한 자연 연못이며, 연못 서쪽 암벽에는 ‘겨울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추사 김정희의 글씨 ‘장빙가’가 있다. 마지막으로 바깥뜰에는 고엽약수와 아울러 자연과 인공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 정원은 오랫동안 경승지로 이용되었고, 조선 고종 때 내관이자 문인이었던 황윤명(1844-1916)이 별서로 조성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곳에서 육교시사(六橋詩社)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으며,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의친왕 이강(李堈, 1877~1955)이 별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3. 조사지 특징 등
서울 성북동 별서는 2019년에 일시적으로 개방하였으나, 이후 폐쇄되어 일반인의 출입은 어렵다. 또한 ‘성북동 별서’는 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고증 부실과 훼손의 문제를 겪기도 했다. 2020년 9월 2일에 성락원은 ‘서울 성북동 별서’로 이름을 바꾸어 명승 제118호로 재지정되었다.
성북동 별서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언덕을 지나야 한다. 이 근방에 수많은 대사관들이 즐비하게 모여있는 만큼 각국의 대사관은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성북동 별서
로 가는 길 골목 왼편에서 ‘주한네팔대사관’을 만났다면, 1분 이내에 별서 정문 앞에 도착할 수 있다.
또한 흥미로웠던 부분은 ‘성락원’이 오랫동안 이 마을의 명승으로 자리한 만큼 빌라나 주택단지의 이름에 ‘성락원’이 활용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2020년에 ‘성락원’이 ‘서울 성북동 별서’로 명칭을 바꾼 만큼 지도에서 해당 장소를 찾을 때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성북동 별서에서 선잠단지에 이르기까지 옛 물길을 복원하여 성북동의 지역정체성을 문화관광과 도시재생의 의미에서 재해석하고자 한 연구를 발견하였다. 이 연구는 성북동이 가진 풍부한 역사문화유산과 자연생태환경을 연결하여‘성북동 에코 뮤지엄’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다. 해당 연구자의 문제의식을 통해 ‘성북동’이라는 경관 내에서 성북동 별서가 지닌 복합적인 가치와 구체적인 활용 방안까지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박중선, 『서울 성북동 에코뮤지엄 조성방안 연구: 지역정체성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문화유산협동과정 박물관학 석사학위논문, 2021. )
<사진 설명>
1. 서울 성북동 별서로 가기 직전에 네팔 대사관이 있다.
2. 서울 성북동 별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어 정문 앞까지만 방문하였다.
3. 성락원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4. 성락원의 이름을 붙인 주택단지
5. 서울 성북동 별서로 가기 위한 인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