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27] 선잠단지 지킴이 30년 이만규 님의 이야기
- 성북문화원은 지역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는 다양한 책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는 성북문화원의 대표적인 간행물입니다. 2020년부터 매년 선보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성북구 주민기록단과 함께 제작하는 책으로 성북구에 오랫동안 거주하신 어르신의 삶과 지역의 역사를 그분의 입을 통해 듣고 채록함으로써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그 과정을 주민기록단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는 공동체아카이브를 지향하는 성북마을아카이브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보물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앞으로 10회에 걸쳐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분은 성북동의 이만규 님입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방유룡
- 천주교 사제, 신부이다. 세례명은 레오, 수도명은 안드레아이다. 예수성심 신학교와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193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한국적인 수도원을 설립하고자 노력하였는데 1946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립하였고, 1953년에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창설하여 제기동 본당 내 부속건물에 임시수도원을 설치하였다. 1955년 성북동에 본원을 신축하여 입주하였다. 1957년 5월 수도회에서 종신 서원을 하고 난 이후 수도자들의 영적 지도 신부로 활동하다가 1986년 1월 24일 성북동 순교 복자 수도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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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한
- 정릉동에서 자라고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비밀결사 대동단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부친인 김가진과 함께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활동에 참가하였고, 선전위원회의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낙양군관학교 분교 내의 한인군관학교와 의열단 계열의 군관학교에 관여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해방 후 돈암동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전쟁 때 납북되었다. 임시정부 요인으로 여성 계몽운동에 힘썼던 정정화가 아내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자동이 그의 외아들이다. 김자동의 구술 증언에 의하면, 이들 가족은 해방 이후 돈암동 178-1번지(현 동선동 3가 130-7)의 한옥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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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균
- 시인이자 실업가이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시인부락』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집안 사정으로 건설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 『추풍귀우』(1986), 『임진화』(1989)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시기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일부에는 성북동과 그의 집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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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곡중학교
- 성북구 종암로 208(하월곡동 87-1)에 위치한 공립중학교이다. 2011년 1월 13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원래 이 자리는 숭인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으로, 숭인초등학교가 이전한 후 남아있던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건축한 후 숭곡중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삶의 주인이 되어 더불어 행복한 사람을 키우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11년 3월 자율학교 및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되었고, 2012년 수업혁신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교육감배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 줄넘기 여중부 부분에서 1위를 하였다. 2019년 2월 제6회 졸업식을 진행하여 224명이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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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