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146] 연탄 한 장의 추억
작성자 오진아
이번 주는 한주 내내 큰 추위로 전국이 꽁꽁 얼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뜨끈한 아랫목에서 몸을 누이고 한껏 늘어지고 싶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집에서 보일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랫목이라는 개념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연탄을 사용해보셨던 분들은 연탄의 열기로 인해 아랫목 장판이 까맣게 타버린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미아리(현 길음동, 월곡동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던 박민우 작가의 자전적 소설 『마흔 살의, 여덟 살』을 보면 1980년대에는 이런 풍경이 보통 가정집의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죠.
벗겨진 철문, PVC 재질의 푸르둥둥한 지붕을 갖춘 보통의 미아리 집이었다. 옆집과 옆집의 옆집도 모두 같을 것이다. 어머니 친구들은 대부분 전세살이였고, 아주머니도 그랬다. 마당 구석을 차지한 단칸방은 끈적이는 럭키 모노륨 장판이 거뭇거뭇 연탄불에 눌어붙어 시멘트 방바닥을 덮고 있을 테고, 개나리 벽지는 지구표 색연필과 왕자파스 낙서로 지저분할 것이다.

- 박민우, 2015, 『마흔 살의, 여덟 살』, 257-259쪽 -
대한뉴스 제1313호 가스조심 불조심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제1313호 가스조심 불조심 (ⒸKTV국민방송)

석탄 가루를 버무려 만든 원통 모양의 고체연료인 연탄은 6.25 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사랑받았던 가장 보편적인 난방용 연료였습니다. 연탄은 화력이 강하면서도 오래 타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 연탄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정부의 관계부처들은 원활한 연탄공급을 위해 자주 회의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연탄공급을 위해 정부는 연탄공장 단지 조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이문·석관 단지’입니다.
동아일보. 「관계관회합숙의 상공부 동기 연료대책에 부심」(Ⓒ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관계관회합숙의 상공부 동기 연료대책에 부심」(Ⓒ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64년 이 지역에 중앙선의 망우역과 경원선의 성북역(현 광운대역)을 연결하는 망우선이 개통되면서 종전 중앙선을 통해 수송하던 연탄이 청량리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경춘선과 경원선으로 수송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청량리역 저탄장을 대신할 이문동저탄장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 삼천리 연탄과 한성 연탄, 정원 연탄을 시작으로 수많은 연탄공장이 들어서며 단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중 삼천리 연탄은 아직도 동대문구 이문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78년 칠표연탄 공장(Ⓒ서울기록원)

1978년 칠표연탄 공장(Ⓒ서울기록원)

1978년 칠표연탄 공장(Ⓒ서울기록원)

1978년 칠표연탄 공장(Ⓒ서울기록원)

2021년 삼천리 연탄공장 (Ⓒ성북문화원)

2021년 삼천리 연탄공장 (Ⓒ성북문화원)

2021년 삼천리 연탄공장 (Ⓒ성북문화원)

2021년 삼천리 연탄공장 (Ⓒ성북문화원)

석관동에 연탄공장 단지가 들어서자 이를 따라 연탄 수송업과 연탄가게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돌곶이시장 근처에서 석유 가게를 운영하는 이수형 선생님은 15년간 개인차량을 가지고 연탄 수송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차 한 대에 700~800장의 연탄을 실을 수 있었는데 수송차가 발전함에 따라 나중에는 1,600~2,000장 정도를 실었다고 합니다. 성북문화원은 2021년 석관동에서 약 20여 년간 연탄 장사를 하셨던 권춘자 선생님의 구술을 진행했는데요.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연탄배달의 어려움과 연탄공장들의 위치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 살 때도 리어카를 안 끌어봐서 처음에는 못 끌었어요. 그 연탄이 무거워요. 타고 나면 가벼운데 시커먼 거는 너무 무거워. 막 울면서 갔었죠. 그땐 여기가 전부 벌판이었어요. 길도 너무 안 좋아서 리어카가 잘 안 따라오는데 뒤에서 누가 가다가 밀어주려고 해도 손이 시커멓게 되니까 못 밀어주는 거야.

- 선종욱 외 2인. 2021. 『온기를 배달해 드립니다』. 성북문화원. 35-36쪽 -


연탄 공장에서 연탄을 실어 와서 장사를 했는데, 그때 삼천리 연탄공장이 이문동 굴다리 밑에 있었어요. 삼천리, 칠표, 대성, 삼성, 동원연탄 이렇게 다섯 개가 쭉 내려가며 있었어. 옛날에는 삼천리에서 연탄을 제일 많이 가져왔지. 삼천리 탄이 제일 좋았어요. 삼천리가 어려워져서 연탄값 막 오른다고 할 때는 삼성도 가서 조금 사 오고, 칠표도 가서 사 오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 안 산다고 그래. 탄이 나쁘다고. 그래도 우선 팔아야 하니까 가서 떼 왔어요. 지금은 삼천리 하나 남아있어요. 이문동에 지하로 푹 내려가서 있잖아요. 연탄 가루날린다고 주민들이 하도 뭐라고 해서 거기로 내려간 거예요. 지금은 푹 내려가서 석계초등학교 바로 밑에 있어요.

- 선종욱 외 2인. 2021. 『온기를 배달해 드립니다』. 성북문화원. 40쪽 -
연탄제조업과 수송업은 석관동의 주요 산업이었지만 권춘자 선생님의 구술에서 알 수 있듯이 연탄공장에서 날려오는 탄가루와 소음은 주민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습니다.
이문·석관 단지 내 연탄공장 위치(Ⓒ성북문화원)

이문·석관 단지 내 연탄공장 위치(Ⓒ성북문화원)

2만 5천 6백명의 주민이 살고있는 성북구 석관1동은 금년 봄부터 새집이 들어서고 버스 종점과 시장이 생기는 등 신흥주택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주택가에 위치한 8개 연탄공장의 산더미 같은 저탄장에서 날아드는 탄가루와 소음에 시달려야 하고 주택가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연탄트럭과 버스 등이 과속으로 달려 먼지 소음 진동의 복합 공해 속에서 괴로움을 받고 있다.

- 경향신문. 「지상 반상회 성북구 석관1동 일대」. 1976.11.30. -

주민들은 수년 전부터 주택가 부근에 위치한 이문동의 7개 연탄공장 무연탄 적치장을 딴 곳으로 옮겨줄 것을 당국과 연탄공장 측에 진정해오고 있으나 메아리가 없다는 것이다. 휘경역 부근의 주택가엔 바람이 조금씩만 불어도 탄가루가 집안까지 새까맣게 날려오는 바람에 탄가루가 호흡기에 들어가 목이 깔깔하고 호흡기질환 환자가 많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 동아일보.「“빨래도 방에서 말려요”」.1978.02.25. -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3년 대규모의 방진망 설치공사가 진행되었지만 큰 차도가 없어 그 후에도 연탄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연탄공장은 1980~1990년대에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전국에 배관망을 건설하고 도시가스 보급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1986년에서 2008년까지 전국의 도시가스의 보급률이 9배나 증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에너지 정책과 함께 1980년대 들어 중앙난방방식과 개별 유류 보일러 방식의 주택이 많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가정용 연료였던 연탄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입니다.

폐쇄된 연탄공장 부지에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이제 이문·석관 단지의 연탄공장은 삼천리 연탄 한 곳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집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들에게 온기를 전달해 주기 위한 연탄나눔 봉사도 매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연탄의 온기를 더 따듯하게 느끼는 증폭제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21년 정릉골 골목에 쌓인 다 쓴 연탄(Ⓒ성북문화원)

2021년 정릉골 골목에 쌓인 다 쓴 연탄(Ⓒ성북문화원)

2022년 도원교통봉사단 정릉3동 연탄나눔(Ⓒ성북구청)

2022년 도원교통봉사단 정릉3동 연탄나눔(Ⓒ성북구청)

2022년 청년문간 성북동 연탄나눔(Ⓒ성북구청)

2022년 청년문간 성북동 연탄나눔(Ⓒ성북구청)

2022년 돈암 아름다운봉사단 연탄나눔(Ⓒ성북구청)

2022년 돈암 아름다운봉사단 연탄나눔(Ⓒ성북구청)

[참고자료]

박민우. 2015. 『마흔 살의, 여덟 살』. 플럼북스.
이계형 외 2인. 2018. 『서울 洞의 역사 : 성북구 . 4 , 정릉동·길음동·월곡동·장위동·석관동』. 서울역사편찬원.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성북문화원.
선종욱 외 2인. 2021. 『온기를 배달해 드립니다』. 성북문화원

김정숙. 2011. 「서울특별시 연탄제조업의 입지 특성」.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동아일보. 「관계관회합숙의 상공부 동기(冬期) 연료대책에 부심(腐心)」, 1954.09.15.
경향신문. 「지상 반상회 성북구 석관1동 일대」. 1976.11.30.
동아일보. 「“빨래도 방에서 말려요”」.1978.02.25.
조선일보. 「이문-석관동 일대에 탄가루 방진망 설치」. 1983.11.25.
조선일보. 「연탄공장 이전 요구 주민 1백여명 시위」. 198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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