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177] 김내성과 『쌍무지개 뜨는 언덕』
작성자 우성진
요즘같이 비가 많이 왔다 개는 날이면 가끔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무지개입니다. ‘무지개에 다른 색을 첨가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무지개는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현상 중 하나입니다.

문학에서 비와 무지개는 함께이면서 그 의미는 다르게 사용됩니다. 무지개가 뜨기 위해서는 비가 필요하지만, 비는 우울함과 차분함의 느낌을 주는 반면에 무지개는 밝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비와 무지개의 이러한 의미을 잘 살린 문학 작품을 한 편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국내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입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초판본

쌍무지개 뜨는 언덕 초판본

쌍무지개 뜨는 언덕 (맑은창)

쌍무지개 뜨는 언덕 (맑은창)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강남보통학교, 평양공립고등보통학교를 진학한 김내성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아 시와 소설을 열심히 읽고, 『서광(曙光)』 동인으로 시, 소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그는 1931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한때 변호사가 되고자 하였으나 결국 문학 쪽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때 공부한 법률 지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추리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1936년 졸업하였고 이후 귀국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1937년 『조선일보』에 탐정소설 『가상범인』을 연재하며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김내성을 국내에서 알리기 시작합니다. 195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추리소설, 외국 탐정소설 번안, 라디오 방송소설, 대중소설 등의 다양한 작품을 집필하며 그의 이름을 알렸고, 그의 작품 중 『청춘극장』, 『애인』, 『마인』 은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김내성 작가

김내성 작가

 『애인』 上권

『애인』 上권

그렇다고 김내성 작가가 추리소설만을 쓴 것은 아닙니다. 그의 작품에서 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성북동에 관한 이야기인데, 1943년 성북동으로 이주해와 쭉 성북구에 거주하며 소설에서도 성북동과 주변을 소설의 배경으로 애용하여 그가 소설을 집필할 당시의 성북동과 그 근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소년소녀소설(청소년 소설)인 『쌍무지개 뜨는 언덕』입니다.

1950년 초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쌍둥이 자매 영란과 은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쌍둥이 자매의 집은 환경이 어려워지자 은주를 입양 보내게 됩니다. 이후 야속하게도 원래 쌍둥이 자매의 집안은 경제 사정이 회복되고, 입양을 간 은주의 집은 오히려 사정이 악화되어 영란은 성북동 혜화문 뒤편의 넓은 주택에 살고 은주는 돈암동의 좁은 집에서 살게 됩니다. 그 후 우연한 사건으로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고, 영란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쌍둥이 자매 은주의 음악적 재능이 더 뛰어난 것을 질투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열게 되고, 떨어졌던 가족의 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돈암동 언덕 위에 까치둥지처럼 널빤지로 지어진 자기 집을 팔고, 바로 그 밑에 방공굴을 사서 살 생각으로 며친 전부터 집을 내놓았다.’
- 『쌍무지개 뜨는 언덕』 中,167번째 금도끼 『혈맥』에 등장한 방공굴이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도 등장하고 있다.
1947년 1월 11일 성북동, 돈암동의 항공사진

1947년 1월 11일 성북동, 돈암동의 항공사진

『쌍무지개 뜨는 언덕』은 1950년대 성북구의 성북동과 돈암동에 대한 인식을 빗대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북동에 살고 있는 영란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돈암동에 입양된 은주는 신문을 팔며 중학교 진학도 어려울 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김내성 작가도 1930년대 돈암동 셋방을 전전하다가 1936년 『태풍』의 인세로 성북동에 집을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빗대어 소설 속에 성북동은 부유한 동네로, 돈암동은 비교적 가난한 동네로 설정을 한 것이지요.
1930년대 삼선교와 돈암리 일대 모습

1930년대 삼선교와 돈암리 일대 모습

‘정원에 화초가 만발하고 2층 서재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자기(영란) 집과 비교해 볼 때, 은주네 판잣집은 너무나 초라했다. 조그만 판잣집에 다 떨어져 나간 널빤지로 담을 두른 한쪽 귀퉁이에 사람이 드나드는 조그만 쪽문이 한 개 달려 있었다.’

‘삼선교 개천가를 오른편으로 끼고 은주는 숨이 하늘에 닿을 듯 얼마동안 달리다가, 군데군데 방공호가 뻥뻥 뚫린 조그만 언덕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자기 집을 불현듯 바라보았다.’

이 작품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바로 제목의 쌍무지개입니다. 김내성 작가는 작품에서 쌍무지개를 두 번 등장시키는데 한 번은 동대문에, 한 번은 돈암동 언덕에 쌍무지개가 나타납니다. 작가는 작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과 가족의 화해를 보여주며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과 평화의 매개체로 우울함과 위기를 나타내는 ‘비’뒤 행운의 ‘쌍무지개’를 사용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지요. 또 작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현실에 찌들지 않은 이상적인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삶은 힘들지라도 남을 돕고 어려운 시기에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인물상들을 보여주며 작가가 어떤 삶을 추구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 어쩌면! 돈암동 언덕 위에 쌍무지개가 떴네요!’
‘오오, 하늘에도 쌍무지개! 땅 위에도 쌍무지개! 오늘이야말로 축복받은 영광의 날이다!’

최근 가슴 아픈 뉴스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김내성 작가가 말한 희망과 사랑이 실현되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처럼 희망찬 내일이 되기를 기원하며 짧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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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성북마을아카이브(김내성, 쌍무지개 뜨는 언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김내성)
- 위키백과(김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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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으면 좋은 글

- [금도끼 #167] 아픔과 희망을 잇는 『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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