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02] 추억을 떠올리며
작성자 최아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입니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매주 이벤트들이 이어지는 한 달이죠. 지역마다 체육대회며, 행사들이 연이어 있어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번 주 금도끼는 부모님 세대에게는 추억을, 그 시절을 모르는 세대들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이야깃거리들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생활하고 자랐던 두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책 2권을 소개하며 옛 시절들을 떠올려볼까 합니다. 먼저 고원영 작가의 『골목길 카프카』는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추억을 그린 작품입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회상하며 당시 성북구 곳곳의 모습을 책 속에 녹여놓았습니다.

책에는 전쟁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힘든 시기 먹을 것이 귀했지만 정이 넘치고 따뜻했던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미아리 고개 정상에서 파는 냉차 아줌마를 추억합니다. 과거 사람도 차도 고개를 숙이고 헐떡거리며 힘겹게 오르던 미아리 고개였습니다. 고개 정상에서 만나는 냉차 손수레를 반가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요.


고개 정상에는 냉차를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여름철이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땀으로 목욕을 했으니, 비록 구르는 상점이긴 하지만 목 좋은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냉차 손수레를 아련히 떠올려본다.
고원영, 『골목길 카프카』 한스하우스, 217쪽

냉차장수(출처 : 청계천박물관)

냉차장수(출처 : 청계천박물관)

냉차(冷茶)는 과거 7, 80년대 길거리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현미차나 보리차, 옥수수차 등 싸게 구할 수 있는 차에 사카린을 넣어서 파는 방식으로 시원한 음료를 먹기 어려운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귀한 냉차 한잔을 얻어 마시기 위해 아이들은 미아리 고개를 넘는 손수레를 뒤에서 밀어주려 고개를 기웃거렸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최성철 작가의 에세이 『놀이의 천국』에는 책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 있듯 작가의 어린 시절 놀이를 기억하고 담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어느 겨울 달동네를 지나다 연탄재를 보고 반가웠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서울에서도 연탄을 사용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전처럼 쉽게 구경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2, 30년 전만 해도 연탄은 가정마다 겨울의 필수품으로 물을 끓이고, 밥을 짓고, 난방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또한, 쓸모를 다한 연탄은 재가 되어 장난감이 귀했던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잇감이기도 되기도 했습니다.
정릉골 골목길(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

정릉골 골목길(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

쌓여있는 연탄(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

쌓여있는 연탄(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

“다 타고난 하얀 연탄재를 적당한 크기로 쪼개서 상대편 아이들을 향하여 던지는 연탄재 싸움은 겨울에 하는 눈싸움과 유사한 것이었으나, 비 오는 날만 빼고 날씨와 관계없이 사시사철 아무 때나 할 수 있다는 점과 상대방 몸에 맞을 때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터지는 모양이 마치 포탄이 터지는 것 같아 눈싸움과는 전혀 다른 맛이 있는 놀이였습니다.”
최성철 『놀이의 천국』 노란잠수함, 235


연탄재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땅따먹기나 사방치기도 하지만, 연탄재 싸움은 가장 인기 있는 놀이였습니다. 한바탕 놀이판이 끝나고 나면 쓰레기통에 있는 연탄재라는 연탄재는 모두 거덜이 났고, 길이란 길은 모두 허옇게 범벅이 되었습니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새하얀 연탄재 휘날리는 골목길의 모습, 머리부터 발끝까지 잿가루에 뒤덮인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연탄도 골목길도 차츰 시간과 함께 변화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그때의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최성철 작가는 삼선교 아래에서 했던 쥐불놀이의 추억담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불놀이를 위해 친구들과 찾아간 곳이 삼선교 개천이었습니다. 책에서는 당시 친구들과 쥐불놀이를 하며 뛰어다녔던 삼선교와 돈암동 일대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선교와 인공폭포

삼선교와 인공폭포

우리는 그런 삼선교 개천바닥으로 내려가서 깡통 불놀이 등 평상시 하고 싶었던 불장난을 하곤 하였다. 우리 동네에서 삼선교 개천까지 가려면 돈암동 시장에 갈 때처럼 대머리이발관 앞을 지나 언덕길을 내려가서 우리 학교 뒷담장을 지나 뼈 접골원과 전찻길이 있는 돈암동 큰길까지 가야했다. 그 큰 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그만 더 가면 사거리가 하나 나왔다.
<중략>
이런 온갖 잡동사니들을 구경하면서 개천을 누비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성철 『놀이의 천국』 노란잠수함, 323


지금의 삼선교는 작가가 이야기한 곳이 동일한 장소인가 할 정도로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각종 쓰레기와 오물들이 난무했던 삼선교는 온데간데없고, 깨끗하게 정화된 하천과 인공폭포, 산책로 등은 현재 성북구민들의 최고의 휴식처로써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세월의 변화에 모습은 변했어도 삼선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문구점은 마치 백화점과도 같은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꿈꾸던 모든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마치 보물을 찾는 모험가처럼 각종 문구용품을 발견하고, 만져보곤 했습니다. 조그맣고 신기한 장난감에서부터 간식거리까지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문구점의 소중한 추억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빛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미아초등학교 후문 도로 문방구, 1997 (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

미아초등학교 후문 도로 문방구, 1997 (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

아리랑 시장 내 오락기, 2004 (출처 : 성북마을 아카이브)

아리랑 시장 내 오락기, 2004 (출처 : 성북마을 아카이브)

성북구에도 많은 문구점이 있었지만, 점점 설 자리들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편리한 대형 생활용품점이나 온라인 시장 등 유통 채널이 다양해졌고, 학교에서 필요한 문구용품을 제공함으로써 별도로 문구점을 방문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문구점 대신 무인 문구점이 늘어나는 것도 변화 중 하나입니다. 무인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자동화된 계산대와 CCTV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지만, 서로 눈 맞추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외상으로 물건을 가지고 가기도 했던 사람 냄새 나는 문구점이 사라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길음2동에 위치한 무인문구점

길음2동에 위치한 무인문구점

미아초등학교 정문 폐점 예정인 햇살문구

미아초등학교 정문 폐점 예정인 햇살문구

유년 시절의 흔적들은 점점 사라져가지만, 작은 장난감 하나에도 큰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 친구들과 함께한 소중한 놀이는 저마다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그 시절의 순수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행복을 되새겨 보는 어린이날이 되길 바라며 이번 주 금도끼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참고문헌
- 고원영 『골목길 카프카』 한스하우스, 2019
- 최성철 『놀이의 천국』 노란잠수함, 2017
-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 문화관 『노무라 할아버지의 청계천 이야기』, 2007
-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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