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18] 이름으로 남은 다리들
작성자 박유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으로 우리 옆에 남아있는 것들이 성북구에도 있습니다.

성북천은 성북동과 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특히 북악산에서 시작해 성북동을 지나는 상류 구간은 복개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성북동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1980년대에 성북천이 복개되며 아이들이 헤엄치던 모습, 아낙네들이 빨래하던 모습과 성북천 주변의 복숭아꽃들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풍경과 함께 성북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들도 사라졌지만, 그 이름들은 우리 주위에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다리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과거를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쌍다리식당 앞 도로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쌍다리식당 앞 도로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첫 번째 주인공은 ‘쌍다리’입니다. 쌍다리는 덕수교회와 하나은행 성북동 지점 사이의 성북천을 가로지르던 두 다리를 한 번에 부르던 말입니다. 이 사진은 쌍다리식당 앞의 풍경입니다. 가로로 지나가는 길의 왼쪽 부근에 쌍다리가 있었습니다. 쌍다리의 흔적은 이태준의 소설 『장마』(1936)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집을 나선다. 포도원 앞쯤 내려오면 늘 나는 생각, ‘버스가 이 돌다리까지 들어왔으면’ 을 오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하면서 개울물을 내려다본다. 여러 날째 씻겨 내려간 개울이라 양치질을 하여도 좋게 물이 맑다.”


이 구절은 당시 성북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돌다리에 주목해 봅시다. 쌍다리를 이루는 두 다리 중 위쪽의 다리는 목재로, 아래쪽 다리는 석재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장마』에 등장하는 돌다리가 쌍다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모습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남아있습니다.
성기점, 「성북동 쌍다리 풍경」, (1961)

성기점, 「성북동 쌍다리 풍경」, (1961)

성기점의 「성북동 쌍다리 풍경」은 다소 거친 선으로 그려졌지만,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두 다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쌍다리는 1980년대의 복개를 거치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근방을 부르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쌍다리입니다. 쌍다리식당은 쌍다리기사식당이나 쌍다리돼지불백이라고도 불리며 쌍다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마을버스 성북03번 노선에는 ‘쌍다리’ 정거장이, 시내버스 1111번, 1112번, 2112번의 노선에는 ‘성북구립미술관, 쌍다리 앞’이라는 이름의 정거장이 있기도 합니다. 철거된 쌍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쌍다리와 같이 이름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삼선교’입니다. 삼선평에서 이름을 따온 삼선교는 동소문동과 성북동, 삼선동의 경계에 있던 콘크리트 다리로, 조선시대에는 돌다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혜화동 고개를 넘어 삼선교와 돈암동 옛 전차 종점을 거쳐 미아리고개로 이어지는 도로는 강북과 도심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습니다. 이전에는 육교가 있던 시절도, 그 아래에서 민방위 훈련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1930년대 말 삼선교와 돈암리 일대 모습 (출처: 『城北區誌』)

1930년대 말 삼선교와 돈암리 일대 모습 (출처: 『城北區誌』)

1975년 삼선교에서 진행한 민방위 훈련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1975년 삼선교에서 진행한 민방위 훈련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1990년 한성대입구역 사거리 (출처: 성북구청)

1990년 한성대입구역 사거리 (출처: 성북구청)

그러나 삼선교도 성북천이 복개되며 사라졌습니다. 천이 있던 자리에는 삼선시장과 상가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 방향에 있는 나폴레옹 제과점도 본래는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한성대입구역 교차로부터 성북경찰서 앞 교차로에 이르는 약 1km의 지선도로는 복개를 통해 만들어진 길인데요, 이 길의 이름은 삼선교로입니다.
삼선교를 병기한 한성대입구역 표지판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삼선교를 병기한 한성대입구역 표지판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또,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의 병기역명이기도 합니다. 삼선교가 있었던 자리 여기저기에 묻어나오는 흔적에서 삼선교가 가지고 있던 상징성이 잘 느껴집니다.
하나은행 삼선교 지점 앞 표지석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하나은행 삼선교 지점 앞 표지석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하나은행 삼선교 지점 앞에는 당시의 삼선교를 간략하게나마 보여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표지석에는 과거를 보여주는 삽화와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주변을 부르는 이름과 함께 표지석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림 속의 삼선교가 자리 잡고 있던 과거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의 삼선교 모습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지금의 삼선교 모습 (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쌍다리가 있던 성북천 상류와 다르게, 삼선교가 있던 자리는 복개 이후 2000년대에 다시 하천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성북천 분수 마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북천 산책로에서 바라보면 이곳이 삼선교라는 표지가 붙어있습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다리의 이름은 다리가 아니라 그 지역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네이버 지도 ‘삼선교’ 검색 결과

네이버 지도 ‘삼선교’ 검색 결과

때로는 물리적인 형태가 사라지거나 변해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북마을아카이브에서는 변화하는 성북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성북마을아카이브 홈페이지에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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