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5] 서울미래유산〈돈암동 성당〉의 유래와 문화적 가치
- 대학교 주변 풍경이 그러하듯,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에서부터 성신여대입구역까지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모여있습니다. 상권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돈암시장이 자리하고 있어서 젊은이들의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젊은이들의 거리와 돈암시장 일대 아래쪽으로 성북천이 흐르면서 상권과 주거지역을 구분해 줍니다. 복잡한 상권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고풍스러운 고딕양식의 건물이 나타납니다. 이번 금도끼의 주제인 돈암동 성당입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장건상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미국 유학 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외무차장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상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며 국내로 폭탄을 반입시키다가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었으나 증거가 없어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해방 후에는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의 부위원장을 지냈고,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아래 감옥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던 장건상은 정릉동 338-1번지(현 솔샘로6마길 17-4)에 거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86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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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육사
- 종암동에서 거주한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이원록이다. 1925년(혹은 1926년)에 중국에 건너갔다가 1927년 여름 중국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같은 해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1년 7개월 뒤에 석방되었다. 이때 받은 수인번호 '264'는 '이육사'라는 필명의 유래가 되었다. 1932년 중국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육생으로 입교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3년 7월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군사활동이 아닌 문학활동을 시작하였고, 1939년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하여 이 곳에서 「청포도」, 「절정」 등 대표작을 발표하였다. 그는 1944년 1월 16일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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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세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영국, 미국에 종속되는 독립을 할 바에는 조선인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조선인의 실력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속에 본거지를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B-29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광세는 1944년 10월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려던 도중 체포되어 1945년 6월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현 돈암동 29-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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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