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6] 5월에 떠난 예술인
- 2024년 5월 22일, 신경림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1978년부터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한 그는, 「길음시장」, 「정릉에서 서른해를」,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등의 시에서 민중의 고단한 삶에 대한 공감과 공동체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함은 물론, 지역에 대한 애정까지 담았습니다. 성북구를 넘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일엽
- 시인, 승려이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신여성으로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주장하고, 스스로 관습에 매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근대 교육을 받고, 일본에 유학하였다. 1920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소설과 시, 평론을 발표하는 한편 신여성 모임을 이끌어 나가며 여성들의 교육과 의식 개혁을 주장하였다. 몇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굴곡을 겪은 뒤 만공선사 문하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성북동에서 잠시 생활하였으며, 삼산학교 교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성북동 성라암(星羅庵)을 오가며 지냈는데, 자전 소설 『청춘을 불사르고』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성라암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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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성
- 동양화가이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연구단체인 ‘후소회(後素會)’를 김기창 등과 함께 만들었고, 이후 잇따라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해방 이후 삼선교 언덕배기에 살다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 설립되면서 동양화 교수가 되어 서울대 관사로 들어갔다. 1963년 미국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를 설립하고 동양미술을 가르쳤으며 이듬해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1966년 귀국하여 삼선동 4가 45번지에 ㅁ자 구조의 단층집을 마련하여 살다가, 1971년 지역개발로 인해 이사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이충무공 영정」, 「성모자상」, 「김유신장군 초상화」, 「백두산 천지」 등이 있다. 시(詩)·서(書)·화(畵)를 온전히 갖춘 현대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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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