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4]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의 변화
- 길음역 7번 출구로 나와 길음시장 방면으로 고개를 들면 높은 건물이 눈에 띕니다. 바로 올해 4월 길음역세권 재개발구역에 완공된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총 35층에 달하는 고층에 세대 수는 395세대이며 총 2개 동으로 이루어진 이 아파트는 길음뉴타운의 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음역 앞 대로변에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상가와 세대들이 입주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전, 이곳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권진규
- 조각가이다. 1943년 춘천공립중학교 졸업 후 미술연구소에 들어가지만 곧 비행기 부품공장에 징용된다. 다음 해 공장을 도망쳐 귀국하였다.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다. 1949년 9월, 무사시노미술학교(武藏野美術學校)에 입학하여 부르델의 계보를 잇는 시미즈 다카시를 사사하였다. 1959년 귀국 후 성북구 동선동에 작업실을 짓고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삼국시대 토우에 뿌리를 둔 테라코타와 건칠(乾漆) 기법을 새롭게 연구·발굴한 그는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의 세계를 정립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익대 조각과와 서울대 건축과,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자각상」, 「지원의 얼굴」, 「애자」, 「땋은 머리」 등 테라코타 흉상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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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기
- 성북동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중동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성북정 전태현의 집에서 함께 살던 손용우에게 '조선인은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같은 달 같은 곳에서 전태현과 손용우에게 일본은 패전할 것이므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1940년 9월에는 중동학교 교실에서 중일전쟁을 계기로 조선독립이 실현될 것이라 말했고, 지원병제도를 반대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가혹한 신문과 조사를 받다가 판결이 나기 전인 1942년 5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손용우와 함께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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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성북 미디어문화마루
- 성북구 길음로7길 20에 있는 지하 2층~지상4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에 있는TV·Radio 체험관은 직접 TV 프로그램 및 라디오 방송제작을 프로그램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1-2층에 있 글빛도서관은 정보통신기술(ICT) 독서문화예술이 융합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물빛수영장, 꿈빛극장 등의 생활문화시설과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미디어랩 등의 미디어 관련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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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