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05] 서울미래유산〈돈암동 성당〉의 유래와 문화적 가치
- 대학교 주변 풍경이 그러하듯,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에서부터 성신여대입구역까지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모여있습니다. 상권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돈암시장이 자리하고 있어서 젊은이들의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젊은이들의 거리와 돈암시장 일대 아래쪽으로 성북천이 흐르면서 상권과 주거지역을 구분해 줍니다. 복잡한 상권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고풍스러운 고딕양식의 건물이 나타납니다. 이번 금도끼의 주제인 돈암동 성당입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삼선평 근대식 운동회
- 성북구 삼선동과 동소문동 일대에서 개항기에 행해졌던 운동회이다. 조선후기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삼선평(현 성북구 삼선동, 동소문동 일대의 들판)은 갑오개혁 이후 운동회와 각종 스포츠경기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1896년 5월 2일 최초의 근대식 운동회가 열렸다. 한성영어학교 대표 교사로 운동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영국인 허치슨(Hutchison)은 소풍 겸 운동회를 열었는데, 전통놀이에서 이름을 따 화류회(花柳會)라고 하였고, 학교 운동회의 효시이다. 이후 삼선평에서는 축구, 육상 등의 경기가 치러졌고, 각 학교에서도 운동회의 장소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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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영
-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1924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안창호, 김구의 권유로 미국에 건너가 인디애나대학을 졸업했다. 1932년 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자금을 모집하고, 교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43년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확대되자 미군에 자원입대하여 충칭[重慶]에 있던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강원도 영월에서 무소속으로 초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체신부장관, 서울특별시장, 신민당 운영위원, 국민당 사무총장, 민중당 총재 등을 역임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주소는 '서울 성북(城北) 장위(長位) 246-39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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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
- 정릉동(현 서경로 124)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광복군 최동균(이명 최일성)의 동생이다. 1938년에 형과 함께 뤄양[洛陽]으로 건너갔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했고,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대학원대한청반에서 훈련을 받고 제1기로 졸업했다. 그 뒤 황포군관학교 보병과에 입교하였으며 광복군 제2지대에 합류하여 제3구대 제3분대장을 맡아 대원 모집과 선전, 정보수집 등의 공작을 수행했다. 1944년 미국 국방성 전략첩보국의 협조로 국내진공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고, 연합군 최후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카이펑, 허난 지구에서 일본군 내 한국인 장병의 인수 공작을 하다가 귀국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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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
- 시인이자 학자, 교육가이다. 1939년 『문장』에 시 「고풍의상」과 「승무」, 1940년에 「봉황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해방 후 성북동에 한옥을 마련하여 ‘방우산장’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근처에 살고 있던 김기창, 김환기, 윤이상 등과 교류했다. 그는 방우산장에서 박목월, 박두진과 모여 의견을 나누며 『청록집』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의 장정은 김용준이 맡았다. 그의 작품은 민족정서와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활동 후기에는 혼란한 현실 정치를 비판하며 『지조론』(1962)과 같은 산문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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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숙
- 4.19혁명 때 희생된 민주열사이다. 1946년에 태어나 4.19가 있던 1960년에는 한성여자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의협심이 강했던 진영숙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시민들의 저항에 함께 분개하고,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자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4월 19일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를 기다리다 편지를 써놓고 데모에 합류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고 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그의 유서가 되었다. 이 무렵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아가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고 더러는 죽음을 당하거나 혹은 다치기도 하였다. 모교 한성여자중학교에서는 묘비를 기증하고 동급생이 졸업하는 1962년 2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현재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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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