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서울 돈암동에 소재한 흥천사의 조선후기 불교조각을 연구한 것이다. 조선 초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되는 천수관음보살좌상은 별도의 논문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제외하였다.
흥천사의 주불전(主佛殿)인 극락보전에는 목조여래좌상, 목조보살좌상, 천수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본존불상과 우협시로 봉안된 목조보살좌상은 16~17 세기에 서로 다른 곳에서 조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천수관음상은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본존불로 봉안된 여래좌상은 경상북도 문경에 있었던 오정사(烏井寺)에서 옮겨온 불상으로 추정된다.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남순동자상 및 해상용왕상은 1701 년에 조성된 것으로, 전북 임실 사자산 적조암이 원 봉안처이고, 조선후기에 흥천사로 옮겨진 상들이다. 남순동자상과 해상용왕상은 관세음보살상과 함께 조선후기 불화로도 조성될 만큼 유행했던 도상이기 때문에, 관음보살의 협시로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부전에는 지장삼존상과 시왕을 비롯한 명부 권속이 총 27 구 봉안되어 있는데 1873 년의 개채기(改彩記)가 남아 있다. 조각의 기법으로 보아 17 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했으며, 현 명부전이 1855 년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1701 년작 관세음보살상과 함께 적조암 또는 전라북도의 어느 사찰에서 이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흥천사 노전(爐殿)의 석조 약사여래좌상·아미타여래좌상·지장보살좌상은 왕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밝혀냈다. 약사여래좌상은 1829 년에 조성되었으며, 아미타여래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은 1829 년에서 1847 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논문에서는 노전에 봉안된 3 구의 석조 불교조각상의 명칭과 조성 연도를 복장(腹藏) 조사를통해 밝힐 수 있었다. 또한 흥천사는 조선초기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왕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음을 조선후기 불교 조각을 통해서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