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매월 이 달과 관련된 이야깃거리를 열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 성일교회 이야기 보러가기
    01월 19일, 1958년 | 성일교회
    성북구 동소문로 24가길 9-8(동선동1가 85-9)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며 성일교회는 1958년 창립예배를 드리고 경기노회(제71회)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다. 현대식 새 건물은 1970년 8월 준공하여 입당하였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추가적인 교회 부지 확보를 위해 건물들을 구입(동선동1가 85-7, 85-8, 85-42, 85-43, 85-116)하여 2013년에 새 건물을 준공하였다.
  • 명랑이발소 이야기 보러가기
    01월 20일, 2014년 | 명랑이발소
    박미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태양의 혀』의 3부에 수록된 시이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중심의 문학 성향을 띠고 있는 『태양의 혀』에서 특히 3부는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시인이 40년 이상 거주한 성북동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이 작품 역시 성북동의 오래된 가게 '명랑이발소'에 담긴 추억을 담았다.
  •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야기 보러가기
    01월 20일, 2014년 |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정릉동에 거주하는 시인 신경림의 시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신경림 시인은 자신의 수많은 작품들 중 이 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2014년에 펴낸 시집 『사진관집 이층』 앞머리에 실린 이 시의 주인공은 정릉동에서 30여년을 살았던 시인의 어머니이자, 동시대를 살아온 한국의 보편적인 어머니들이기도 하다. 시인은 어머니의 소박한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주며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이치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돈암119안전센터 이야기 보러가기
    01월, 2008년 | 돈암119안전센터
    성북구 보문로 192(삼선동4가 349-1)에 위치한 성북소방서 산하의 소방 행정기관이다. 시민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소방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2008년 1월 준공됐다. 관할 구역은 돈암2동·삼선동·성북동·보문동·동선동·동소문동으로 이 지역의 화재 예방·진압·구급 등 소방 업무를 일차적으로 처리한다.
  • 이동화 이야기 보러가기
    01월 12일, 1907년 | 이동화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경성콤그룹 학생부의 비합법 독서회에서 이론을 지도했다. 1941년 성북정 하숙집에서 경성콤그룹의 김한성으로부터 혁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의뢰받았는데, 경성콤그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체포되었다. 194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참가했고, 북한으로 가서 평양민보 주필,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김일성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했다. 월남하여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일했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55년 진보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혁신계 엄단조치에 의해 1962년 구속, 1964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 윤하진 이야기 보러가기
    01월 05일, 1895년 | 윤하진
    삼선동3가(현 보문로29길 103)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단체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여 재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에서 오동진과 함께 사령부 제2영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후에는 국내진공작전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압록강 연안에 설립된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했다. 평안남도 경찰국과 선천경찰서 폭탄투척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1926년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44년에는 잔칫집에서 일본의 패전을 강조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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