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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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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열단
    인물
    의열단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된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이다. 창단 단원은 대체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이 되었고, 단원은 김원봉, 윤세주 등 13명이었다. 의열단은 창단 직후 ‘공약10조’와 뒤에 ‘5파괴’, ‘7가살(可殺)’이라는 행동목표를 독립운동의 지침으로 채택하였고,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부터는 사회주의 이론을 수용하였고, 1928년 “창단9주년기념성명”을 계기로 급진적 민족주의 내지 사회주의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성북동에는 의열단의 통신기관이 있었으며(1924.05.04. 『시대일보』 기사), 독립운동가 오세덕은 의열단원 김시현에게 자신의 집을 은신처로 내어 주는 등 의열단 지원 활동을 하다가 구여순 사건으로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 조성회
    인물
    조성회
    정릉동에 거주 인물이 결성한 항일결사단체이다. 1942년 정릉동에 거주했던 심정섭은 지인 신현수의 민족주의 사상에 감화를 받는다. 1943년 9월 정릉동 자택에서 신현수, 송인헌 등과 함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조성회(助成會)’를 조직하고 조성회 창립선언일을 명시한 선언문을 120명에게 송부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일제에 발각되어 심정섭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 조선어학회
    인물
    조선어학회
    우리말과 글 연구를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1908년 8월 주시경과 김정진 등이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여 활동하였으나 1917년 활동이 중단되었다. 1921년 12월 임경재, 최두선, 이승규 등이 모여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학회를 재건하고,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쳤다. 조선어학회는 학문 연구뿐 아니라, 말과 글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일을 실천하였다. 1942년 일제에 의해 학회의 중요 인사가 모두 검거되거나 기소되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학회활동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광복과 함께 활동을 재개하였고, 1949년 9월 5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인사 중 성북구에 거주했던 인물로는 안재홍, 최두선, 이극로 등이 있다.
  • 조선건국동맹
    인물
    조선건국동맹
    1944년 조직된 비밀결사단체이다. 여운형이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졌음을 확신하고 조동호, 이만규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였다. ‘불문(不文)’, ‘불언(不言)’, ‘불명(不名)’ 을 3대 원칙으로 내세우고 조선 민족의 자유와 독립 회복, 반동세력 박멸,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정치와 노농 대중의 해방 등의 강령에 따라 행동하였다. 조선건국동맹에서 활동했던 인물 중에는 돈암동에 거주했던 이기석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조선건국동맹에서 주로 노농군 편성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 신간회
    인물
    신간회
    1920년대 후반 좌익과 우익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6년 순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의 자극받아 국내에 있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공산주의자 간의 타협에 의해 민족유일당운동으로 조직되었다. 성북구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중 신간회에 참여했던 인물이 여러 명이 있다. 조헌영은 신간회의 도쿄지회장을 지냈고, 한용운은 신간회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을 겸하였다. 최익한은 신간회 창립총회 당시 규칙심사위원이자 간사로 선출된 바 있고, 안재홍 역시 신간회의 총무간사로 활동했다. 이밖에 이기석, 홍기문, 문준석, 유진희 등이 신간회에서 활동했던 성북인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신간회는 1931년에 이르러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인해 해산되었다.
  • 조선민족대동단
    인물
    조선민족대동단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1919년 3월 일진회 회원이었던 전협과 최익환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으며, 귀족, 관계(官界), 유림, 종교계, 상공인, 청년학생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였다.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목적으로 사회각층의 인사들을 포섭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였다. 김가진은 의친왕 이강과 사돈 관계로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이종욱에게 의친왕의 서울 탈출을 위한 공작을 추진케 하였다. 1919년 11월 10일 의친왕 등 5명의 수색역을 출발해 만주 안동행 열차에 탑승하였으나 안동역에 도착할 무렵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동단 조직은 일망타진되었고, 이후 의친왕은 일제에 의해 성북동 별장(성락원)에서 유폐 생활을 하게 되었다.
  • 경성트로이카
    인물
    경성트로이카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위해 조직된 사회주의 단체이다. 1930년대 당 재건 운동 당시 이재유가 회원들이 각자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때를 기다려 조직을 만들자는 ‘트로이카 운동’을 제안하였고, 1933년 8월 경성트로이카가 결성되었다. 경성트로이카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노동운동, 학생운동, 반제국주의운동 등을 진행하면서 대중 기반의 확대를 꾀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84-32에 거주하였던 정태식은 이 단체의 주요 구성원으로 경성콤그룹에서도 활동을 하였다. 이밖에 돈암정에 살았던 박진홍, 신설리에 살았던 이효정 등도 조직원으로 활동하였다.
  • 5인 독서회
    인물
    5인 독서회
    성북구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소속된 학생 항일단체이다. 1940년 10월, 중앙중학교의 노국환, 조성훈(이상 돈암동 거주), 이기을(안암동 거주),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이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점차 활동 범위를 확대해갔지만 1941년 7월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같은 해 8월 검거되었다. 관련 학생들은 함흥형무소에 있다가 100일 내에 석방되었고, 지도교사였던 최복현은 1943년 출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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