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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손기정
-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육상선수이다. 1932년 양정고보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마라톤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13개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고, 이중 베를린 올림픽을 포함한 10개의 경기에서 우승하였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수여 당시 꽃다발로 일장기를 가린 것과 국내 언론사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1937년 보성전문에 입학한 이후 보성전문 육상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 안암동에 거주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는 자신의 집을 ‘마라톤 선수 합숙소’로 이름 붙이고 마라톤 유망주를 뽑아 훈련시켰는데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 1950년 보스턴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은·동을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이 모두 손기정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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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함석태
- 치과의사이자 고미술품 수장가이다. 188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 1912년 일본 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14년 2월,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하였고 같은 해 6월 서울 삼각동에 개원하여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이자 한국인 최초의 치과 개업의로 기록된다. 한편, 뛰어난 심미안으로 도자기와 공예품을 많이 수집하여 1930~40년대 당시 대표적인 고미술품 수장가로 꼽힌다. 소설가 이태준이 편집인으로 있던 『문장文章』(1939. 09)에 기고한 「공예미工藝美」를 보면 함석태의 조선 도자기와 민속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이듬해 발표한 수필 「청복반일淸福半日」에서는 이태준, 김용준, 손재형 등 당시 성북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인들과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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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동수현
-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산업정보시스템공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기술경영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한산업공학회지』, 『경영과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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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덕온공주
- 조선 시대 왕족이다. 조선 23대 왕 순조의 셋째 딸로, 어머니는 순원왕후이다. 1829년(순조 29)에 덕온이라는 작호를 받았으며,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알려져 있다(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 딸이 있었으나 정식 공주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다). 1837년(헌종 3) 윤의선에게 하가하였다. 1844년(헌종 10) 5월 24일 헌종의 계비를 간택하는 행사에 참여했다가 급체로 죽었다. 묘소는 현재의 장위동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덕온공주의 묘 봉표(封標, 봉분을 하고 표를 세움)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데 사방의 경계표가 서로 명덕동에 이르고, 동으로 장위리(長位里)에 이르며, 남으로는 외백호 산등성마루에, 북으로는 동안평에 이르러 경계가 맞닿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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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이강
- 조선 말기 왕족이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1891년 의화군에 봉하여졌으며, 1900년 의왕으로 봉해졌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항일독립투사들과 접촉하여 1919년 대동단의 전협, 최익환 등과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였으며, 계획을 실행에 옮기던 중 그해 11월 만주 안동에서 일본경찰에게 발각당해 본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여러 차례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항일의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성북동에 있던 황윤명의 별장(서울시 성북동 별서)을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1945년 5월 독립운동가 이관구에게 서울 성북동 별서(성락원)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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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윤의선
-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김진흥 가옥에 거주했던 인물이다. 김진흥 가옥이라는 명칭은 현재 소유주에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는 순조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1822-1844]의 남편 남녕위 윤의선이 1865년(고종 2)에 지은 재사(齋舍)였다. 윤의선은 1823년(순조 23) 태어나 1837년(헌종 3) 덕온공주와 혼인하여 남녕위(南寧尉)로 봉해졌다. 덕온공주와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윤회선(尹會善)의 둘째아들 윤용구(尹用求)를 양자로 삼았다. 1864년(고종 1) 국장도감 하현궁명정서사관과 이듬해 영건도감제조와 대왕대비전 사서관이 되어 일을 했으며,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또한, 1875년(고종 12)에는 왕세자책례도감 서사관, 상호도감익종대왕추상존호 서사관, 빈전향관 등 왕실과 관련된 일을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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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유숙원
-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부인이다. 충청남도 보령 출생으로 한용운과 결혼 전에는 돈암동에 있는 진성당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고 한다. 진성당의원의 원장이자 유숙원의 절친한 친구였던 정자영이 한용운과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1933년 한용운과의 결혼 이후 간호사 일을 그만두었으며 이듬해 딸 한영숙이 태어났다. 한용운의 사후 가계가 몹시 기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960년 셋집생활을 하고 있으며 생계가 몹시 곤란하다는 기사(『동아일보』, 1962.02.20.)와 1962년 친구 정자영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으며, 만성위장병을 앓고 있다는 기사(『동아일보』, 1962.07.20.)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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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김연수
- 기업인이다. 아버지는 호남의 거부 김경중이고 형 김성수는 어려서 큰아버지인 김기중에게 입양되었다.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21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삼양사와 경성방직 사장,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중추원 칙임관 대우 참의,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성북동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1971년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하지만 경성방직 사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사업을 확장하면서 각종 조선총독부 조직에 참여하고 성금을 헌납하고, 1940년대 학도지원병을 고무하고 징병제 참여를 독려하는 등의 친일경력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