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건
- 2016년 4.19 혁명 56주년 기념 문화제
-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반정부 민주주의 혁명인 4.19혁명의 56주년을 기념하여 실시한 문화제이다. 문화제는 2016년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이루어졌으며 학술회의, 4.19혁명 학생 시위 재현 행사, 4.19기념 마라톤 대회, 특별전시회, 4.19혁명과 함께하는 걷기대회 등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
-
유물
- 선가귀감
- 정법사가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다. 『선가귀감』은 조선 중기 승려 서산대사 휴정이 불가의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주해를 달고 송과 평을 붙여서 편찬한 책이다. 합본되어 있는 『선교석』은 휴정의 저술로, 불교에 있어서 선과 교(敎)의 차이점을 후학들에게 논술한 책이다. 이 책의 간본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초간본은 1579년(선조 12)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점사본은 1590년(선조 23), 송광사본은 1607년과 1618년(광해군 10), 삭녕의 용복사본은 1633년(인조 11)에 간행되었다. 정법사 소장본은 용복사에서 간행된 판본이다. 용복사 판은 판식 앞서 1618년에 개판된 송광사본을 저본으로 1633년에 용복사에서 복각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7월 29일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
-
장소
- 성북구의회
- 성북구 북악산로 949-60(종암동 54-182)에 위치한 공공시설이다.
성북구의회는 개운산에 위치한 곳으로, 지상 2층의 규모로 1991년 4월 15일에 개관하였다. 청사의 1층은 본회의장, 의장실, 부의장실, 사무국장실, 운영위원장실, 의회사무국, 전문위원실, 제4회의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제1회의실, 제2회의실, 제3회의실, 보건복지위원장실, 행정기획위원장실, 도시건설 위원장실, 의원연구실, 민원상담실로 구성되어있다.
의회는 주민이 선출한 의원으로 구성되며, 주민을 대표하여 예산 · 결산안 승인과 청원 · 진정 등을 처리화고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 개정, 폐지하며 집행기관에 대하여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 등 의회 절차와 과정을 통해 집행을 감시하는 등 주민대표기능, 자치 입법기능, 행정감시기능 등 크게 3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
인물
-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 편집위원회
- 성북구 내 마을미디어 단체이다. 성북구에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성소수자 주민들의 공동체모임인 '성북마을무지개'에서 발간한 마을잡지 <성북, 무지개와 함께>를 편집하였다. 성소수자 이웃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비성소수자 주민들도 함께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성북마을무지개 페이스북 소개글 참고]
-
-
인물
- 윤대녕
-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90년 《문학사상》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소설집 『은어낚시통신』(1994), 『남쪽 계단을 보라』(1995), 『대설주의보』(2010),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1995),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탈피한 주제와 시적인 문체를 추구하여 1990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 이전 작품들과 달리 성북동 배경의 소설 『피에로들의 집』(2006)에서는 공동체와 사회에 관심을 두고 좀 더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
장소
- 성일교회
- 성북구 동소문로 24가길 9-8(동선동1가 85-9)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며 성일교회는 1958년 창립예배를 드리고 경기노회(제71회)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다. 현대식 새 건물은 1970년 8월 준공하여 입당하였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추가적인 교회 부지 확보를 위해 건물들을 구입(동선동1가 85-7, 85-8, 85-42, 85-43, 85-116)하여 2013년에 새 건물을 준공하였다.
-
-
인물
- 이은봉
- 1953년 충남 공주(현 세종시)에서 태어났다. 1992년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삶의 문학』 제5호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며 평론가로, 1984년 『창작과 비평』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외 6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평론집 『실사구시의 시학』, 『진실의 시학』 등이 있다.
-
-
유물, 인물
- 이근복
- 국가무형문화재 번와장(翻瓦匠) 기능보유자이다. '번와장'이란 지붕의 기와를 잇는 장인을 말한다. 195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을 따라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현장에서 건축 일을 익혔다. 스무 살 무렵 상경하여 돈암동의 건재상에서 근무하며 기선길 등 고건축 대가들로부터 본격적으로 기와 잇는 기술을 배웠다. 숭례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경복궁 수정전, 창덕궁 돈화문, 법주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 국보급 문화재 수백여 건의 기와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2008년 10월 21일 번와장 최초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2021년 현재도 유일하다.
-
-
장소
- 서울성북우체국
- 성북구 동소문로 310(하월곡동 88-3)에 위치한 서울지방우정청 소속 우체국이다. 1986년 12월 12일 현 위치에서 서기관국으로 개국하였다. 2021년 3월 현재, 관할 우체국으로는 고려대학교우체국·국민대학교우편취급국·삼익아파트우편취급국 등 총 15개 국이 있다.
-
-
장소
- 숭인면사무소
- 일제강점기 성북 지역을 관할 하였던 행정기관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지방제도를 개혁할 때 숭신면과 인창면이 통합되어 숭인면이 되었고, 성북지역은 고양군 숭인면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숭인면사무소는 1915년 1월 창신동에서 제기리로 이전되었고, 같은 해 10월 제기리에서 원리(현 안암동)로 이전하였다. 1936년 경성부의 구역이 확장되면서 성북리·돈암리·신설리 등은 경성부에 편입되고, 정릉리·미아리·장위리·석관리 등은 숭인면으로 남게 되었다. 이때 신설리 87번지에 있던 숭인면사무소 자리에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49년 8월 성북구가 신설된 당시 미아리에 숭인출장소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1936년 이후 숭인면사무소는 미아리로 이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
-
사건
- 3월 26일 숭인면사무소 앞 만세시위
- 고양군 숭인면 면사무소 앞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면사무소 앞(현 성북구 안암로 99(안암동5가 85-7) 부근으로 추정)에서 만세시위에 대한 계획이 있어 군중이 모였다. 그러나 당일 면사무소에 문이 닫혀있었으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열라고 군중이 함성을 지르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숭인면 월곡리 24번지에 거주하였던 정만산, 숭인면 용두리 218번지에 거주하던 최정식, 숭인면 안감리 17번지에 거주하던 이재성이 유독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를 당했다. 이후 세 사람은 보안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각각 태 90대를 맞는 형벌을 받았다.
-
-
인물
- 엄송여
- 성북구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 개성출신으로 1929년 개성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갔다. 1934년에는 중국 군관학교 낙양분교의 한국인학생특별반에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1935년 졸업하였다. 1935년 애국단에 가입하여 밀명을 받고 국내에 들어왔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개성역에서 체포되었다. 다음해 2월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육군에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가하였으며, 1956년 육군대령으로 전역하였다. 1977년에는 대통령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2002년 대전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하면 '서울 성북 □□ 787'에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
-
뉴미디어
- 성북 사람책도서관
-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팟캐스트방송이다. 2016년 마을이 도서관이 된다는 취지 아래 성북구청,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성북구민이 함께 방송을 만들었다. 방송을 통해 마을 활동가, 시인, 건축가, 상인 등 성북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이야기와 생각이 공유되었고, 지금까지 방송되었던 내용은 성북구립도서관 홈페이지와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
개인/단체 발간물
- 새성북신문
- 마을 소식을 알리는 성북구의 지역 신문이다. 2002년 3월 15일 창간된 주간지로, 성북구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신문이다. '지역주민 권익신장'·'지방자치 건전정착'·'지역문화 계승창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성북구의회 소식, 구정, 지역 국회의원 인터뷰 등 정치적 이슈를 다룰 뿐만 아니라 성북구의 다양한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
-
인물
- 성북미술협회
-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이다. 성북구 관내에서 활동하는 미술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2016년 8월 5일 혜화아트센터에서 창립전을 시작으로 해마다 정기전을 가졌다. 성북구에 김환기, 이쾌대, 변관식, 장우성, 이중섭, 권진규 등 많은 예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던 것에 비해 미술협회가 다소 늦게 조직되었지만 빠르게 구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성북미술협회는 성북구 관내의 미술인들의 친목도모를 위한 모임에서 더 나아가 회원들의 작품 활동을 구민들과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2018년 6월 3회 정기전에서 예술적 나눔의 실천을 볼 수 있었다.
-
-
사건
- 세계맥주축제
- 성북천 분수마루에서 진행된 축제이다. 성북구가 42개국 대사관저가 밀집된 지역인 만큼 세계 각국의 맥주를 통해 소통하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2016년 9월에 개최된 제1회에서는 영국, 스페인 등 11개국 대사관이 참여했으며, 2017년 제2회에서는 앙골라, 필리핀 등 12개국 대사관이 참여하였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축제”나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 등 성격이 유사한 축제들로 인해 현재는 개최되지 않고 있다.
-
-
사건
- 성북진경페스티벌
- 성북구 일대에서 진행되는 축제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성북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성북만의 다양한 역사·문화·예술자산을 만나보는 플랫폼형 축제이다. 2012년 10월 13일에 처음 개최되었으며, 이후 매년 10월에 열리고 있다. 축제 기간 동안 공연, 전시, 마을장터, 강연, 문화예술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성북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2019 성북진경”에서는 2019년 10월 11일에 열린 ‘성북진경 오프닝’을 시작으로 성북동, 월곡동, 장위동, 정릉동, 석관동에서 벌어지는 가을행사들과 연계한 주민참여 여행 ‘성북진경 동네여행’, 가을밤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성북진경 동네영화여행’ 등이 진행되었다.
-
-
사건
-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
- 성북구 성북로 일대에서 개최되는 축제이다. UN이 정한 세계인의 날을 기념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과 전통 민속 공연을 소개하고, 관내 거주 외국인들과 함께 인종, 민족, 국가간의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축제가 개최된 첫해인 2008년 축제의 창의성을 인정받아 성북구의 창의행정 최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고유 음식을 맛보고, 다양하고 즐거운 체험과 예술공연, 마켓 등 풍성한 즐길거리가 있는 행사로 외국인과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
-
인물
- 협동조합 성북신나
-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이다. 성북신나는 지역재생과 건강한 청년 일자리 생태계를 위해 기획·연구·교육 등의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이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지역 자원이 선순환 되는 마을 공동체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초창기였던 2014년 지역청년네트워크인 ‘성북청년회’조직을 제안하여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청년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아리랑시장의 활정화를 위해 마을잡지 『아리랑』을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정릉시장상인들과 주민들이 함께하는 마을장터 '개울장' 기획에 참여하는 등 문화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
인물
- 협동조합 문화변압기
- 성북구를 지역적 기반으로 두고 다양한 문화기획을 하는 협동조합이다. 성북 지역 내 다양한 문화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호 작용하기 위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문화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공연, 전시, 체험 복합 콘텐츠인 '이야기하는 상자' 프로젝트, 지역협치 축제기획 및 교육, 축제자원 아카이빙 사이트 운영 등 다양한 마을 기반 활동을 하고 있다.
-
-
인물
- 성북문화재단
- 성북구 아리랑로12길 4에 위치한 성북구의 문화 재단이다. 2012년 9월 설립된 성북문화재단은 성북구민을 위한 문화정책 수립, 다양한 문화시설의 운영, 지역문화 콘텐츠 및 생활문화 활성화, 지역 네트워크 강화 등을 통해 '문화도시 성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사업으로는 공유성북 원탁회의, 성북 시각예술 네트워크 등 문화공동체 사업과 누리마실, 성북 책모꼬지, 성북진경페스티벌 등의 문화축제, 예술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성북구민회관, 성북구립미술관, 아리랑 시네센터 등 문화사업시설 10개소를 운영하고 있고, 도서관시설로는 성북구립도서관과 2019년 12월 19일 개관한 성북길빛도서관 등을 포함한 15개소를 운영중이다.
-
-
장소
-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
- 성북구 주민들의 마을미디어 활동을 돕기 위해 설립된 시설이다. 마을의 현안이나 이슈를 취재하는 뉴스 및 토론 프로그램이나 이밖에 마을의 인물·역사·문화·현황을 기록하는 프로그램 등 마을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지역주민들이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방송장비나 스튜디오, 회의공간 등을 대여해 줄 뿐만 아니라 마을미디어 제작에 필요한 멘토링, 미디어 교육, 출연자 섭외, 제작경비 지원, 콘텐츠의 유통과 배급 지원 등의 일을 하고 있다.
-
-
뉴미디어
- 성북마을TV
- 성북구의 인터넷 방송이다. 성북마을TV는 성북구 주민들이 직접 기획·제작한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영한다. 시사, 보도, 토론 프로그램부터 교양, 예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어 성북구와 관련된 다채로운 이야기를 보고들을 수 있다. 성북마을TV의 유튜브 채널과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 홈페이지(http://sbtv.kr)에서는 현재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물론 방송이 종료된 프로그램의 영상도 공개하고 있다.
-
-
인물
- 성북청년회
- 성북구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청년들의 네트워크 모임이다. 협동조합 성북신나가 2014년 7월 지역에 있는 청년단체들끼리 공존을 구상하다가 성북구를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청년들끼리 연합해서 관계를 맺고, 협업을 하기 위해 지역청년네트워크인 ‘성북청년회’ 모임을 조직하였다. 2014년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활성화사업”에 지원하여 정릉3동의 빈집을 수리하여, 그 공간을 다양한 활동의 거점으로 사용하는 ‘두꺼비집 프로젝트’, 성신여대 서양학과 전공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직접 전시·판매를 하는 ‘비디사이씨’, 도시와 농촌간의 상생을 위한 ‘우리아라’, 정릉의 소식과 정보를 SNS를 통해 공유하는 ‘정릉코뮤니티’ 등 다양한 청년단체가 성북청년회로 활동하였다.
-
-
인물
- 성북마을살이연구회
- 성북구에서 마을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이다. 2015년 9월 설립되었으며,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정책 개발 및 사업 추진, 지역 기금 활성화를 위한 방안 연구 및 활동 지원, 공공성을 위한 주거 환경 개선 정책 개발, 지역 내 사회적 약자·소수자 및 소외 계층을 위한 협력 활동, 기타 지역 발전 및 공동체의 공공성을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는 지역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마을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모임’이라는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
-
인물
- 극단 더늠
- 성북구와 관련된 공연을 만든 예술단체이다. 극단 더늠은 창작 작업을 중심으로 배우와 연출, 작곡가와 여러 스태프가 함께 뜻을 모아 만든 극단이다. 역사와 시대정신에 깨어있으려 노력하고,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고자 자신의 '더늠'을 찾아 갈고닦는 공연집단이다. 2001년 창단 이래로 『저녁연습』, 『행복사진관』, 『A-14호』, 『사랑합니다』, 『왕을 바라다』 외 20여 개의 창작극을 만들어왔고 30여 회의 워크숍을 거쳤으며 2013년부터 전문 예술인 교육 및 선후배 간의 교량 역할도 하고 있다. 2011년 삼선동에 '극장 봄'을 만들면서 성북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여러 예술적 시도들과 문화나눔을 단체의 취지에 포함하였다. 2014년부터는 성북동 심우장에서 뮤지컬 '심우' 공연을 하고 있다.
-
-
작품
- 박남옥 :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 1950년대에 <미망인>이라는 한 작품을 남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에 대한 이야기이다. 촬영을 나갈 때, 박남옥의 등에 업혀 있던 딸이 어른이 되어 생전 어머니가 써놓은 원고를 정리하여 그녀의 일생을 전해주고 있다. 박남옥이 영화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성북구 돈암동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여러 영화인들이 돈암동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고, 1940~50년대 성북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
작품
- 울프강의 세월
- 『작가』 1996년 11·12월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화자인 '나'는 시간강사 생활을 전전하며 전임강사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다. 교수와의 식사를 마치고 우연히 마주친 과거의 가짜 대학 친구 '울프강'을 통해 '나'는 과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여전히 나의 추억 속에 머물러 있는 '울프강'을 만나러 가지만 문전박대만 당하고 온다. 작가는 다시 현실을 깨닫고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통해 초라한 현실 속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
-
작품
- 벌레는 단 과육 속에 깃들인다
- 『현대문학』 1996년 9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나'는 주변 인물들과의 일상에서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고 있다. 아픈 상처로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결혼 생활 속에서 그럭저럭 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내'가 남편으로부터 듣게 된 '벌레는 단 과육 속에 깃들인다'는 말을 통해 상처받은 자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
뉴미디어
- 언니들의 호박씨
- 성북구의 마을 미디어 와보숑에서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이다.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토크와 다큐가 가미된 기획물로 여성 4인방이 방송의 주축을 이룬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출연진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2014년 8월 1편을 공개하였고, 2014년 9월 공개된 3편을 끝으로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있어 프로젝트가 마감된 것으로 추측된다.
-
-
뉴미디어
- 아빠들의 수다
- 성북구의 마을 미디어 와보숑에서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이다. 아빠들의 수다(이하 아수다)’는 4명의 아빠들이 벌이는 토크로 와보숑 개국 첫 프로젝트이다. 2013년 5월 제1화 ‘아빠라는 이름의 존재에 대하여’로 시작하여 마지막 6화 ‘아빠 그리고 술’을 끝으로 「아수다 시즌1」을 마감했다. 2017년 12월 「아수다 시즌2」 영화편을 제작하였다.
-
-
작품
- 돈암동 거리
- 1990년 동광 출판사에서 출간된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에 수록된 시로 마로니에북스에서 개정하여 출판한 『우리들의 시간』에서 재편집되어 수록되었다. 이 시에서는 바람부는 돈암동 거리를 묘사하고 있다. 두루마기가 펄럭이고 구두소리가 울리던 거리에 바람이 불자 크다만 나뭇잎이 소리내어 떨어진다. 크다만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진 것을 청춘의 쓰라림이 맴돌았다고 표현하면서 시의 처연한 느낌을 더해준다.
-
-
작품
- 그 남자네 집
- 자전적 소설로 2004년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같은 제목의 단편이 2002년 『문학과사회』 여름호(58호)에 발표된 바 있다. 이 소설은 노인이 된 화자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화자는 1950년대 6.25전쟁을 전후로 하여 성북구 돈암동에 거주하였는데, 같은 동네로 이사를 온 먼 친척 동생 뻘 되는 ‘현보‘라는 남자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성북천으로 불리는 안감내, 성신여고, 성신여대, 성북경찰서 등 돈암동 주변이 배경으로 많이 등장하여 당시 성북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
장소
- 온녕군 묘터
- 성북구 미아동(현 강북구 미아동)에서 발견된 온녕군의 무덤 유물과 관련된 신문기사 등의 내용이다. 온녕군 이정[1407-1453]은 태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신빈 영월 신씨이다. 부인은 익산군부인 순천박씨이다. 1962년 도시계획에 따라 온녕군의 묘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10-1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돌관을 비롯하여 청동수저 한 벌, 항아리 접시 밥그릇 등이 발굴되었다. 조선에서 돌관이 발굴된 적이 없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이때 발굴되었던 돌관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
-
장소
- 영명학교
- 1936년 성북동에 세워졌던 학교이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성북동 지역에는 학교에 갈 나이가 지났음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동네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영명학교를 설립하였다. 50여명의 신입생으로 문을 열었는데, 학교의 원장은 이의석이었으며, 이춘길, 유일, 이희철, 김상욱 등이 직원으로 일하였는데, 이들 모두는 무보수로 봉사하였다.
-
-
장소
- 성북여성회관
- 성북구 성북로 4길 177(돈암동 606-258)에 위치한 공공시설이다. 성북여성회관은 성북구민회관과 같은 공간에 터를 잡고 2013년에 문을 열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원 모집과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는데, 성북구의 대표적인 평생학습시설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복지서비스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문화공간을 마련하여 지역주민들이 가깝고 쉽게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요리, 스포츠, 취미, 교양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
-
장소
- 성북동역사문화지구
-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특화지역으로 선정된 성북동 일대에 대한 명칭이다. 성북동 역사문화지구는 2013년에 서울시의 고시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북악산과 한양도성에 둘러싸인 성곽도시 서울 중에서도 핵심공간인 성북동 전체 지역을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특화지역으로 조성하고 주거환경을 체계적으로 통합·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하였다. 이 지구의 주요 문화유산은 한양도성, 선잠단지, 서울 성북동 별서, 이종석별장, 심우장, 이태준가옥, 최순우옛집 등이 있으며, 관련 인물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 소설가 이태준, 시인 김광섭, 작곡가 윤이상, 화백 김환기 등이 있다.
-
-
장소
- 성북구청
- 성북구 보문로 168(삼선동5가 411)에 위치한 관청이다. 성북구의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성북구청은 1965년 현재 위치에 3층 건물로 자리잡았고, 1977년 5층 건물로 신축한 후 몇 차례 증축과 별관을 두면서 유지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건물 안전 문제와 공간 부족 문제가 대두되어 신축을 결정하였고, 2009년에 새로운 청사가 완공되었다. 제27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신청사는 성북구의 역사성과 지리적 여건을 특화하여 좌측면은 서울성곽을, 우측면은 북한산을 선과 면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며, 빼어난 디자인 및 주민에 대한 개방성, 이용 편의성, 친환경 구조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
장소
- 성북구/주거
- 성북구의 주거환경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성북구 지역은 일부 부유층의 별장이나 고급음식점이 있기도 했지만, 도심에서 밀려난 빈민들이 거주한 ‘무허가불량주택’ 지역도 형성되어 있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의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개발과 주택공급이 진행되었고, 성북구의 대표적인 사례는 1969년 월곡동과 정릉동에 ‘시민아파트’이다. 하지만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로 부실공사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릉시민아파트는 1976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철거되었고, 월곡시민아파트는 1992년에 일부 철거되었다. 현재 성북구는 아파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주택 수의 절반 이상이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주택이다.
-
-
장소
- 성북구/종교
- 성북구의 종교현황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의 성북구 지역은 도성과 가깝고 경관도 빼어나 왕실의 원찰을 비롯한 사찰들이 많이 건립되었는데, 성북동과 북한산을 비롯한 산간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천주교는 1975년 성북동성당이 설립되었고, 1978년에는 석관동성당이 설립되어 성북구 지역에 본격적인 천주교의 교세확장이 시작되었다. 개신교는 1908년 미아리교회(현 돈암감리교회)의 설립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신암교회, 삼선그리스도교회 등이 설립되었고,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교회가 늘어났다. 그밖에도 각 마을에는 민속신앙의 대상인 도당이 있었는데, 도시의 발달과 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져 일부 동네에서 마을행사로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무속인들도 현재는 소수만 활동하고 있다.
-
-
장소
- 성북구/정치
- 성북구 정치의 전개과정에 관한 내용이다. 해방 이후 1948년 제헌의회 선거 당시 성북구 일원은 동대문구 갑 지역에 속해 있었는데 이승만이 무투표 당선되었다. 1949년 성북구가 설치되고 치러진 19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통령 이승만의 반대파 조소앙과 친이승만계 조병옥이 맞붙어 관심을 끌었고, 조소앙이 전국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조소앙은 곧바로 터진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한편 지방자치제도는 1956년 서울시의원 선거가 처음으로 치러졌는데 이때 성북구의 의석은 5석이었다. 하지만 5.16쿠데타로 등장한 군부에 의해 2대 시의회가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1991년 지방의회 선거가 부활하였고, 1995년 단체장을 포함한 4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이래 현재까지 유지되었다.
-
-
장소
- 성북구/자연
- 성북구의 자연환경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구의 서쪽과 남쪽은 숙정문에서 낙산까지 이어지는 북악산 한양도성이 경계가 되며, 낙산에서 신설동에 이르는 보문동 지역이 남쪽 경계가 된다. 동쪽은 중랑천과 접한 석관동이 경계가 되며, 서북쪽은 북한산의 보국문과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경계가 된다. 따라서 북악산, 북한산, 낙산이 경계를 이루는 주요 산이 되며, 구내에는 개운산과 천장산이 있다. 내부에 흐르는 하천은 성북동에서 발원하여 삼선동과 보문동을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성북천과 정릉계곡에서 발원하여 길음동과 월곡동을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정릉천이 있다. 하천들은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발달에 따라 복개되었다가 환경과 자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일부 복원, 정비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
장소
- 성북구/인구
- 성북구의 인구변화와 현황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 성북구 지역은 농지가 부족하고 산지가 많아 교통의 요충지임에도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서울지역의 인구 증가와 도시의 확장으로 돈암동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조성되고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6.25전쟁을 거친 직후에는 서울지역에서도 인구가 적은 편이었는데, 1960년대 서울의 도심재개발이 이루어지고 강제철거를 당한 사람들이 성북구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빠른 속도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서울의 확장과 강남개발 등으로 성북구지역은 사실상 서울의 도심으로 자리잡아 급격한 변동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통계기록을 기준으로 성북구의 인구는 447,687명이고, 세대수는 186,601세대이다.
-
-
장소
- 성북구/역사
- 성북구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구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동북쪽에 위치하면서도 가까워 도성으로 접근하는 주요 길목이었다. 또한, 경관이 좋아서 왕실이나 양반층의 별서지이기도 하였고, 왕실의 원찰이나 왕릉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도성 방어를 위해 성북동 지역에 둔전을 배치하고, 둔전민들에게 포백과 훈조의 독점권을 주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돈암동 지역을 중심으로 시가지개발이 이루어져 새로운 도심으로 성장한 반면, 3.1운동부터 의열단 활동, 노동자의 투쟁 등 항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몇 차례의 행정구역 개편과 성북천의 복개와 복원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해왔는데, 도시의 개발과 보존, 환경과 생태의 어울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
-
장소
- 성북구/시설
- 성북구에 있는 주요 시설 현황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구는 2019년 현재 20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민을 지원하는 행정조직은 각 동의 주민센터와 구청의 복지문화국을 비롯한 5개국과 도시재생기획단, 보건소 등의 주요 조직 산하에 세부업무를 분장한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북문화재단에서는 아리랑시네센터 등 문화사업시설 10곳과 성북정보도서관 등 도서관시설 14곳을 운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대관을 통해 주민의 자치활동과 여가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는 성북구민체육관 등 9곳의 문화체육시설을 운영하며, 주민의 건강과 체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한국가구박물관을 비롯한 다양한 박물관과 전시관, 미술관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은 수가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성북동 대사관로 주변에는 대사관 2곳과 대사관저 41곳이 있으며, 각국과의 인연과 우정을 기리기 위해 성북 우정의 공원을 조성하였다.
-
-
장소
- 성북구/생활
- 성북구 주민의 생활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 성북구는 서울 도심에서 가까워 교통로상의 요지였지만 산지가 많아 주민들의 형편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산과 계곡이 빚어내는 빼어난 경관 때문에 도성의 부유한 양반들은 성북동과 정릉 일대에 별장을 지어 왕래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경향은 해방 후, 지금까지도 이어져 성북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급주택가와 개발 제한에 묶여 낙후된 마을들이 공존하고 있다. 오래된 마을과 그곳에 오래도록 거주하는 주민들이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주민의 노령화 속도가 빠르고 복지와 의료 등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2019년 현재 1만 3천여명의 기초생활자를 지원하고 있으며, 의료시설은 병원 15개소, 의원 514개소, 약국 202개소가 분포하고 있다.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과 여가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높아져, 체육시설과 문화시설, 그리고 공원이 많이 만들어졌다. 각 기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대관을 통해 주민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
-
장소
- 성북구/문화예술
- 성북구의 문화예술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구는 도심에 인접하여 주변지역과의 연결로로서 입지를 가지면서도 산지가 많고 경관이 수려하여 일찍부터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국보와 보물급의 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대학 및 사설 박물관들이 있는데, 2018년 기준으로 성북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 77건, 시지정문화재 59건, 문화재자료 10건, 등록문화재 13건 등 총 159건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이래 성북동과 정릉 일대를 중심으로 근대의 문화예술인들이 다수 거주하면서 업적을 남겼고, 그러한 전통과 분위기가 이어져 현재에도 음악, 미술, 공연 등 다양한 활동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
-
장소
- 성북구/교통통신
- 성북구의 교통 및 통신에 관한 내용이다. 교통망의 발달을 보면, 1928년 서울 도심에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한 이후 1935년을 전후한 무렵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까지 시내버스가 들어갔다. 이는 당시 서울 인구의 증가에 따른 시가지 확대와 관련이 있고, 도시계획으로 돈암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시가지가 조성되면서 1941년에는 돈암동까지 전철도 들어섰다. 해방 이후에는 성북구에 차고지를 둔 버스노선이 운영되었으며, 1980년대 지하철망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현재 4호선과 6호선, 우이신설선이 성북구를 통과하고 있다. 성북구는 산지가 많은 특성상 도로율이 낮았었는데,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발달로 도로망도 확충되어 2019년 현재 도로율은 22.41%가 되었고 포장율은 100%이다. 한편 1905년 을사조약으로 회원권을 상실하였던 만국우편연합(U.P.U)에도 정부 수립과 동시에 가입자격을 얻게 되어 1949년 12월 17일자로 가입되었고, 성북구에는 돈암동우체국이 생겼다. 2017년 현재 성북구에 우체국은 16개소가 있다.
-
-
장소
- 성북구/교육
- 성북구의 교육현황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구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0년대에 설립된 삼산의숙(현 성북초등학교)이나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꼽을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학교도 늘어나서, 2019년 현재 대학교 7개소, 고등학교 13개소, 18개소, 초등학교 29개소, 유치원 52개소가 있다. 성북구의 교육환경은 교육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
장소
- 성북구/경제
- 성북구의 경제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의 산업은 농경이 기반이었지만 성북구 지역은 상당 부분의 토지가 산지여서 농지가 부족했다. 따라서 양잠이나 과수가 보다 널리 행해졌는데, 선잠단지나 앵두마을 등의 지명들은 그 흔적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는 성북동 지역에 둔전을 설치할 때 농경지가 부족하자 둔전민들에게 포백과 훈조를 생업으로 삼도록 조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심을 드나들 수 있는 동소문(혜화문)이 있고 교통망이 발달하여 상업이 발달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섬유와 의약품 관련 제조업이 들어섰고, 외곽의 차고지 확보가 용이하여 운수업도 성행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흔적과 결합하여 서울의 역사문화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관련 경제활동이 크게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