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가 아닌 국내에, 임시가 아닌 정식의 정부가 수립되다
결국 엄청난 진통 끝에 남한과 북한은 38도선을 경계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남한에서도 어렵사리 5·10총선이 이루어지고 제헌헌법에 의해 1948년 8월 15일 비로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사실상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었지요.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되었고 첫 정부가 출범합니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처단, 농지개혁을 위한 식민지 지주제 철폐 등을 주요 과업으로 내세우지만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었던 농지개혁과 달리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기득권을 지키고자 혈안이 된 고위 관리들과 비협조적인 정부의 방침 때문이었지요.
한편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많은 인물들이 정부수립과 함께 요직을 맡게 됩니다. 최용덕은 국방부 차관을 맡았고 이듬해 대한민국 공군을 창군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옥살이를 했던 김광섭은 초대 대통령공보비서관을 맡게 됩니다.
3·1운동 때부터 줄곧 항일운동을 해왔던 유우석은 국민의회 산업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지요. 5·10총선 때 참여하지 않았던 임시정부 세력은 2년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 대거 참여합니다. 그 결과 임시정부에서 일본과 맞섰던 조소앙, 장건상, 안재홍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됩니다. 조소앙은 성북구에서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장건상은 부산에서 출마해 조소앙에 이어 전국 2위의 득표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