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 주거 형태에 관한 내용이다. 정릉동은 북한산으로 가는 주요 길목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으며, 성 안 사대부의 유람처 또는 별서지였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서울 외곽이었던 정릉리에도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정릉리가 경성부의 토막민을 수용하기 위한 장소로 선정되면서, 이주민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기 쉬운 정릉천에 토막을 지었다. 해방 후에는 그 자리를 무허가 판잣집이 대신했다. 6.25전쟁 휴전 이후, 급격히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정릉동 등의 외곽 지역에 공영주택 건설이 추진되었다. 공영주택은 '문화주택'으로 불리며 1960~1970년대 크게 확산되었고 정릉동은 고급주택단지로 부상했다. 1979년에는 정릉천을 덮는 복개 공사가 시작되면서, 정릉천의 토막집과 판잣집은 완전히 사라졌다. 현재는 재개발로 정릉동에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섰지만, 일부 지역에 도시형 한옥과 공영주택이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