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출생. 서양 음악을 토착화한 작곡가이다. 홍난파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일본과 독일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운다. 1929년 귀국하여 독주회와 현악4중주단 활동을 하고,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고향>을 발표한다.
이무렵 피아니스트 이소란과 혼인하여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일제 강압이 심해지자 칩거하여 창씨개명에 반대하고 우리 민요와 국악을 채보하는데 열중한다. 해방 후 <동백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을 작곡하였다. 합창음악과 전통음악에도 관심을 가져 고려합창협회를 조직하고, 민요를 편곡한 합창곡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며 마당, 장독 구석마다 악보를 묻어 두었다. 피난 중에 세상을 떠나고, 10년 뒤에서야 악보가 마당에서 발견되었다.
채동선의 약력을 설명한 글이다. 6.25전쟁 당시 피난을 가면서 마당과 장독에 악보를 묻어두었다. 이 악보들은 부인 이소란이 집으로 돌아와 발굴하고 세상에 공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