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2동 산 중턱 606번지 작은 루삥집
지붕을 힘겹게 넘어온 사월이 네모진 창문에 찍혔다
봄비가 추적추적 필름을 인화하고 있다
저만치 인왕산 땅의 결빙을 풀어내는 것처럼
처마 밑 해바라기 하던 뽀얀 얼굴
갈래머리 종희도 첫 몽울을 말리고 있다
그렇게 봄, 숨바꼭질처럼 멀어져간 날
다시 촉촉이 젖어오고
더딘 달빛 사십 계단 밟아 오른 산동네
된 가슴에 살아난 그 눈빛
미쳐버린 산 하나 핧아 돌아온 바람
신흥각 잔칫집 장구 소리 흩어져
솟아난 한진, 한신 아파트
1990년 4월, 몇 년에 걸친 생존권 투쟁 끝에 돈암동 철거민들은 영구임대주택 건립이라는 숙원을 이루었다. 공증까지 마친 후,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겪었던 아픔을 서로 위로하고 함께 거둔 결실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