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기
1882.02.29 - 1942.07.01
인물 개인 사업가
사업가이다. 전라북도 임실 출생으로 무관이었던 아버지 백남신을 따라 1903년 대한제국의 육군 참위로 임관하였다.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한 뒤에는 금융인으로 변신하여, 한일은행 전문취체역, 한성농공은행 감사, 조선식산은행 상담역,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 전북기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성북동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1925년 5월 27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한일은행에서 은퇴한 백인기는 성북동에 있는 별장에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1930년대 경성부 성북정 323번지(현 길상도서관 자리로 추정)에서 아들 백명곤 등과 함께 화성사라는 회사를 경영하였다. 이상의 이력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성북동
  • 백인기군(白寅基君)과 동척감사(東拓監事)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白寅基
  • 이명칭: 백연기(白演基)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사업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비고: 백인기 별장

근거자료 원문

  • 가장 좋은 위치에 차지하고 있는 집은 일제강점기 기업가로 유명했던 백인기白寅基의 별장이었다. 이 집은 후원만 10여만 평이었다. 1925년 5월 27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한일은행에서 은퇴한 백인기는 성북동에 있는 별장에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87쪽
  • 白寅基君(백인기군)과 東拓監事(동척감사) 경성재계에서 현재 한일은행 두치 한상용과 쟁패전을 격렬히 했던 백인기가 한일은행에서 은퇴한 후 거의 십년동안 낭인생활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공익사업이라하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교동의 거하(巨廈)와 성북의 별서(別墅)에서 궁사극치(窮奢極侈)한 생활을 했다. 근래에 들어서 백인기는 홀연히 동대문외고학당 재학생 이백 여명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고학생 기숙사 건축비의 기부를 성명(聲明)하였다. 이리하여 세인(世人)은 백인기군의 돌변한 태도를 경이시(驚異視)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원래 백인기는 조선에 있어서 일류(一流)의 자산가로 안팎의 지목(指目)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혜민(慧敏)한 두뇌와 발발(勃勃)한 야심이 언제까지든지 반식도비(伴食徒費)의 생활을 자작(自作)하지 아니할 것도 일반(一般)의 주의하는 바이다. 의외로 최근에 동경전(東京電)은 백인기가 동척회사(東拓會社)의 감사로 선임되었음을 전하였다. 또한 이것이 사실이라 하면 오인(吾人)은 백인기군의 태도에 대하여 다소 의문점이 없지 않다. 원래 동척의 감사는 대부분 일본의 관료귀족들의 겸직기생(兼職寄生)해오던 한직(閑職)이다. 백인기를 여기에 선임하는 것은 일종의 저급 영예심의 발작이라 할까 또는 오천만원의 자본금과 오덕만원의 사채발행권으로 일기간(一其間)의 중역 상여금 십오만원을 지출하는 회사라 그 보수와 상여금을 탐하여 옥상가옥의 부를 취하려는 허욕의 발동인가. 만일 백인기로 하여금 수왕과 역량을 자신하는 바가 있어서 재차 실업계(實業界)에 약출(躍出)하여 왕년에 한일은행에서 민영휘군과 경쟁패배(競爭敗北)하던 회계(會稽)의 수치를 한번 씻어내려 할 것 같으면 그만한 경력과 그만한 자력으로 당당정정한 기치를 세워서 자주적 실력을 발휘라는 것이 옳지 아니할까. 어찌하여 반식감사(伴食監事)의 허예(虛譽)를 취하려 하는가 하물며 민원의 초점이 되는 동척회사에 있어서 아무리 백군의 부뇌와 수완이 명민하고 탁월하다 할지라도 과연 조선인 감사의 위신이 능히 동척회사의 흑막을 곽청정리(廓淸整理)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동아일보』 1925. 5. 27. 기사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2-11
  • ·일제강점기의 금융인·사업가. 전북 임실 출생으로 다른 이름은 백연기(白演基) ·무관이었던 아버지 백남신을 따라 1903년 대한제국의 육군 참위로 임관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에는 금융인으로 변신,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을 설립해 전무 취체역을 지냈으며, 한성농공은행 감사와 조선식산은행 상담역으로 근무 ·1927년부터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기도 했으며,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감사 역임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에 아버지 백남신과 함께 수록 ·부인 이윤성, 익산에 남성고등학교 설립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18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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