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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인면 성북리 170-5(洗布業)
·1931년 2월부터 『조선일보』 급사로 근무
·1931년 5월 권우성(權又成) 등과 독서회를 조직한 후 동년 6월 이를 적우회로 변경
·1931년 7월 노동반(적색출판노동조합) 책임
·1931년 9월 만주사변 발발 후 반전격문과 적우회 기관지 『적우』를 발간한 후 배포하려다가 체포되어 1932년 징역 2년 6월 선고받음
·출옥 후 과 함께 적색노동조합 조직에 참여하였다가 1935년 5월 경 메이데이 시위를 앞두고 일경에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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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사회주의 계열
이름: 안복산
주소(당시): 숭인 성북 170-5
주소(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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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서울 혜화동 198-2
주소: 숭인면 성북동 170-5
계열과 단체: 사회주의, 적우회 사건
<활동내용>
서울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4월 조선총독부 부립 도서관에서 급사로 근무하다가 1931년 2월부터는 『조선일보』 급사로 근무하였다. 1931년 5월 權又成 등과 독서회를 조직한 후 동년 6월 이를 적우회로 변경하였다. 동년 7월 노동반(적색출판노동조합)의 책임을 맡았다. 동년 8월에는 공산청년동맹을 조직하려 하였다. 동년 9월 만주사변 발발 후 반전격문과 적우회 기관지 『적우』를 발간한 후 배포하려다가 체포되어 1932년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출옥 후 적색노동조합 조직에 참여하였다. 1935년 5월 경 메이데이 시위를 앞두고 일경에 체포되었다.
<특이사항>
이명 안효성(安曉星), 常民. 洗布業. 5척 6촌 3분
<참고문헌>
강만길·성대경 엮음,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p.267
「경성제국대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동아일보』 193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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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했지만 뜨거웠던 저항의 근거지 성북
두 단체 외에 사회주의자로 활동했던 이들로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김하경, 안복산과 돈암동에 거주했던 홍석표, 안암동에 거주했던 김용태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