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석
1935
인물 개인 마을주민
정릉동 교수단지에 거주하는 대한역리학회의 회장이다. 미아리에 있던 협회 소유의 사당을 팔고 터가 좋은 정릉동 교수단지에 북악당을 건립하였다. 북악당을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도 다니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독경제를 할 때는 북소리가 마을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문을 닫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릉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599, 18통~20통 (아리랑로19다길)
  • 비고: 교수단지

근거자료 원문

  • 4. 맹청(盲廳) ‘북악당’이 들어서다 양정석(남, 80세, 성북구 종암동) 교수단지에 맹청 북악당이 들어선 것은 1978년의 일이다. 당시 대한역리학회 회장이었던 양정석씨(80세, 성북구 종암동, 희망철학원 운영)가 미아리에 있던 협회 소유의 사당을 판 금액으로 사들여 북악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현석호 전 국방부 장관의 소유였던 터를 부동산에서 매입, 다시 양정석씨에게 매각했다. 그러나 맹인 철학자들이 사당인 북악당의 건립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미아리에 있는 사당을 팔아서 교수단지의 터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미아리 사당의 계약이 서너 차례 파기되면서 정릉 북악당의 매입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여러 차례의 계약파기로 자금마련이 어려워지자 당시 역리학회 회장이던 양정석씨와 재무담당자 등 관계자들의 집을 담보로 230평을 매입하게 되었다. 매입할 당시 가격은 5천만 원 정도였으며, 후에 미아리 사당은 4천 5백만 원에 내놓았던 것이 계약이 여러 번 파기되면서 3천 6백만 원에 매매되었다. 미아리에 사당이 있긴 했으나 북악당 땅을 매입하기 전까지 맹인 독경자들이 의례를 행할 장소는 마땅치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독경을 할 때마다 개인 사당을 빌려 의례를 행하기 일쑤였다. 개인 사당의 경우 사용료가 ‘부르는 게 값’이었고, 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미아리에 위치한 사당을 팔고 정릉에 북악당이 조성되면서 맹인들은 개인 사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례를 행할 수 있었다. 정릉에다 북악당을 세운 이유는 터가 좋았기 때문이다. 북악당을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도 다니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을 했다. 독경을 할 때 북소리가 마을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문을 닫고 하기도 했다. 처음 북악당이 세워졌을 때에 비해 현재는 의례가 많이 행해지지 않는 편이다. 일거리가 줄다보니, 집에서 제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양정석시는 현재 사주를 보러 오는 사람은 있으나, 실제 독경제(讀經祭)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경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한다. 양정석씨는 독경을 의뢰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개인을 넘어 400, 500년 간 이어져온 독경의 유지가 될지 우려하고 있었다. 이 단체가 이제 400년 500년 내려온 단체가 일련에 깨지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보기엔. 당장 이대로 나가면 30년이나 갈까 나 속으로 그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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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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