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상
1885.11.18 - 1962.01.04
인물 개인 사업가
기업인이다. 임종상은 그 조부가 미곡무역으로 일약 거부가 되었고, 자신은 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그는 성북동에 본집이 있었고, 종로구 창신동에는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창신동 별장은 매우 호화로워 안남국(베트남) 국왕의 저택에 비견될 정도였으며, 세간에서는 '창신궁'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종상은 재산을 일본 황실에 기부하고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방호단비와 국방비 등 고액의 헌금을 헌납했으며, 조선임전보국단 등 전쟁 지원 단체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2009년 민족문제 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성북동
  • 인생수첩(人生手帖) 일요일(日曜日)에 보내는 화제(話題) (구(九)) 걸인(乞人)이 된 갑부(甲富)의 장남(長男) 창신궁거재(昌信宮巨財)로 재판(裁判) 거듭 이제는 형무소행지원(刑務所行志願)하는 임씨(林氏) [초(肖)]
    상세페이지 이동 크게 보기
  • 인생수첩(人生手帖) 일요일(日曜日)에 보내는 화제(話題) (구(九)) 걸인(乞人)이 된 갑부(甲富)의 장남(長男) 창신궁거재(昌信宮巨財)로 재판(裁判) 거듭 이제는 형무소행지원(刑務所行志願)하는 임씨(林氏) [초(肖)]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林宗相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사업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비고: 임종상 별장

근거자료 원문

  • 대부업자였던 임종상林宗相의 별장이다. 이 별장은 성북동에 있는 자신의 본집보다 더 컸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87쪽
    임종상의 본집은 성북동에 있었고, 별장은 종로구 창신동에 있었다.
  • 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 재산을 일본 황실에 기부하고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방호단비와 국방비 등 고액의 헌금을 헌납했으며 조선임전보국단 등 전쟁 지원 단체에도 참가 동대문 밖 창신동에 ‘안남국왕’의 저택 같이 하늘을 막을 듯이 올려 쌓은 담장집을 소유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19쪽
  • 임종상 별장 위치 및 주소지 불명 창신동 저택과 비견될 만한 별장을 성북동에 소유 일본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결합한 ‘화양(和洋)’ 절충 양식의 저택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19쪽
  • 貸金業의 林宗相別邸 東大門밧 昌信洞에 安南國王의 邸宅가치 한울을 막을 듯이 올니싸흔 그 담장 집의 所有者 林宗相氏는 城北洞의 그 本宅보다 더 클 듯한 別莊을 가지고 잇다. 넓고 크고 和洋圻衷의 그 仰視케 하는 邸宅은 보는 이의 눈을 휘황케한다. 이 富豪는 亦貸金業을 主로 한다든가. 『삼천리』 7(5) 1935.6.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21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