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덕
1901.06.15 - 1970.06.05
인물 개인 문인
소설가이자 언론인, 영화기획자이다. 최상덕은 ‘독견’이라는 필명이자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01년 황해도 신천 출생인데, 중국으로 유학하여 1921년 상하이 혜령전문학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상하이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유린」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귀국한 후에는 기자로 재직하면서 조선일보에 소설 「승방비곡」(1927)을 연재하여 인기를 얻었고, 이후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한 영화소설이 되었다. 「승방비곡」은 성북구 보문동의 미타사(보문사길 6-16)에서 집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에도 「낭만시대」 등을 발표하는 한편 언론인으로 종사하여 서울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보문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崔象德
  • 이명칭: 독고성(獨孤聲), 독견(獨鵑)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문인

시기

주소

  • 주소: 02874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 3가 3-51 미타사 (보문사길 6-16)
  • 비고: 미타사(활동)

근거자료 원문

  • 탑골승방은 1927년 獨鵑 崔象德이 중편소설 「僧房悲曲」을 이곳에서 집필하여 그 연고성을 더욱 깊게 하였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3쪽
  • 정의 일제강점기 「유린」, 「유모」, 「승방비곡」 등을 저술한 소설가.언론인. 개설 본명은 최상덕(崔象德). 필명은 독고성(獨孤聲). 황해도 신천(信川) 출생. 생애 및 활동사항 1921년 중국 상하이 혜령전문학원(惠靈專門學院) 중문과를 졸업한 뒤 상하이일일신문[上海日日新聞] 기자를 거쳐 중외일보(中外日報) 학예부장을 역임하였으며, 광복 후 평화신문 부사장, 서울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연극에도 관여하여 동양극장 지배인(1932), 연극협회 이사(1940)를 역임하였으며, 박진(朴珍)·이서구(李瑞求) 등과 신극단 청춘좌(靑春座)·호화선(豪華船) 등을 조직하였다. 상하이일일신문 기자로 있으면서 중편소설 「유린(蹂躪)」(1921)을 연재하였으며, 이어 단편 「소작인의 딸」(新民, 1926.2.)·「유모(乳母)」(조선문단, 1926.6.)·「푸로 수기(手記)」(新民, 1926.8.)를 발표하였다. 또, 번역소설 「한 사람이 차지해야 할 땅」(조선농민, 1926.8.)과 단편 「책략(策略)」(문예시대, 1926.11.10.)·「고구마」(新民, 1927.2.)·「바보의 진노」(조선문단, 1927.4.) 등 경향적 작품도 발표하였다. 그 뒤 단편 「조그만 심판(審判)」(東光, 1927.4.)·「낙원(樂園)의 부서지에」(1927.5.) 등을 발표하였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뒤 자살한 어머니의 유서로 남매임이 밝혀진다는 내용의 중편 「승방비곡(僧房悲曲)」(1927.5.10.∼9.11.)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여 많은 애독자를 얻었으며, 이 작품은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한 영화소설이 되었다. 그 뒤 작품 경향은 초기의 경향적인 것에서 전환, 낭만적이며 감상적인 경향을 보이는 「자색(紫色)봉투」(新民, 1928.10.)·「향원염사(香園艶史)」(조선일보, 1928∼1929)·「연애시장」(新小說, 1930.9.), 광복 후에는 「낭만시대」(조선일보, 1964.11.∼1965.7.) 등을 발표하였다. 이밖에 단편 「괴뢰(傀儡)」(白民, 1950.2.)·「양심」(新天地, 1951.5.)·「애정무한성(愛情無限城)」 등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 최독견
  • 崔象德氏. 氏는 滿洲를단녀 最近은 城北洞洗松園에서 長篇執筆中.
    청조사, 1934, 신인문학 창간호, 81쪽
    최상덕씨. 씨는 만주를 다녀 최근은 성북동 세송원에서 장편 집필 중.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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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타사
    이야깃거리
    미타사
    분류: 장소, 유물
    시기: 고려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