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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음동은 동선동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으면 첫 번째로 나오는 동네이다.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또는 ‘기레미골’로 불렀는데, 그것이 한자화하여 길음동(吉音洞)이 되었다. 비가 많이 오면 이 일대가 물이 많이 차고 길이 질다고 하여 ‘기리미골’또는 ‘지리미골’로 불리었다고도 한다. 또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좋은 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1980년대만 해도 길음동 앞으로 흐르는 정릉천이 보였으나 복개 사업이 완료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길음1동 지역은 2004년에 착공한 길음뉴타운 사업으로 예전의 주택들이 대부분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전혀 새로운 동네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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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音洞
「三陽路」좌우편에 위치한 吉音洞의 洞名은 貞陵川의 골짜기가 길게 놓여져 있으므로 기리묵골이라 하던 것을 한자음으로 고쳐 쓴 것이다. 그리고 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기분이 맑아지므로 좋은 노래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에서 吉音洞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길음동은 조선초부터 漢城府에 속하였으며 高宗 4년(1867)에 쳔찬된 『六典條例』에 의하면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彌阿里契에 속하였다. 甲午改革때에는 漢城府 東署 崇信坊(城外) 東小門外契 彌阿里로 칭하였다. 한일합방 후 日帝는 1911년 4월 1일(京畿道令 제3호) 京畿道 京城府 崇信面 彌阿里로 칭하다가 1914년 4월 1일(京畿道令 제1호) 경기도에 속하여 高陽郡 崇仁面 彌阿里가 되었다.
광복 후 1949년 8월 13일(大統領令 제159호) 서울市 확장으로 편입되어 城北區 彌阿里로 불리우다가 1950년 3월 15일(市條例 제10호) 彌阿洞으로 개칭되었으며 崇仁出張所에서 행정을 담당했다. 그후 1959년 10월 31일(市條例 제165호)에는 前 미아제1동 지역을 吉音洞으로 하였다. 이 때 吉音洞은 미아동 533-1번지의 落合橋와 정릉천이 합류되는 지점을 기점으로 하여 同 567-1에 이르는 西部와, 同 지점으로부터 同 559-2번지를 경유하여 山 66번지에 이르는 細道路 이남의 지역을 경계로 한 도로 동북방 및 미아동 落合橋로부터 同 531번지의 구릉 이서지역의 전 미아1동 지역으로 정했다. 그리고 1975년 10월 1일 (市條例 제 979호)에 도봉구 미아동 일부가 길음동으로 편입되었다.
이 洞은 산으로 둘러싸인 盆地形이므로 大氣 오염도가 높은 편이고 「三陽路」(길음제1동∼삼양시장∼한신국교) 동쪽지역은 미아리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1957년 12월 8일 이후 고양군 벽제리로 이장하고 이 곳에 宅地를 조성해서 판자집 철거민을 이주시키는 한편 일반에게도 분양하였다.
현재 길음동의 행정은 吉音 第1洞, 第2洞, 第3洞에서 담당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95-7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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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音 第1洞〉
吉音 第1洞은 吉音洞의 남쪽, 즉 「정릉길」과 「미아로」, 「삼양로」를 끼고 있는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길음제1동은 1949년 8월 13일 서울市에 편입된 후 彌阿 第1洞이라 칭하였다. 1953년 당시 미아제1동회의 현황을 『市勢一覽』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96쪽 표 참조).
그리고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때 미아 제1동의 관할구역은 미아동 간선도로 이북 및 미아동 559로부터 573에 이르는 도로 서남방의 지역으로 정했다. 이어서 1959년 10월 31일(市條例 제165호) 미아 제1동사무소를 吉音洞事務所로 개칭하고 1970년 5월 18일(市條例 제613호) 미아동 지역을 미아 제1동에서 미아 제10동으로 정할 때 다시 미아 제1동으로 칭하였다. 다시 1975년 10월 1일(市條例 제981호) 미아 제1동을 吉音洞으로 바꾸고, 1977년 9월 1일(市條例 제1185호) 吉音洞事務所를 吉音第1洞事務所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길음제1동은 지하철 4호선 길음역이 위치하고 3개 도로를 끼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며 길음시장이 있는 관계로 상업이 발달된 번화가를 이루고 있다.
1975년 이후 길음제1동의 변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97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96-7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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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音 제2洞〉
吉音 第2洞은 吉音洞의 서쪽, 즉 「삼양로」 변의 미아초등학교 서쪽 일대 지역의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길음제2동은 1949년 8월 13일 서울市에 편입된 후 彌阿第2洞이라 칭하였다. 1953년 당시 미아제2동회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797쪽 표 참조).
그 뒤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 때 미아제 2동의 괄할구역은 미아동 중 제1동 경계도로 동북방 및 미아동 落合橋로부터 同 531번지 丘陵 以西의 지역으로 정했다. 이어서 1959년 10월 31일(市條例 제165호)에는 미아 제2동사무소를 仁壽洞事務所로 개칭했다. 仁壽洞이란 洞名은 북한산의 仁壽峰에서 이름을 붙였다고 하고, 지금의 길음시장이 있는 골목에서 吉音2洞으로 올라가는 길이 원래는 仁壽川이 흐르고 있었으므로 이 개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인수천은 큰 돌산이라 불리우고 있는 이 마을 뒷산의 국도채석장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개천으로 정릉천과 합류되나 지금은 복개하여 도로로 사용하고 있다.
1977년 9월 1일(市條例 제1185호) 仁壽洞은 吉音 第2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길음제2동은 주택가로서 도심의 철거민들이 정착한 곳으로 이 洞의 큰돌산은 採石場으로 사용되었다 이 산 아래에는 앵두나무 과수원이 있었기 때문에 근처의 마을을 앵두나무골 또는 한자로 含挑里라고도 부른다. 앵두나무골에는 앵두물 혹은 두꺼비우물이라 불리우는 우물이 있었다. 이 물은 앵두나무 뿌리가 빨아들인 물이 고여서 물맛이 달아 마치 앵두로 빚은 술을 먹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멀리 시내에서 온 사람도 이 물을 떠 마셨다고 한다. 또 水量이 워낙 풍부하였으므로 도심의 철거민들이 집단이주되어 왔어도 식수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점차 수질이 변해 사용하지 못하다가 매립되어 주택이 들어섰다.
이 洞의 교육기관으로는 미아국민학교와 길음국민학교가 있다.
1970년 이후 길음제2동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98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97-7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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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音第3洞〉
吉音 第3洞은 「삼양로」와 「미아로」를 끼고 있는 吉音洞 동쪽 지역의 洞長管轄區域 명칭이다.
길음제3동은 1949년 8월 13일 서울市에 편입된 후 앞의 길음제2동과 같이 미아제2동회라고 칭하였다. 그 뒤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 때 미아제3동이라 하였는데 이 때 관할구역은 미아동 중 미아제1, 제2동 관할구역을 제외한 전역이었다. 이어서 1959년 10월 31일(市條例 제165호)에는 미아제3동사무소를 松泉洞, 三陽洞事務所로 개칭할 때 송천동사무소라고 했는데 그 관할구역은 미아제3동중에서 落合橋로부터 議政府에 이르는 국도 중에서 彌阿橋를 중심으로 하여, 동은 미아동 산 29번지에 이르는 小道路 이남지역과, 서로는 佛堂各에 이르는 하천을 연한 同 638번지에서 산 75번지의 능선을 따라 仙皇堂 고개에 이르는 도로를 기점으로 한 이남지역이었다.
松果洞이란 명칭은 길음동 911번지 일대의 큰 소나무 아래에 약수터가 있기 때문에 제정 된 것이다. 1977년 9월 1일(市條例 제1185호) 송천동사무소는 吉音 第3洞事務所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길음 제3동지역은 주택가이지만 1958년 이전까지는 미아리 공동묘지로서 사용되었으나 도심지의 철거민들이 집단이주한 관계로 인구밀집지역이다.
길음제3동의 「미아로」 변은 상가를 이루고 지하철 4호선 길음역과 미아삼거리역이 양쪽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며, 「미아로」와 「월계로」, 「종암로」가 접하는 이른바 미아삼거리는 교통의 요지이고 번화가이다.
이 洞에는 성북등기소 외에 신세계백화점 미아점이 최근 개점하였다. 1970년 이후 길음 제3동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99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98-7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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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음동의 동명은 기리묵골을 한자로 고쳐 쓴 데서 연유한다. 기리묵골은 의정부 방면에서 혜화문(동소문)을 통과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미아리고개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의정부 쪽에서 도성 쪽으로 넘어오는 이 고개는 경사가 완만하고, 정릉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골짜기가 길게 형성되었고, 따라서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물골 또는 기레미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길음동은 남쪽으로는 미아리고개를 경계로 하여 돈암1동과 서쪽으로는 정릉동, 동쪽으로는 장위동, 종암동과 이어져 있다.
1913년 미아리에 공동묘지가 설치되었다. 현재의 갈음뉴타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현재 길음동은 길음뉴타운이 들어섰으며 길음초등학교, 미아초등학교, 길원초등학교, 길음중학교, 계성고등학교 등 많은 교육시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