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 경기도 고양군 정릉리였던 정릉2동에는 산신제가 전승되고 있다. 정릉2동의 산신제는 정릉리 아랫말의 산신제가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웃말인 정릉3동에도 산신제가 전승되고 있다. 산제당은 사적 제208호로 지정된 정릉 내에 위치한다. 정릉 내의 약수터 바로 윗 부분 산 중턱이다. 이 약수터는 간이휴게소의 왼쪽에 있는 것으로, 할머니약수터로 불린다. 약수터의 왼쪽에는 남북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비석처럼 세워 놓았고, 그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산제당이 있다. 산제당은 산 중턱에 약 30cm정도의 단을 쌓아 만든 것으로, 제단은 가로 430cm, 세로 195cm이다. 정면은 화강암으로 축대를 쌓았다.
산신제 때 비가 오면 산제당에 오르지 않고 경로당 안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그래서 경로당에 제물을 진설하고 북쪽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경로당에서 산신제를 지낸 것은 약 20년 전 단 한번뿐이었다. 제일은 매년 음력 10월 1일이다. 제사는 오후 4, 5시경부터 지내기 시작하여 약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제사를 지내는 대상은 옥황상제와 토지신으로, 각각 두 개의 상을 차려 지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과일, 시루떡, 삼색나물, 정종을 준비한다. 제비는 경로당의 회원을 중심으로 추렴하는데, 산신제 지내기 약5일전에 자발적으로 내고 있다. 경로당 안에는 제비를 낸 사람들의 명단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산신제에는 유사, 집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 10여명 정도가 제관의 의관을 갖추고 참가한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되어 제사 자체는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제의시간은 참석자 외 그들의 자손들까지 모두 100여 장의 소지를 올리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걸리는 편이다.
산신제에는 제물을 장만하는 여성 3명을 제외하고는 여성들은 참석할 수 없다. 도시화된 이후 산신제의 주체는 노인회관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 산신제는 마을의 각 집에서 추렴하여 제비를 마련하고, 깨끗한 집으로 도가를 뽑았다. 그러나 도시로 편입된 이후 젊은층의 관심이 줄어들어 노인들을 중심으로 산신제의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마을의 노인회관인 공청에서는 제비를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 제수물목, 홀기와 축문, 제관들의 명부 등을 적은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이 문서들은 1988년도분 부터인데, 이전의 것들은 보관하기 힘들어 폐기처분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