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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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유적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의 집터와 관련된 내용이다. 손기정은 일제강점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 때문에 기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승 후 외국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기도 하였다. 해방 후 손기정은 안암동에 거주하며 자신의 집을 ‘마라톤 선수 합숙소’로 이름붙이고 마라톤 유망주를 뽑아 훈련시켰다. 손기정의 가르침을 받은 서윤복,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이 국제대회에서 우승 등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성과를 내었다. 현재 집터는 다세대주택이 들어서서 집터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안암동
  • 손기정 집터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유적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
  • 비고: 미상, 해방 이후 손기정이 거주함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근거자료 원문

  • #손기정_집터 용문중 · 고교를 나와 우로 좌로 이리저리 골목을 꺾어들어가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음에도 가슴팍에 새겨진 일장기 때문에 기뻐할 수 없었던 마라토너 손기정의 집터다. 손기정은 해방 후 안암동에 거주하며 자신의 집을 ‘마라톤 선수 합숙소’라 이름붙이고 전국의 마라톤 유망주 20여명을 뽑아 직접 먹이고 재워가며 훈련을 시켰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 1950년 보스턴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 · 은 · 동을 휩쓴 한국의 삼인방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이 모두 이 곳에서 손기정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수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손기정이나 그 제자들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 곳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의 다세대주택들만이 죽 늘어서 있는데, 손기정 집이 있던 자리에도 그 중 하나가 들어서 있을 따름이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189쪽
  • 해방 이후 손기정은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암동 자택에 ‘마라톤선수합숙소’라는 현판을 붙이고 전국의 마라톤 유망주 20여명을 뽑아 직접 먹이고 재워가며 훈련을 시켰다. 이에 대한 결실은 비교적 빨리 나타났다. 당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서윤복이었는데, 손기정의 가르침에 힘입어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더불어 1950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는 손기정의 가르침을 받은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 3명의 선수가 나란히 1위부터 3위까지 거머쥐는 쾌거를 거두었다. 서윤복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그 시절, … 후배들을 먹이고 재우며 훈련을 시킨 그 은혜는 또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후배들의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돌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하신 것은 오직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국 마라톤의 아버지이자 저희들 의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뛰어라!“ 불호령을 내리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떠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껄껄 웃으시며 등을 다독대시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 “조국을 위해 뛰어라” 불호령이 그립습니다(2002. 11. 16. 중앙일보) 이처럼 손기정은 자택에 합숙소를 마련하고 직접훈련을 통해 후계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특히 훈련비 마련을 위해 직접 뛰어다녔다. 손기정 마라톤 인생에서 다음 막이 열린 것이다.
    성북문화원, 2018, 성북문화 제6호, 74-75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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