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조성된 별서 가운데 ‘오로정吾老亭’은 북저동 서북쪽 성곽 아래 지역에 있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지금의 덕수교회나 심우장 부근의 어느 산림 지대로 추정된다. 정조와 순조 연간에 활동한 중인 문사 장혼張混(1759-1828)이 이곳을 방문해서 지은 「북저동에서 놀다遊北渚洞」라는 제목의 시는 마을과는 멀리 떨어진 이 별서의 조용한 공기를 전달한다. 부제를 ‘마을 서북쪽 성곽의 그늘에 기대어 새로 지은 정자가 있으니 ‘오로’라고 편액하였는데 심히 맑고 깨끗하였다. 벽에 쓰다(洞西北附城陰 有亭新構 扁曰吾老 甚精灑 走題壁上).’라고 하여 별서의 위치를 밝히고 있다.
무성한 송림 사이로 흘러내리는 한 줄기 시냇물, 一流水夾萬株松
몇 리를 가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하네. 數里行過人未逢
연기 피어 올리는 집 몇 채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烟火幾家隱何處
천길 절벽 위 망루 하나 외로운 봉우리에 기대고 있네. 城譙千仞倚孤峰
꾀꼬리와 노는 그대여, 띠로 덮은 정자가 좋구나 黃鸝遊子茅亭好
푸른 이파리 한가한 구름, 한낮의 경치가 농염하다. 綠葉閑雲午景濃
온종일 누구는 여길 별천지인양 생각하는데 鎭日誰知濠濮想
성문으론 수레와 말이 다투어 달려가네. 郭門車馬競相從
― 『이이엄집』 제7권
이 오로정이란 별서의 존재는 1803년(순조 3)에 이만수가 지은「오로정」이라는 한시에서도 확인된다. 추측컨대 늦어도 순조 연간부터는 성북동 산간의 적당한 곳에 아름다운 별서들이 속속 조성되고 있지않았을까? 앞으로 더 많은 자료를 보면서 성북동 별서들의 이름, 위치, 조성연대, 소유주 등을 확인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