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성북구에는 10개가 넘는 전통시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과거 서라벌예대 학생들의 아지트였던 길음시장은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지난 2003년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현대화에 성공하여 지역의 대표시장이라는 명성을 되찾았습니다. 다양한 먹거리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돈암시장 또한 오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944년 몇 개의 점포가 들어선 공설시장 건물이 세워졌고 그 주변에는 사설시장이 형성되었다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정릉시장은 매월 개최되는 ‘개울장’을 통해 특색을 갖추고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북구의 시장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상인교육 등을 통해 주민을 위한 시장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구 길음로 7길 36-1에 위치한 전통 시장이다. 60년 이상의 오래된 전통시장으로 1970-1980년대에는 길음동을 비롯한 미아동, 돈암동, 정릉동 등 성북구 일대의 상권을 확보하여, 서울의 4대시장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대형백화점과 할인마트가 들어서고, 길음동 일대가 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상권과 시장이 축소되었으나 성북구청의 지원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2003년 최신식 설비를 갖춘 시장 현대화에 성공하여 지역의 대표시장이라는 명성을 되찾았다. 고객전용주차장, 어린이놀이방이 있으며, 천장 가리개와 냉난방시설도 설치되었다. 그리고 쇼핑카트가 다닐 수 있도록 통로도 정비되었고, 30년 전통의 먹자촌 골목도 관심을 끄는 명소이다.
성북구 동소문동 5가 59-1일대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토지구획정리가 완료된 1939년 이후, 삼선교에서 돈암교에 이르는 도로 양측에 2층 한옥상가가 생기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한옥상가는 정면 ‘ㅡ’자형의 2층 한옥 건물 뒤로‘ㄱ’자형 살림채가 이어진 구조였다. 1944년에는 13개의 점포가 들어선 공설시장 건물이 세워졌고, 시장 건물 주변 개천을 따라 사설시장이 형성되었다. 공설시장은 안시장, 사설시장은 바깥시장이라 불렸다. 1990년대에 진행된 재개발로 인해 안시장과 바깥시장의 일부가 현재의 돈암제일시장과 합쳐졌다. 돈암제일시장은 2014년 3월 '2014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된 후 공식명칭을 ‘돈암시장’으로 바꾸었으며, 복합쇼핑문화공간으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북구 돌곶이로22길 54-16(석관동 279-1)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2017년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을 통해 시장의 많은 환경개선이 이루어졌다. 디자인 특화를 위해 원래 명칭이었던 ‘석관황금시장’에서 ‘돌곶이시장’으로 명칭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돌곶이시장 캐릭터인 슈퍼돌 장복이가 개발되었다. 또한, 고객들의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성북구 최초 야시장을 운영을 통해 먹거리장터로 발돋움하면서 남녀노소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북구 보문동 1가와 4가, 지하철 보문역(6호선과 우이신설선)과 성북천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전통시장이다. 보문시장은 1961년에 재래시장으로 등록되어 오래도록 보문동 일대 주거지에 생필품을 공급하였다. 하지만 건물과 시설이 노후되고 주변 환경 낙후되어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지역 개발과 시장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2005년 정비사업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시장 중심 위치에 15층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는데, 재래시장 현대화의 바람과는 달리 높은 임대료로 인해 상인들은 입점하지 못했고 시장은 사실상 축소되었다. 현재는 비교적 규모가 적은 골목시장의 모습으로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성북구 동소문동 2가, 지하철 한성대입구역(4호선)에서 성북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던 전통시장이다. 성북천은 1960년대부터 구간을 나눠 하천을 덮는 복개를 진행하였고, 복개한 자리에 상가아파트를 지으면서 들어선 것이 삼선시장이었다. 따라서 삼선시장은 1960년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철공소들이 잇달아 있고 골목시장 안쪽으로는 상점 천막이 빽빽했는데, 1985년 지하철 4호선이 개통되며 삼선교의 시장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성북천 복원이 다시 추진되었고, 현재는 복원이 완료되고 주변이 정비되었다. 그에 따라 현재 동소문로6길 22 일대에 상가들이 남아있을 뿐 시장의 규모는 크게 축소되었고, 성북천 주변은 공연장이 갖춰지고 각종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0(정릉동 966-56) 일대에 형성되어 있는 전통시장이다. 아리랑시장은 1960년대에 형성되었으며 시장 상인의 75%가 정릉 주민이었다. 1970~1980년대에는 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며 흐르던 개천이 복개되어 길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정릉동 일대를 대표하는 마을장터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이후 정릉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다니던 길은 차도가 되었고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시장 상권이 쇠퇴하고 폐업하는 가게가 많아졌다. 근래에는 전통시장 활성화 노력으로 상인회를 중심으로 주민들과 지역의 청년들이 함께 깨끗한 먹을거리와 살거리들이 많은 시장,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북구 장위동 68번지 일대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돌곶이역(6호선) 인근의 장위지구대 옆에 ‘장위전통시장’으로 표시된 대형 구조물로 입구를 만들었고, 200m 정도의 긴 골목을 따라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장위골목시장이라고 부른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는데, 오래된 전통시장이 그러하듯 노후된 시설이나 환경을 인해 쇠락해가다 2010년대 들어 빗물받이 설치, 하수노후관 교체, 보도블럭과 주차장 설치 등의 환경개선사업을 거치며 다시 활력을 찾고 다른 전통시장 재생사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최근 이 지역에 대한 재개발이 논의 중인데, 시장구역의 반 정도가 대상에 포함되어 이미 철시한 상점들이 다수 있고 규모의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성북구 보국문로11길 일대에 있는 전통시장이다. 정릉천변에 위치한 정릉시장은 1960년대 초부터 자리잡았는데, 1990년대 이후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시장 상권이 쇠퇴하던 중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무렵부터이다. 서울시와 성북구가 적극적으로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서, 서울형 신시장으로 지정되었고 배달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매달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정릉천변을 따라 마을장터인 개울장을 여는데, 벼룩시장인 ‘팔장’, 직접 만든 물건을 사고파는 ‘손장’, 그리고 정릉시장의 소문난 먹을거리를 배달해주는 ‘먹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체험, 공연, 먹을거리 등 다채로운 주제가 어우러진 복합문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1950년대 성북구 월곡동 87번지(1955.03.15 『동아일보』 기사 참고)에 있던 시장이다. 1950년대 초 정릉동의 주택개발로 인해 인구가 많아졌으나 상권이 불편하여 주민들이 불만을 호소하였다. 이에 서울시 당국의 민영인가를 얻어 길음지서 뒷마당 2000평의 대지에 숭인시장이 발족되었다.
2009년에 서정시학에서 발간한 시집 『불꽃 비단벌레』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이 관여한 출판사 서정시학이 동선동에 2000년부터 약 15년간 있었을 때, 사무실을 오가던 길에 있던 돈암시장의 모습을 보고 쓴 시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생선가게 앞 시장 골목에서 묻어나는 고단함을 생생한 감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숙진미용실은 장위시장과 연결된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47년동안 영업했다고 한다. 2019년 3월 22일 촬영 당일이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영업하는 날이었다. 지금의 매장이 장위동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어(11구역) 3월 25일에 장월로8길 45로 이전하였다. 벽에 걸린 미용사 자격증, 지금도 사용중인 고데기 등 미용용품에서 시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숙진미용실은 장위시장과 연결된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47년동안 영업했다고 한다. 2019년 3월 22일 촬영 당일이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영업하는 날이었다. 지금의 매장이 장위동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어(11구역) 3월 25일에 장월로8길 45로 이전하였다. 벽에 걸린 미용사 자격증, 지금도 사용중인 고데기 등 미용용품에서 시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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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장위시장은 2005년 10월 20일에 개설된 중형시장이다. 130개 점포가 운영중이며 정육, 청과, 의류, 생필품 등의 소매가 업종의 주를 이룬다. 장위지구대에서 시작해 장위초등학교 동편을 지나 장위로 큰길가까지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400미터 가량의 길이로 자리잡고 있다. 개설 당시 이름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장위골목시장'이었다. 서울시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장을 시에 등록을 하여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위시장의 절반은 등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위지구대 쪽 등록을 하고 어닝공사를 시행한 쪽을 지금은 '장위전통시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부분을 '장위골목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시장의 간판이나 천장을 보면 뚜렷하게 두 구역이 구분이 된다. '골목시장'은 간판이 오래되고 디자인이 각양각색이며 천장이 목재인 반면, '전통시장'은 브랜딩을 하여 간판의 디자인이 통일되고 천장은 어닝을 설치하여 천막과 같은 재질이 확인된다. 2019년 현재 장위시장은 재개발로 인해 반토막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시장' 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상인회를 기점으로 '골목시장'까지는 장위11구역이고 그 반대방향 즉 상인회에서 장위지구대까지는 장위10구역에 포함된다. 10구역의 경우 재개발 해제로 시장이 보존되지만 11구역의 경우 촬영 당시인 3월에 이미 이주가 시작되어 공가 스티커가 부착된 점포가 상당수 있었다.
번동종합시장 건물로 1972년도에 사용승인되었다. 시장 이름에 '번동'이 있는 이유는 주소지가 도봉구 번동에서 성북구 장위동으로 변경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 명칭 및 구역획정 조례 제270호(개정 1994-12-23)'에 의거, "서울특별시 도봉구 번동중 961필지를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에 편입한다."에 따라 도봉구 번동 64-10은 성북구 장위동 301로 변경되었다. 상가 간판으로 인해 '번동종합시장'이라는 글자에서 '동'자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번동종합시장 건물로 1972년도에 사용승인되었다. 시장 이름에 '번동'이 있는 이유는 주소지가 도봉구 번동에서 성북구 장위동으로 변경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 명칭 및 구역획정 조례 제270호(개정 1994-12-23)'에 의거, "서울특별시 도봉구 번동중 961필지를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에 편입한다."에 따라 도봉구 번동 64-10은 성북구 장위동 301로 변경되었다. 상가 간판으로 인해 '번동종합시장'이라는 글자에서 '동'자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번동종합시장 건물로 1972년도에 사용승인되었다. 시장 이름에 '번동'이 있는 이유는 주소지가 도봉구 번동에서 성북구 장위동으로 변경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 명칭 및 구역획정 조례 제270호(개정 1994-12-23)'에 의거, "서울특별시 도봉구 번동중 961필지를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에 편입한다."에 따라 도봉구 번동 64-10은 성북구 장위동 301로 변경되었다. 상가 간판으로 인해 '번동종합시장'이라는 글자에서 '동'자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번동종합시장 건물로 1972년도에 사용승인되었다. 시장 이름에 '번동'이 있는 이유는 주소지가 도봉구 번동에서 성북구 장위동으로 변경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 명칭 및 구역획정 조례 제270호(개정 1994-12-23)'에 의거, "서울특별시 도봉구 번동중 961필지를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에 편입한다."에 따라 도봉구 번동 64-10은 성북구 장위동 301로 변경되었다. 상가 간판으로 인해 '번동종합시장'이라는 글자에서 '동'자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보문시장' 글자가 적힌 철제 아치형 간판이 시장 입구를 알려주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 보문로를 따라 상가들이 있으며 두 블록을 지나면 성북천이 나온다. 성북천변으로 상점가와 음식점 등이 이어진다. 현재 하우스스토리아파트(인촌로2길 37)가 위치한 자리도 원래 보문시장 자리였다.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2011년) 점포수가 줄고 예전에 비해 활력도 줄었다.
장위시장 내부에 걸려있는 어린이 시장 책방 안내 현수막이다. 전통시장 가는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집에서 읽지 않는 책을 다른책으로 교환하거나 전통시장 할인쿠폰으로 교환하는 행사로, 어린이들의 참여를 도모하며 전통시장 살리기에도 힘을 싣고 있다.
2019년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봉사센터와 성북문화원의 지역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학생들이 촬영한 사진이다.
새석관시장 외부 골목길이다. 떡 방앗간, 집 수리, 옷 수선집등 오래된 가게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골목으로, 뒤편의 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와 대비를 이룬다.
2019년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봉사센터와 성북문화원의 지역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학생들이 촬영한 사진이다.
2009년 길음시장 앞 전경이다. 신안아파트에서 시작하여 미아로를 연결하는 인수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수천이라는 개천이었다. 인수천 가를 따라 노점이 형성되어 소규모로 채소, 먹거리 등을 팔던 것이 길음시장까지 이어졌다. 인수천변의 노점은 인수시장으로 불리다 이후 길음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당시 길음시장의 규모는 대단히 컸다고 한다.
『길음동』(2010), 86쪽[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내용 인용]
길음시장 일대 전경이다. 길음시장은 1970년대 서울의 5대 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서울에서 가장 싸고 많은 물건을 파는 시장으로 유명했다. 길음시장의 활성화는 미아리고개를 기반으로 한 교통이 크게 기여했다. 미아리고개는 높은 고개로 유명하였는데, 1964~1966년 도로 확장공사로 미아리 확장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도로의 확장으로 인해 서울 시내에서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물건들이 길음시장으로 쉽게 몰려 들 수 있었다.
『길음동』(2010), 136쪽[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내용 인용]
길음시장의 배치를 나타낸 것이다. 길음시장은 크게 노점과 건물 내 점포로 구성되어 있다. 노점은 야채, 생선, 건어물, 과일 등 1차 품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외의 공산품으로 옷, 가방 등이 팔리고 있다. 점포는 한 칸 당 4평 혹은 5.8평이며, 가게의 규모에 따라 여러 칸을 사용하는 점포들이 있다. 같은 품목을 파는 점포들끼리 뭉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시장이 잘 되어 모든 가게가 다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폐업한 가게들이 많다. 그나마 음식점이 경기를 덜 타며 꾸준히 장사가 되는 편에 속한다. 2009년 당시 약 40개의 노점과 100여개의 점포가 영업 중에 있었다.
『길음동』(2010), 139쪽[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내용 인용]
위에서 바라 본 길음시장의 풍경이다. 1950년대 이후 정릉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길음시장은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의 5대 시장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백화점과 아파트 재개발,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최근 건물을 보수하고 주차장 시설을 갖추는 등 재래시장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사진으로 담은 길음동』(2010), 105쪽[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내용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