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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석관상공인회
- 성북구의 집수리 봉사단체이다. 2005년 1월 천석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2014년 1월 석관상공인회로 단체명을 변경하였다. 관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집수리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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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석관 청소년센터
-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복합 문화·상담 시설이다. 2019년 서울시 '10분 동네 생활 SOC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석관동 청소년 문화예술시설 건립 추진계획'에 의해 건립이 진행되었다. 지상 1층~4층 규모의 이 센터는 1층은 카페문화공간, 2층은 체육활동 프로그램 운영 시설, 3층은 상담공간, 4층은 청소년 자유공간 및 스터디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전한 청소년 놀이 문화 공간을 갖춰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과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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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한범수
- 성북구 석관동에 거주했던 대금·해금·퉁애 연주자이다.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10세 때 김원삼의 퉁소 소리에 반해 그에게서 퉁소와 단소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1926년에는 단소 명인 윤종선을 사사하였다. 1930년대 라디오에서 대금산조의 시조로 꼽히는 박종기(朴鍾基)의 대금산조를 듣고 감명받아 서울로 찾아와 대금을 잠깐 배웠으나 박종기가 여러 곳으로 다니는 관계로 유성기 음반을 들으며 대금산조를 자습한 뒤 1938년 박종기를 찾아갔다고 한다. 1947년 6월 여성국극협회에 입단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여러 단체에 참여해 대금 예술을 국내외에 소개하였다. 1964년부터 국립국악원 국악사양성소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강사로 있으며 후진을 양성하였고, 1975년 5월부터는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대금을 가르쳤다. 1981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투병하다가 석관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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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이춘명
- 성북구에서 20년 이상 거주하며 시, 동화, 신문 칼럼을 쓰는 작가이다. '시산문(詩散門)' 회원들과 함께 펴낸 시집 『풀씨 하나가 피운 꽃』(2020)을 통해 석관동, 종암동, 장위동 등 자신이 거주했거나 거주 중인 성북구에서의 삶을 담은 시 여러 편을 발표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자 어린이 도서 연구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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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황지우
- 1952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본명은 황재우(黃在祐)이며 시인이자 교수이다.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같은 해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3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군부 독재 시절 한국의 암울함을 풍자하거나 저항하는 내용의 작품을 남겼고, 자신만의 서정시 분야를 개척하여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다. 특히 동시대인의 객관적인 삶의 이미지와 시인의 개별적인 삶의 이미지가 독특하게 겹쳐져 생의 회한을 담고 있는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있을 거다』(1998)가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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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거룩한 저녁 나무-김용택 詩伯에게
- 황지우(黃芝雨, 1952-)시인이 문학과 지성사(1998년)에서 발간한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 수록된 시이다. 이 시집은 황지우의 시집들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을뿐만 아니라, 우리 시사(詩史)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시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에는 "옛 안기부 건물 앞 어느 왕릉의 나무에게"라는 시구가 있다. '안기부'는 중앙정보부의 후신이자 국가정보원의 전신으로, 국가안전기획부의 약칭이다. 안기부는 1980년대 남산과 이문동(석관동)에 청사가 있었는데, 의릉 부지에 이문동 청사가 있었다. 따라서 시의 공간적 배경인 "어느 왕릉"은 '의릉(懿陵)'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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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한천마을
-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동네로 한천마을의 명칭은 중랑천의 옛 이름인 '한천'에서 유래되었다. 2012년 11월 주택재건축 정비예정구역 해제 이후 2017년 8월에 주거환경개선사업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7월에 주민공동체운영회로 승인을 받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폭넓은 연령층의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활성화시켜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진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마을 소식지를 제작하고 벽화거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그 밖에도 영양학사(한천로 550) 1층에 자리하고 있는 '한천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에서 여러 특강과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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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석상
- 봉문 앞에 상모양으로 놓인 육면체 석물을 석상(石床) 혹은 혼유석(魂遊石)이라고 한다. 이를 받치고 있는 받침돌은 고석(鼓石) 혹은 족석(足石)으로 부른다. 조선 초기에는 석상에 고석을 5개씩 놓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4개씩 받치고 있다. 선의왕후릉 석상 전체 높이는 91cm이다. 석상은 크기가 260×176cm, 두께는 50cm이다. 4개의 족석이 받치고 있는데, 족석 높이는 41cm로서 경종릉 석상과 거의 동일한 크기이다. 족석은 네 면에 나어두문(羅魚頭文)을 양각했고, 상하단에는 연주대를 돌렸다. 족석 하부 바닥에는 다듬은 지대석 2매를 깔아 석상을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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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석양
- 선의왕후릉의 석수(石獸)는 각각 상계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각 2쌍, 중계와 하계의 문석인과 무석인 뒤쪽 측면으로 배설된 석마 2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양은 높이 66cm, 길이 118cm이다. 전체적으로 풍만하면서도 균형 잡힌 모습이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몸통과 조화를 이룬다. 눈·코·입은 선각으로 나타내는 등 경종릉 석양과 유사하다. 귀를 둘러싸고 있는 뿔은 둥글게 말려있으며, 마디도 표현했다. 뿔 사이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귀는 선명하게 나타난다.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의 막혀 있는 면에는 초화문(草花紋)을 양각으로 조식했다. 엉덩이에는 짧은 타원형의 꼬리와 함께 꼬리 밑에 있는 성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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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석호
- 선의왕후릉의 석수(石獸)는 각각 상계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각 2쌍, 중계와 하계의 문석인과 무석인 뒤쪽 측면으로 배설된 석마 2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호는 높이 85cm, 길이 116cm이다. 전체적으로 몸통의 길이가 짧아 비례감이 어색하다. 앞다리는 세우고 뒷다리는 구부려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는데, 구부정한 자세이다. 얼굴은 입을 벌리고 웃고 있어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 양 눈은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했고, 코는 오뚝하며, 입은 벌리고 있어 이빨이 드러나 있다. 목에서 가슴으로 연결되는 부위를 볼록하게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꼬리는 경종릉 석호처럼 몸통의 윗부분까지 끝을 둥글게 말아 올리고 있는 형태이다. 발은 뭉툭하며, 발가락과 마디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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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석마
- 선의왕후릉의 석수(石獸)는 각각 상계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각 2쌍, 중계와 하계의 문석인과 무석인 뒤쪽 측면으로 배설된 석마 2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마는 높이 78cm, 길이 117cm이며, 경종릉 석마와 비슷한 형식을 하고 있다. 균형 잡힌 자세에 배와 엉덩이 등에 풍만함이 잘 표현되었다. 눈·코·입은 선각했으며, 이마와 목덜미에는 양쪽으로 나뉜 갈기를 표현했다. 다리 사이는 각각 막혀 있고 양 측면에는 초화문(草花紋)을 양각했다. 엉덩이 위쪽부터 바닥까지 길게 꼬리가 내려왔고, 꼬리털은 선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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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문석인
- 문석인은 중계(中階)에 2구를 배치했고, 높이 175cm, 좌우너비 70cm, 앞뒤 길이 60cm이다. 복두를 쓰고 단령(團領)을 입고 앞·뒤쪽에 앞치마와 비슷한 복식을 드리웠다. 복두의 형태는 앞이 낮고 뒤가 높은 형태이며 끈은 귀 앞을 지나 턱 밑에서 양쪽으로 고를 내어 묶었다. 포와 소매가 길고 넓어서 주름이 많이 잡혀있다. 단령 안에는 소매통이 좁은 옷을 받쳐 입어서 단령 소맷자락 바깥에 좁은 소맷자락이 보이고 손으로 홀을 쥐고 있다. 허리에는 야자대(也字帶)를 둘렀고, 남은 띠는 오른쪽 허리에서 왼쪽 아래로 늘어뜨렸다. 과판의 무늬는 꽃잎이 8장인 꽃으로 꾸몄으며 과판 3개가 뒷면에 드러나 있다. 홀(笏)은 윗부분 가장자리를 살짝 둥글리고 아래쪽은 사다리꼴로 조금 넓어진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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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무석인
- 무석인은 하계(下階)에 2구를 배치했고, 높이 186cm, 좌우너비 72cm, 앞뒤 길이 68cm이다. 무석인은 둥근 눈, 콧구멍이 잘 보이는 코와 함께 콧등에 가로로 주름이 잡혀있다. 입가에 곱슬 수염만 있고 나머지는 직선으로 된 수염을 세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아래로 드리우거나 양옆으로 휘날리게 표현하였다. 복식은 구름무늬 옷감으로 만든 포(袍)를 입고 상반신에는 소슬무늬 갑옷을 입었다. 하반신에는 표범가죽을 두른 후, 허리에 비늘무늬의 갑옷과 허리띠를 한 모습이다. 팔에는 비갑을, 다리에는 경갑을 두르고 있으며 검집은 왼쪽 허리에 매달았다. 하반신에는 갑옷 무늬가 보이지 않고, 어깨에 맹수 얼굴 무늬가 왕릉보다 크고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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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망주석
- 망주석은 높이가 245cm로 경종릉 망주석과 비슷한 크기와 형식을 갖추고 있다. 형태는 팔각을 이루며, 원수-주신, 대석-지대석의 석재 2매로 이루어져 있다. 주신이 대석에 끼워진 형식이다. 원수는 연봉형을 이루며, 연주대를 돌렸다. 운두에는 여의두문을 양각했다. 주신 상부의 우측 세호(細虎)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으며, 좌측 세호는 위쪽을 향하고 있다. 세호는 네 다리와 몸통 등이 명확하게 표현되었으며, 등갈기와 꼬리털 등이 사실적이다. 대좌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의 위쪽과 아래쪽으로는 각각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조식했고, 각 면에는 안상을 표현했다. 중대와 하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지대석은 사각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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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장명등
- 경종릉 장명등과 유사한 형식이다. 중계에 배설된 사각 장명등으로 높이는 230cm이다. 정자석은 2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당의 원수는 연봉형이다. 하단은 원형을 이루며 하엽형의 덮개로 장식했다. 상부와 하부의 중간에는 연주를 둘렀다. 옥개석은 사모지붕 형식을 하고 있으며, 각 면마다 네 변의 지붕 합각부를 삼각형으로 돌출시켰다. 격석은 네 면에 각각 화창을 조성했고 모서리를 모죽임했다. 대석은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상대가 비율적으로 가장 크며, 중대는 가장 작은 비율로 구성되었다. 상대에는 위 아래쪽에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조식했고 각 면마다 사각의 구획 안에 연꽃, 모란 등 화문을 양각했다. 중대에는 각 면에 안상을 조각했다. 하대는 각 모서리마다 장식성이 높은 운족(雲足)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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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무석인
- 무석인은 하계(下階)에 2구를 배치했고, 높이 174cm, 좌우너비 68cm, 앞뒤 길이 65cm이다. 눈이 튀어나왔고, 코는 넓고 들려서 콧구멍이 잘 보인다. 복식은 구름무늬 옷감으로 만든 포(袍)를 입고 상반신에는 소슬무늬의 갑옷을 입었다. 하반신에는 표범가죽을 두른 후, 허리에 비늘무늬의 갑옷과 허리띠를 한 모습이다. 팔에는 비갑을, 다리에는 경갑을 두르고 있으며 검집은 왼쪽 허리에 매달았다. 투구는 옆드림을 젖혀서 하단의 끈으로 뒷덜미에서 고를 내어 묶어주었다. 투구에 이마 가리개와 차양을 별개로 조각한 것 역시 실물 구조를 반영한 부분이다. 목둘레를 따라 길쭉한 오각형 무늬를 방사상으로 새겨 장식했다. 이는 다른 능은 물론 선의왕후릉에서도 볼 수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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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문석인
- 문석인은 중계(中階)에 2구를 배치했고, 높이 177cm, 좌우너비 70cm, 앞뒤 길이 60cm이다. 문석인은 복두를 쓰고 단령(團領)을 입고 앞·뒤쪽에 앞치마와 비슷한 복식을 드리웠다. 복두의 형태는 앞이 낮고 뒤가 높은 형태이며 끈은 귀 앞을 지나 턱 밑에서 양쪽으로 고를 내어 묶었다. 포와 소매가 길고 넓어서 주름이 많이 잡혀있다. 단령 안에는 소매통이 좁은 옷을 받쳐 입어서 소맷자락이 보이고 손으로 홀을 쥐고 있다. 허리에는 야자대(也字帶)를 둘렀고, 남은 띠는 오른쪽 허리에서 왼쪽 아래로 늘어뜨렸다. 과판의 무늬는 꽃잎이 8장인 꽃으로 꾸몄으며 과판 4개가 뒷면에 드러나 있다. 홀(笏)은 윗부분 가장자리를 살짝 둥글리고 아래쪽은 사다리꼴로 조금 넓어진 형태이다. 신발은 테두리에 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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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석상
- 봉문 앞에 상모양으로 놓인 육면체 석물을 석상(石床) 혹은 혼유석(魂遊石)이라고 한다. 이를 받치고 있는 받침돌은 고석(鼓石) 혹은 족석(足石)으로 부른다. 조선 초기에는 석상에 고석을 5개씩 놓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4개씩 받치고 있다. 경종릉 봉분 앞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석상은 전체 높이가 89cm이다. 크기가 261×175cm, 두께는 51cm로서 4개의 고석이 받치고 있다. 고석 높이는 38cm이며, 네 면에 나어두문(羅魚頭文)을 양각했고, 상하단에는 연주대를 돌렸다. 나어두문은 아랫입술부분이 문고리 형태이다. 고석 하부 바닥에는 다듬은 지대석 2매를 깔아 석상을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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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장명등
- 장명등의 높이는 230cm이며, 중계의 중앙에 위치한다. 정자석-개석, 격석, 대석-지대석의 3매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정자석은 2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단의 원수는 연봉형이다. 하단은 원형을 이루며 하엽형의 덮개로 장식했다. 상부와 하부의 중간에는 연주를 둘렀다. 옥개석은 네 변의 지붕 합각부를 삼각형으로 돌출시켜 표현했다. 옥개석 처마 끝은 밖으로 약간 반전했다. 격석은 네 면에 각각 화창을 조성했고, 모서리를 모죽임했다. 대석은 3단으로 구성하고, 상대에는 만개한 연화문과 국화문을 양각했다. 중대에는 각 면마다 안상을, 하대는 높은 운족(雲足)을 표현했는데, 장식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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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석마
- 경종릉의 석수(石獸)는 각각 상계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각 2쌍, 중계와 하계의 문석인과 무석인 뒤쪽 측면으로 배설된 석마 2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마는 높이 96cm, 길이 147cm이며,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모습이다. 석양과 마찬가지로 머리가 몸통에 비해 약간 작다.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고 네 다리를 곧게 뻗어 서 있다. 뒷다리의 허벅지와 배 등은 볼륨감있게 표현했다. 눈·코·입은 선각했으며, 이마와 목덜미에는 양쪽으로 대칭되도록 갈기를 표현했다. 다리사이는 각각 막혀 있고 양 측면에는 초화문(草花紋)을 양각했다. 엉덩이 위쪽부터 바닥까지 길게 꼬리가 내려왔고, 꼬리털은 선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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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석호
- 경종릉의 석수(石獸)는 각각 상계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각 2쌍, 중계와 하계의 문석인과 무석인 뒤쪽 측면으로 배설된 석마 2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호는 높이 80cm, 길이 132cm이며, 앞다리는 세우고 뒷다리는 구부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있다. 자연스러운 몸통의 표현에 비해 짧은 앞다리는 도식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머리 표현은 신체의 굴곡을 고려하지 않아서 몸통과 머리가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눈, 코, 입 모두 돌출되었고, 이빨 역시 과장되게 드러나 있는데, 민화의 호랑이 표정과 유사하다. 앞발의 발가락은 마디를 선명하게 나타냈고 발톱 표현도 명확하다. 석호 꼬리는 다른 능의 경우 대체로 바닥에 놓여진 것에 비해 이 경우는 끝이 둥글게 말린 꼬리를 위쪽으로 올려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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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석양
- 경종릉의 석수(石獸)는 각각 상계의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각 2쌍, 중계와 하계의 문석인과 무석인 뒤쪽 측면으로 배설된 석마 2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양은 높이 66cm, 길이 114cm이다. 전체적으로 풍만하면서도 균형 잡힌 모습이다. 머리와 몸이 과장되거나 경직되어 있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표현되었다. 얼굴은 몸통과 조화를 이루며, 눈·코·입은 선각했다. 뿔은 긴 타원형 형태로 말려있으며, 윗부분을 마디로 표현했다. 다리 사이는 막혀 있으며, 측면에는 음각으로 초화문(草花紋)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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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망주석
- 망주석은 능침 양편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가 239cm이며, 형태는 팔각, 운수-주신, 대석-지대석의 석재 2매로 이루어져 있다. 주신이 대석에 기워진 형식인데, 주신에 비해 대석이 낮은 비율을 하고 있어 안정감이 떨어진다. 주신 상부에는 세호(細虎)를 표현했다. 우측 세호는 위쪽을 향하고 있으며, 좌측 세호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세호는 네다리와 몸통 등이 명확하게 표현되었으며, 등갈기와 꼬리털 등이 사실적이다. 대좌는 형식을 간소화시켰으며, 통상 3단 형태가 아닌 2단으로 이루어졌다. 상대의 위쪽과 아래쪽으로는 각각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조식했다. 하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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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선의왕후 석물
-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景宗)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무덤이다. 선의왕후의 본관은 함종(咸從)이며, 영돈녕부사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선의왕후릉은 앞쪽에 배치하였고 석물은 경종릉과 동일하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 장명등, 문무석, 석마, 석양, 석호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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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의릉 경종 석물
-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景宗)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무덤이다. 경종의 이름은 윤(昀), 자는 휘서(輝瑞)이다. 숙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희빈장씨이다. 경종은 1724년 8월 25일 일생을 마쳤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경종릉은 뒤에 배치하였고 석물은 선의왕후릉과 동일하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양, 석호, 석마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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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돌곶이 생활예술문화센터
- 성북구 화랑로32길 100-1(석관동 261-125)에 위치한 문화시설이다.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석관동에 있는 주택을 개조하여 2017년에 개관하였다. 돌곶이 생활예술문화센터는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로 운영되며, 오픈 플랫폼의 형태로 이용자 간의 소통을 증진하여 지역의 문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하층에는 연극, 댄스, 악기 등을 연습하는 연습실이 있고, 1층에는 공동 작업장과 커뮤니티 라운지, 2층에는 회의나 모임, 요리나눔 등을 할 수 있는 회의실, 공방작업실, 공유부엌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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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청량근린공원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37(석관동 409)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1940년 3월 12일에 개원하였고, 1995년 청량근린공원 조성이 계획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량근린공원은 홍릉 및 의릉이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의 면적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총 면적은 762,642㎡이며 어르신건강마당, 산책로, 파고라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르신건강마당은 1,980㎡ 규모의 노인 전용 운동공간으로써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운동 기구들을 갖추고 있다. 성북구에서는 문화재청과 협의하여 문화재구역 일부를 개방하여 의릉 ~ 돌뫼어린이공원 ~ 성북정보도서관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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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성북종합레포츠타운
- 성북구 한천로58길 307(석관동 382)에 위치한 공공체육시설이다. 중랑천을 마주보고 위치한 성북종합레포츠타운은 청소차고지에 체육문화시설을 접목시켜 만들어졌다.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로 건립된 성북종합레포츠타운은 지하 1∼3층에 청소차고지를 두고 있으며 지상에는 수영장, 헬스장, 골프연습장, 풋살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한 건강, 미술, 교양 등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강좌가 개설되어 주민들의 건강 증진과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시설은 현재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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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예술순환로 실험공간
- 성북구 화랑로 196(석관동 341-15)에 있는 전시공간이다. “예술순환로”라는 예술활동 거점지역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 9월 7일 개관하였다. “예술순환로”는 성북, 영등포, 마포구, 중구 총 4개의 자치구가 서울시 공모에 선정되어 함께 진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성북구에서는 월곡동과 석관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술순환로 실험공간’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편하게 모여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앞으로 공유 작업실, 커뮤니티 공간, 전시관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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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석관동 연탄공장단지
- 성북구 석관동에 있던 공장단지이다. 1968년 정부에서는 급증하는 서울의 연탄수요를 맞추고, 또 서울 시내 중심가의 연탄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서울 외곽이었던 이곳에 연탄제조업 단지를 조성하였다. 공장단지는 동쪽의 중랑천과 서쪽의 경원선 사이, 남쪽으로는 동대문구 이문동과 북쪽으로 석관동이 연결된 남북으로 길고 넓은 부지에 자리 잡았다. 공장단지는 1990년대 도시기반시설의 확충으로 인해 그 수가 점차 축소된다. 1994년 중랑천 서측에 두산아파트 건설 공사를 시작으로 중랑천변쪽 연탄공장 시설들이 축소되었고, 2003년에는 석계초등학교가 지어졌고, 2004년 중랑천 동부간선도로 옆으로 한천로가 정비되면서 연탄공장 동측면이 잘려나갔다. 현재는 동대문구 이문동에 연탄공장 일부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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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중앙정보부 본청
- 성북구 석관동 산1-5번지에 있던 국가기관으로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하였다. 석관동 본청 자리는 의릉이 있어 넓은 부지가 확보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었다. 본 청사를 비롯한 주요 건물들은 1962년부터 자리를 잡았다. 1968년 항공사진을 보면, 전체 부지에서 본관(멸실)과 운동장(멸실), 강당(현존) 등 몇 개의 건물과 도로구조가 완성되었고 천장산 주변으로 담장이 둘러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세워진 남산 중앙정보부 분청은 정치공작, 대공업무 등 이른바 ‘핵심업무’를 담당했고, 석관동 본청에서는 자료 수집·보관, 교육·훈련, 해외 업무 등 배후 기능을 담당했다. 1995년 청사가 내곡동으로 옮겨가며 석관동 본청은 사라지고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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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중랑천
-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 서울특별시 노원구 성북구 등을 지나 한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유역면적 299.6㎢, 유로연장 34.8㎞로 우이천·청계천 등 모두 13개의 지류를 거느리고 있다. 과거 중랑천은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書院川)’, 상계동 부근에서는 한강의 새끼 강이라는 뜻으로 ‘샛강’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한강의 위쪽에 흐르는 냇물이라는 뜻으로 한천(漢川), 한내라고도 불렀는데 현재 석관동의 동쪽 중랑천과 접한 도로가 한천로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랑천 주변은 과거 농경지였으나 1970년대 초 택지로 조성되어 아파트·단독주택·다세대주택 등이 혼재해 있다. 중랑천변의 하천부지는 주민들의 체육공간과 휴식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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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우이천
- 북한산 우이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장위동과 석관동의 동북쪽을 거쳐 석계역 부근에서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성북구 장위동과 노원구 월계동을 가르는 자연적 경계를 이루는 우이천은 예전에는 소근내라고도 불리었다. 중랑천 지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길이는 8,330m이다. 상류에 우이구곡이라 불리는 명승지가 있다. 우이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지점 일대에 자리한 장위동은 충적 평야가 발달하여 일찍이 농촌 마을들이 형성되었는데 현재는 그 이름만이 전해지는 명덕동, 웃대, 간대, 아랫대, 활량리가 바로 그 마을들이다.
현재는 많은 주민들이 휴식과 운동을 목적으로 우이천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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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장위종합사회복지관
- 성북구 돌곶이로 22길 47(석관동 193-8)에 있는 종합복지관이다. 1995년 10월 24일 장위 2, 3동·석관동의 지역주민들을 위하여 장위동에서 개관하였고, 2019년 장위 4구역 재개발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장위종합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참나무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이었으나 2020년 4월 구립시설로 전환되었고, 2020년 현재 ‘사단법인 일촌공동체’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주민조직의 육성을 지원하고, 이러한 주민협력강화에 필요한 주민의식을 높이기 위한 주민 조직화사업, 취약계층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 욕구를 총족시키기 위한 주민복지증진 사업, 지역조직화 사업,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신체활동, 친목도모의 기회를 제공하는 어르신 교육문화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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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서울석관초등학교
- 성북구 돌곶이로22길 21(석관동 205)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71년 5월 25일 설립 인가를 받았다. 교훈은 ‘슬기롭고 튼튼하며 서로 돕는 어린이’이고, 지성·인성·창의성을 갖춘 어린이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5년 3월 석계초등학교로 일부 학생을 분리하였고, 2009년 5월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2017년 진로교육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을 받았고, 2018년 초1.2안정과 성장 맞춤 교육과정우수학교, 기초학력향상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제46회 졸업식을 거행하여 누적 졸업생 26,171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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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다다식탁
- 문화다양성 인식 확산을 위해 석관동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푸드 마켓이다. 석관동은 성북구 내에서도 다문화가정 및 결혼이주여성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다다식탁은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등 세계인들과 동네 주민들이 교류하는 어울림의 장을 만들고자 2018년 5월부터 시작되었다. 성북문화재단 주최로, 석관동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 커뮤니티인 다가치부모커뮤니티와 지역청년 문화기획 협동조합인 사고뭉치가 함께 주관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문화다양성 무지개다리사업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세계음식부스인 다다푸드마켓, 수공예품 체험부스와 중고장터 등으로 구성된 다다동네마켓, 다다놀이터 등으로 구성되었다. 2018년 다다식탁 수익금 일부는 석관동의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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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의릉문화축제
- 매년 10월 석관동에서 개최되는 마을 축제이다. 석관동은 조선 20대 왕 경종의 무덤인 의릉이 있는 지역이다. 이 축제는 세계문화유산인 의릉을 널리 알리고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개최되는 축제이다. 축제는 영조대왕 능행차 재현, 공연,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이루어진다. 영조의 어가행렬은 석관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의릉으로 가며, 어가행렬이 의릉에 도착하면 제향 의식이 진행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주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이후에는 축하공연과 체험 프로그램, 주민장기자랑 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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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석관동 감나무축제
- 매년 10월 석관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이다. 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길놀이와 감따기 체험 및 시식 행사가 진행된다. 본 행사는 석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며, 다양한 공연과 마을 장터, 체험 부스 등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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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돌곶이시장
- 성북구 돌곶이로22길 54-16(석관동 279-1)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2017년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을 통해 시장의 많은 환경개선이 이루어졌다. 디자인 특화를 위해 원래 명칭이었던 ‘석관황금시장’에서 ‘돌곶이시장’으로 명칭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돌곶이시장 캐릭터인 슈퍼돌 장복이가 개발되었다. 또한, 고객들의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성북구 최초 야시장을 운영을 통해 먹거리장터로 발돋움하면서 남녀노소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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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석관동 주민센터
- 성북구 석관동 384-3(화랑로 296)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이 지역은 마을 동쪽에 있는 천장산의 한 맥에 검정 돌을 꽂아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 마을로 불렸으며, 이를 한문으로 표기한 데서 석관(石串)이라는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석관리가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1950년 동제의 실기로 석관동으로 개칭되었다. 1975년 구(區), 동(洞)의 담당구역이 재편성될 때 이문동 북쪽의 석관동 일부 지역이 동대문구 이문동에 편입되었고, 석관동은 석관제1·2동으로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석관동으로 통합되었으며, 현재 석관동 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73㎢, 인구수는 3만 5천여 명, 세대수는 16,235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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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서울석계초등학교
- 성북구 한천로 58길 273(석관동 27-3)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2005년 1월 5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교훈은 ‘스스로 깨우치며 밝게 생활하는 넉넉한 어린이’이며, 실력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인 어린이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7년 성교육, 성폭력예방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과 교육환경관리영역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을 받았고, 2018년 학생자치활동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15일 제14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1,621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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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석관중학교
- 성북구 한천로 526(석관동 88-2)에 위치한 공립중학교이다. 1982년 12월 설립인가를 받고, 1983년에 개교하였다. 1986년 3월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지정 체육 시범학교를 운영하였고, 1998년 3월에는 교육부 지정 과학교육 연구 시범학교를 운영하였다. 바른인성과 알찬 실력으로 꿈을향해 노력하는 행복한 석관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2020년 2월 제35회 졸업식을 진행하였고, 누적 졸업생 18,506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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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석관동미리내도서관
- 성북구 한천로66길 203(석관동 134-2)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기피시설이었던 석관빗물펌프장의 4층과 5층에 주민생활밀착형 도서관을 조성하여 주민친화시설로 거듭났다. 4층은 어린이실로, 5층은 일반열람실로 운영되고 있으며, 2020년 1월 기준으로 도서 3만 6천여 권, 연속간행물 26종, DVD/비도서 877종을 소장하고 있다. 마을in수다, 작가와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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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의릉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에 있는 조선시대 왕릉이다.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무덤인데, 1724년에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재 위치에 능을 먼저 조성하였고, 영조 6년(1730)에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의릉 아래에 능을 조성하였다. 의릉은 1960년대 초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능역 내에 있어서 일반인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훼손이 심하였다. 이 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뀐 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1996년에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외래수종 제거, 전통수종 식재, 인공연못 성토, 금천교 복원 등 기초적인 의릉 복원 정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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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유물
- 구 중앙정보부 강당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석관동 409)에 위치한 건물이다. 이 일대는 조선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 능역으로, 본 건물은 능역 안에 있다. 1962년 신축된 강당 부분과 1972년 지어진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1년 설치된 중앙정보부가 의릉에 들어가면서 건물을 만들고 사용했다. 1972년 7월 4일 이곳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의릉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철거가 예정되기도 하였지만, 냉전시대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 현장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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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화랑로
- 성북구 월곡동, 석관동 등을 통과하는 도로이다. 화랑로는 노원구 공릉동에 육군사관학교, 즉 화랑대의 이름으로 유래되었다. 화랑로는 하월곡동의 종암사거리(월암교)를 기점으로 상월곡동, 석관동, 공릉동을 동서로 횡단하여 태릉선수촌에 이르는 폭 35m, 길이 약 8㎞의 구간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 이후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가로(京元街路)’로 혜화문 밖에서 의정부, 춘천으로 연결되던 길이었다. 현재 성북구의 관할 구간은 종암사거리(월암교)에서 노원구 공릉동 경계까지의 3.2㎞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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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한천로
- 서울 동부에서 중랑천을 따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간선도로이다. 한천로는 한천(漢川)을 따라 개설된 도로라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중랑천의 옛 이름이 ‘한내’, 즉 시내가 크다는 의미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는 장안동과 수유동을 잇는 길이라고 해서 머리 글자를 따서 장수로(長水路)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천로는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전농교로부터 중랑교를 거쳐 강북구 수유동의 도봉로에 이르는 길로, 폭 25m, 길이 10,300m의 6차선 도로이다. 성북구 관내 구간은 석관동에서 장위동에 이르는 2㎞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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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37(석관동 409)에 위치한 교육시설이다. 문화관광부가 1993년 국내 최초로 6개 분야의 예술 실기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하였다. 석관동의 교사는 학교 본부와 연극원,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자리하며, 서초동 교사는 음악원과 무용원이 있다. 일반대학보다 입학 정원이 적은 소수정예를 표방하고 있으며, 남다른 입시 전형과 차별화된 커리큘럼을 통해 개교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예술계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은 예술계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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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푸석골
- 성북구 석관동을 가리키는 마을 이름이다. 푸석골 또는 돌곶이말이라고도 하였다. 푸석골은 이전에 성황당 나무가 있는 고개를 푸석산이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여흥 민씨들의 집성마을로 푸석산에서 1년에 한 번 산제를 지내고 3년에 한 번 큰 굿을 하였다고 한다. 6.25전쟁 이후는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살게 되어 여흥 민씨의 집성촌의 성격도 차츰 퇴색되어 산제 등의 풍속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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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천장산
- 성북구 석관동, 동대문구 회기동, 청량리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140m로 낮은 산이지만 꽤나 넓은 편으로,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명당터이다. 천장산 주변으로는 한예종, 외대, 경희대,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등의 대학캠퍼스가 둘러싸며 자리하고 있고, 과학기술연구원, 국방연구원, 산림과학원, 산업경제연구소, 농촌경제연구소가 모두 이 산에 기대어 있다. 조선왕조의 무덤인 의릉, 영휘원, 숭인원 등이 주변에 자리잡았고, 명성황후의 능 자리였던 홍릉 역시 이곳에 위치하였다. 조선 왕가의 쉼자리, 현대 교육의 산실인 대학, 연구의 중심인 연구소들이 산 주변에 둘러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천장산이 좋은 기운을 가진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